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조금씩 자란다 -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사랑의 말들
김달님 지음 / 미디어창비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말과 글은 어떻게 다루냐가 중요하다. 그러니까 어떤 톤의 목소리로 말하는가, 어떤 조사를 붙여 쓰는가에 따라 전해지는 감정의 온도가 다르다. 호응하고 공감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귀찮은 태도와 목소리로 상대가 건네는 말에 호응한다고 하면 그건 진정한 호응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말과 글은 어렵다. 매일 듣고 하는 말, 쉽게 쓰고 전달하는 글에서 위로를 얻고 기억하는 일은 그만큼 귀하고 소중하다. 말을 듣고 나누고 글을 쓰고 글쓰기 수업을 하는 김달님의 에세이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는 그런 마음이 담겼다. 누군가와 나눈 대화를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기억하고 기록하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인터뷰를 하고 기사를 쓰는 사람이라서 당연한 거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뭔가 살가운 결이 느껴지는 글이다.


에세이는 사는 이야기고,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을 글로 공유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와 다른 누군가의 삶의 단편을 읽고 공감하는 일은 공통점을 발견했을 때 가능하다. 공감을 불러오는 글을 쓰는 게 어려운 이유다. 저마다 형편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단단한 사람인 것 같다. 단련되었다고 해야 할까. 여러 방면으로 많은 글을 써왔고 사람을 쓰는 일과 글을 쓰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사를 쓰려고 만난 사람과의 인터뷰를 소중히 듣는 사람, 상대가 전하고자 하는 말을 마음으로 기억하려는 사람, 가장 가까운 가족과 친구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고 같이 나누려는 사람, 이 에세이를 통해 그런 이들을 만난다. 저자는 그 마음들을 다듬고 매끄럽게 매만져 우리에게 전한다. 그런 마음이 있다는 걸 아느냐고, 혹시 그런 마음을 놓친 적이 없냐고 말이다.


어떤 말은 그저 스쳐지나는 말이 되고 어떤 말은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 남아있는 말은 상처로 남기도 하고 따뜻한 온기로 남기도 한다. 저자는 수많은 말 가운데 온기를 품은 말을 주워 담는다. 그리고 자신의 온기를 더해 독자에게 전한다. 한 번 만나고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 같은 택시 기사와 나눈 짧은 시간 나눈 대화, 암 치료를 하는 친구가 들려준 말, 그와 동행한 병원에서 마주한 풍경, 어른이 되어 찾은 피아노 학원에서 만난 아이가 들려주는 말, 초등학교에서 정구부를 맡게 된 친구가 들려준 아이들의 말. 책에서는 말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건 회사 건물의 청소를 담당하는 일본인 ‘치에코’ 씨의 말이었다. 미화일기를 쓴다는 그녀가 좋아하는 한국어에 대해 한 말이었다.


“정성, 저는 정성이라는 말이 좋아요.”

“왜 그 말이 좋은가요?”

“정성에는 마음이 담겨있으니까요.” (36~37쪽)


그런 말들을 읽다 보면 나는 어느새 생면부지인 그들의 곁에 앉아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내가 만난 새벽의 택시 기사, 아파트에서 만난 청소 아주머니, 주일에 봉사를 하시는 교회 어르신들, 전화할 때마다 다정하고 건강한 기운을 전하는 나의 친구와 지인들을 떠올린다. 지금껏 내가 받기만 한 말과 마음과 내가 하지 못한 말, 내가 전하지 못한 마음을 생각한다. 말이 지닌 힘, 말에 담긴 정성과 마음을 말이다. 매일 마주하는 일상, 슬픈 일이 있을 때나 기쁜 일이 있을 때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말이 얼마나 나를 지켜주었는지 새삼 깨닫는다.


사는 건 다 비슷비슷하다고 한다. 그러나 정녕 삶에 대한 감사와 사랑은 인지하지 못한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재고 부재를 마주하고서야 느낀다. 저자가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런 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놀라면서 애정을 갖는 것처럼 저자가 인터뷰를 진행한 분의 “앞으로도 잘 살아가세요”란 말 하나에 알 수 없는 감동을 느낀다. 그런 말을 직접 듣은 저자가 살짝 부럽기도 했다.


나는 그런 게 좋았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가 어떤 삶들과 함께 살아가는지 구체적으로 감각하게 되는 순간이. 내가 모르는 인생이 이토록 많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찾아오던 놀라움과 부끄러움. 그와 동시에 또렷하게 생겨난 삶에 대한 애정과 의지가. (91쪽)


나는 누군가에게 잘 살아가세요란 말을 진심을 할 수 있을까. 매 순간 인사치레가 아닌 진심을 담은 말을 하며 살고 있는가. 문득 삶을 살아가는 동안 내가 하는 수많은 말은 상대에게 어떤 기운을 전할까 생각하니 마음을 다잡게 된다. 좋은 기운은 아니더라도 나쁜 기운은 전하지 않도록 살펴야겠다.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는 제목처럼 삶이란 이처럼 배우고 자라는 일의 연속이라는 걸 기억하고 싶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23-10-05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잘 지내셨나요.
이제 여름은 지나고 가을이 되어서인지 날씨가 많이 차가워졌어요.
감기 조심하시고,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23-10-10 16:26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답글이 늦었습니다.
말씀처럼 차갑고 쌀쌀한 날들이에요. 서니데이 님도 건강 잘 챙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