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요한 건 마음이라고 했던가. 아니, 사랑이던가. 그런데 그 마음과 사랑은 어떻게 볼 수 있고 표현할 수 있을까. 반려묘, 반려견과 말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들의 생각을 알 수 있다면 훨씬 행복할 거라고 말이다. 나와 다른 존재를 사랑하고 그의 마음을 아는 일은 요원하다. 그래서 사랑은 더 숭고하고 가치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로봇과 인간 사이의 사랑을 꿈꾸는 일도 그래서다. 가까운 미래 우리는 인간을 대신한 로봇과 살게 될 것이다. 소설로 만나는 인간형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이야기. 익숙하면서도 무한 가능성의 세계, 김규림의 SF 소설 『큔, 아름다운 곡선』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인간을 도와주는 로봇, 인간의 자리를 대신하는 로봇이 등장하는 소설에서 로봇의 역할은 대부분 비슷하다. 소멸되는 존재, 인간에게 버려지는 존재이거나 반대로 로봇을 통해 인간을 지배하려는 세력에 흡수되어 인간의 적이 되기도 한다. 인간에게 유용한 존재로 설계되었지만 기능이 다하면 사라지고 마는 로봇과 다르게 『큔, 아름다운 곡선』에 등장하는 로봇, 그러니까 인간형 안드로이드는 다르다. 내가 그리워하고 다시 볼 수 없는 이가 인간형 안드로이드로 만들어진다. 기능적 보모나 자녀가 아닌 이용자가 원하는 모습 그대로 복원한 안드로이드다.


주인공 ‘제이’는 어린 시절 안드로이드 엄마와 살았다. 진짜 엄마인 줄 알고 지냈지만 안드로드의 기능 저하와 오작동으로 엄마는 제이를 외부 침입자로 인식하고 창으로 던져버렸다. 그 일로 제이는 인공 의체 왼팔을 갖게 되었다. 제이를 위해 엄마를 모델로 아빠가 만든 안드로이드였지만 그 일로 아버지와의 관계는 단절되었다. 아버지가 세운 회사 샴하트의 인간형 안드로이드를 이용하거나 함께 지낸 적이 없다. 현재 인간형 안드로이드를 제작하는 회사 ‘샴하트’의 이사지만 말이다.


그런 제이를 위해 배달된 인간형 안드로이드가 바로 ‘큔’이다. 회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큔과의 일상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바로 제이가 큔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인간형 안드로이드, 떠난 남편이나 자식을 대신하는 존재를 사랑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용자 중에도 많았다. 큔과 제이 사이의 감정 변화가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학습되고 입력된 값으로 제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큔. 조금씩 그런 큔에게 스며드는 제이. 그것이 사랑이라는 걸 알면서도 두려운 제이. 그런 제이에게 큔이 말하는 사랑은 의미심장하다.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어쩌면, 제가 정의한 사랑은 당신이 생각하는 사랑의 형태가 아닐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사람들의 사랑도 모두 같은 모양은 아니잖아요? 다른 모양이라고 해서 그게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순 없을 거예요. (…) 그러니,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가르쳐줘요. 사랑이란 어떻게 하는 건지.” (108~109쪽)


큔과 제이가 서로를 향한 사랑을 확신하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엔딩이면 좋겠지만 인간형 안드로이드를 반대하는 단체에 의해 안드로이드가 납치되고 테러가 발생하는 사건으로 인간형 안드로이드 단종과 일시적으로 생산을 금지한다. 큔에게 사고가 났을 때 원상 복구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제이의 걱정에 큔은 “이제 저도 당신처럼 유한한 삶을 살게 됐군요.” (128쪽)라며 평온한 표정을 짓는다.


뛰어난 기술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좋은 점의 뒷면에는 나쁜 점이 있고 인간형 안드로이드를 태하는 인간의 태도도 다르지 않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간형 안드로이드를 반대하는 단체가 무조건 잘못했다고도 말할 수 없다. 인간과 안드로이드가 공존하는 일상은 생각보다 빨리 도착할 것이다. 누군가 제이처럼 외면했다가 큔을 사랑하고 그와 함께 하는 삶을 선택할 수도 있다. 누군가 인간을 대신할 수 있는 안드로이드는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결국 각자의 선택일 뿐이다.


『큔, 아름다운 곡선』를 읽으면서 그간 읽었던 로봇이 등장하는 소설이 떠오르는 건 당연하다. 인간의 가상 친구로 만든 로봇 에이에프가 나오는 가시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 은 인간과 로봇의 우정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이 소설도 마음에 관한 이야기다. 마음을 성장시키는 성숙된 선한 마음, 그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 역할을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이 하는 미래.


“말씀하신 마음이요.” “그게 가장 배우기 어려운 부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클라라와 태양』 , 321쪽)


자신을 발견하고 주인지자 친구로 지냈던 인간 ‘랑’을 애도하는 로봇 ‘고고’의 여정을 다룬 천선란의 장편소설 『랑과 나의 사막』에서도 ‘고고’가 닿고자하는 건 인간의 마음과 감정이다. ‘고고’는 자신은 마음이 없다고 말하지만 점점 인간처럼 감정을 전달한다. 감정이 인간만이 지닌 고유한 것이 아닌 로봇으로 확대되는 순간 로봇은 더이상 로봇이 아닐지도 모른다. 『큔, 아름다운 곡선』에서 제이와 큔의 사이가 그랬던 것처럼.


‘마음은 중요해.’

랑의 말에 나는 마음이 없다고 대답했고, 랑은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마음은 목적이야. 네 목적에 가장 빨리 닿으려고 애쓰는 게 마음이야.’ (『랑과 나의 사막』, 44쪽)


소설뿐 아니라 놀라운 인공지능의 기술로 편리한 생활이 가능해지면서 따라오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가는 오승현의 『나는 괜찮은 AI입니다』란 책도 함께 읽어도 좋다. 지금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인공지능의 미래, 안드로이드와 잘 지낼 수 있는 미래를 준비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는 걸 배우고 확인하게 된다.


결국 인공지능, 안드로이드를 소개하고 설명하는 책이나 소설의 도착지는 모두 마음인 것이다. 서로 다른 존재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해하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은 일, 그 존재가 로봇이든 인간이든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마음껏 사랑하는 일, 그것을 지속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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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7-10 11: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아, 저희 고양이들은 말할 수 있으면 안 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아플 때 어디가 아프다고만 말해주면 좋겠어요. ㅋㅋㅋㅋㅋㅋ)

자목련 2023-07-11 11:33   좋아요 0 | URL
냥이 여섯이 한꺼번에 말들을 쏟아낸다면, 아찔 할 것도 같아요.
집사인 제 친구(냥이 한 마리)는 말이 종종 제게 말이 통한다고, 냥이 말을 알아듣는다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