작은 빛을 따라서
권여름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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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꾸준하게 무언가를 하는 일은 대단하다. 건강을 위해 걷기, 명상, 기도 등 쉬운 것 같지만 막상 해보면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누군가 간절하지 않아 그렇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맞다, 간절함이 부여되면 상황은 변한다. 간절함은 아주 작은 자극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남들은 신경 쓰지 않지만 내 안의 무언가를 건드리는 순간 발화한다.


내장산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필성슈퍼’ 를 운영하는 가족 이야기, 권여름의 장편소설 『작은 빛을 따라서』에서는 다양한 간절함이 어떻게 빛을 발하는지 보여준다. 급한 마음에 언급하자면 소설은 재미있고 따뜻하고 뭉클하다. 슈퍼로 바쁜 부모님, 집안 살림을 챙기는 할머니, 고등학생 언니, 중학교 3학년 은동, 동생 은율, 여섯 식구의 평범한 일상을 그리는 소설이다.


화자인 은동이 할머니의 비밀을 알게 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비밀은 할머니가 한글을 모른다는 것. 은동은 할머니의 한글 선생님이 되어 용돈을 받는다. 은동이 용돈을 모으는 이유는 연기 아카데미 학원에 등록하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은동의 꿈은 배우다. 은동은 할머니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한 번식 슈퍼 배달을 돕는다. 은동 가족에게 변화가 생긴 건 대형마트가 오픈하면서다. 부모님은 두부 한 모도 배달을 시작했고 김장철에는 절인 배추를 팔았다.


소설은 대형마트에 대응하는 필성슈퍼의 모습과 연극을 향한 은동의 열정, 그리고 할머니의 한글 공부를 통해 실패와 그에 굴하지 않는 간절함으로 일어서는 어떤 마음을 이야기한다. 그 과정은 안쓰럽고 애틋하며 대견하다. 손님이 없어 애타는 마음을 숨기고 태연하게 하루하루 슈퍼 문을 열고 대책을 세우는 부모님, 떨린 마음으로 친구 석희와 아카데미 면접을 보지만 석희에게 연기를 권해 속상한 은동, 배움의 열정만큼 실력이 늘지 않아 속상한 할머니의 모습은 소설이 아닌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손님이 찾아오지 않아도 문을 여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새벽 여섯시 차가운 셔터 끝을 잡아 힘차게 올리는 아빠의 뒷모습이 그려졌다. 여느 시간 여섯시, 닫는 시간 열두시는 법으로 정한 건 아니었지만, 스스로 선택한 시간이었고, 우리 슈퍼만의 신성한 약속이었다. (169~170쪽)


슈퍼가 힘들어져 트럭을 몰고 섬으로 물건을 팔러 가는 아빠, 아카데미에 다녀온 후 절친 석희와 멀어진 은동, 조금이나마 힘이 되겠다고 시위를 하듯 대형마트에 가는 할머니. 그 마음을 알 것 같고 내일처럼 여겨졌다. 간절함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외면받는다고 느낄 때 얼마나 속상할까. 하지만 은동이는 연기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부모님을 슈퍼를 그만두는 일은 생각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한글 배움도 마찬가지다. 할머니는 문예대회에 나가 하고 싶은 말을 시로 써서 상금을 받고 은동은 연기를 배울 수 있는 곳이 그곳만 있는 게 아니라며 마음을 다잡는다.


간당간당. 엄마의 입에서 최근에 많이 나온 단어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이 단어는 마치 종소리 같았다. 간당간당…… 간당간당. 위태로운 시간을 버티고, 살아내는 사람들의 머리에서 울리는 종소리. 그 종소리를 들으며 확신했다. 내일도 우리 필성슈퍼는 망하지 않았다고 선언하며 문 열기를 선택할 거라고 말이다. 세상을 향해 용감하게 양팔을 벌린 것처럼 슈퍼의 양쪽 문이 활짝 열릴 것이다. (259쪽)


소설 속 은동이네 가족에게 닥친 위기처럼 우리네 일상도 마찬가지다. 하루하루 위태롭게 휘청거린다. 모두 쓰러지지 않으려고 간절함으로 버티며 살아간다. 실패하면서 배우고 그 과정에서 다른 방법을 찾는다. 단 번에 성공하거나 행운에 당첨되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존재를 믿고 나아간다. 간절한 마음을 저버리지 않고 자신만의 빛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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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eol 2023-12-26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이 소개해주시는 책들 리스트에 담고 갑니다.

자목련 2023-12-27 11:11   좋아요 0 | URL
biseol 님, 즐겁게 만나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