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읍에 사는 덕분에 아침마다 새소리를 듣는다. 여름인 요즘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새와 뻐꾸기의 소리를 접한다. 그러다 이렇게 비 오는 날은 궁금해진다. 비가 오는 날에 새들은 어디서 비를 피할까, 어디서 휴식을 취할까. 어린 시절 흔하게 보던 참새로 보기 힘들다는 사실도 떠오른다. 까치도 그렇고 가을이면 들판을 가득 채우던 잠자리 떼도 기억 속에만 있다. 그만큼 그것들에게서 멀어진 탓도 있겠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자연이 변화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의 모든 것들이 예쁘고 아름답게 보이는 내게 레이철 카슨 외 다양한 이들의 에세이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는 제목처럼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 사는 축복을 우리가 얼마나 자주 잊고 살아가는가 깨닫게 만든다.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자란 탓에 자연은 언제나 가까이 있었다. 자연 그대로의 삶은 아닐지라도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일상이 좋았다는 걸 어른이 돼서 알게 되었다. 조금만 움직이면 갯벌과 바다를 볼 수 있었고 확실하게 다른 계절을 느끼는 일을 추억할 거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만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에게 자연은 어떤 의미인가, 묻는다. 레이철 카슨을 포함한 다수의 저가가 랠프 월도 에머슨의 에세이집 『자연』에서 말하는 주제를 생각하고 그것에 쓴 글에서도 다르지 않다. 랠프 월도 에머슨이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연으로부터 숭배의 교훈을 배우는 이’라고 한 것처럼 우리가 자연에게 배워야 할 것은 여전하다. 자연에 대한 사유와 시선을 생각하면 얼핏 농부나 환경활동가, 생물학자나 생태학자를 떠올리겠지만 에세이에 참여한 이들은 시인, 에세이스트, 저널리스트, 활동가, 조경가, 농부, 과학기술 전문가 등 다양하다. 자연이라는 광범위한 세계를 생각하면 당연하다.


그들이 선택한 저마다의 자연에 대한 이야기는 어린 시절의 습관이나 기억으로 시작해 코로나로 인해 실내수영장이 아닌 연못에서 수영을 하면서 느낀 것들, 가을밤 야간 비행을 하는 새들을 관찰하는 일, 자연 안에서 어떤 편견과 거부감도 없이 존재만으로 자유를 느끼는 경험, 육류를 소비하며 가장 큰 해악을 키지는 현재 우리의 먹거리에 대한 걱정, 이 모든 중심에 자연이 있다. 자연을 떠나서 살 수 없다는 걸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치유와 회복을 자연에게 찾는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연은 어느 편도 들지 않는다. 그보다는 숨 막히는 인종차별주의자의 독기를 뚫고 눈부신 경치로 나아가는 길이 되어, 자신의 고통을 버릴 용기를 지닌 사람을 인도한다. 나를 적대시하는 사람들에게도 자연은 같은 것을 제공한다. 이를 받아들이지 말지는 그들과 그들이 믿는 신 사이의 문제이며, 자연은 어느 편도 들지 않는다. (75쪽, 후안 마이클 포터 2세)


가만히 바람을 느끼고 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주는 위안, 여름에 수확한 감자를 맛있게 먹는 일, 작은 땅을 일구며 흙을 만지며 살고 싶은 바람의 끝에는 모두 자연이 있다.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에서 마주한 놀랍도록 아름답고 유려한 문장으로 피어난 에세이가 아니더라도 자연의 경이로움을 늘 목도한다. 자연의 먹이사슬을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사라지는 벌들을 통해 배운다. 너무 늦은 배움이다. 지구라는 생명체에 거하면서 우리가 돌아갈 그곳도 자연이라는 걸 생각하면 자연과 공생해야 하는 일에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된다.


계절은 자연의 시계이자 달력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살고 자연의 단계들을 중심으로 돈다. 나는 계절을 밀어낼 수도, 끌어당길 수도 없다. 걸음을 늦추라거나 서두르라고 설득할 수도 없다. 자연은 지극히도 아름답고 잔혹하며, 내가 아무리 무수하게 애원해도 통보도 없이 나를 버려둔 채 나아가고 변화해왔다. 자연은 자애롭지도, 악의적이지도 않으며 무심할 뿐이다. 우리는 전체의 일부이고 자연은 그걸 안다. (182쪽, 맥스 모닝스타)


그럼에도 우리는 자연에게 바라는 게 너무 많다. 자연에게도 휴식이 필요함을 모른척한다. 순환과 회복을 위해 인간이 자연과의 거리를 유지했을 때 어떤 결과를 마주하는지 코로나19를 통해 체감하고서야 뒤늦게 인정하는 어리석음이라니.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를 통해 접한 자연은 나와는 다른 세계가 아닌 곁에 두고서도 우리가 몰라보는 자연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침묵의 봄』의 작가 레이첼 카슨의 글은 1962년의 연설이지만 지금 현재에 적용해도 뛰어난 설득력을 지닌다.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을 생각한다. 무너지고 사라지는 일부가 될 것인지, 보존하고 연대하여 함께 살아갈 것인지 우리는 명확하게 알고 나가야 한다는 걸 말이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자 그 자체라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시간은 앞을 향해 흐르고 인간도 그 흐름과 함께 움직입니다. 우리 세대는 환경과 타협에 이르러야 합니다. 진실에 대한 외면이나 오만으로 대피하지 말고 현실을 마주해야만 합니다. 우리에게는 중대하고 냉엄한 책임이 주어졌으니, 한편으로는 그것이 빛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나아갈 세상에서 인류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란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우리는 성숙함과 지배력ㅡ자연에 대한 지배력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지배력 ㅡ을 증명해야 합니다. 거기에 우리의 희망과 운명이 놓여 있습니다. (29쪽, 레이첼 카슨)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를 읽으면서 자동으로 떠오르는 건 이 책의 시작이 된 랠프 월도 에머슨의 에세이집 『자연』,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김산하의 『김산하의 야생학교』였다. 자연을 경외하는 마음은 생명에 대한 존중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생명을 중시하려면, 뭇 생명을 중시해야 한다. 그제야 비로소 어떤 것도 하찮게 여기지 않고 희생시키지 않는 철학이 삶의 밑바탕을 이룰 수 있다. 타인은 물론 심지어 사람이 아닌 생명체에게까지도 이심전심이 미칠 때에만 생명 존중 사상은 체화(體化)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문명 자체가 진정으로 생명을 받들어야 한다.( 『김산하의 야생학교』, 중에서)


자연을 지킨다는 말은 우습지만 우리가 가장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일이 자연을 지키는 방법이다. 매일 사용하는 플라스틱 컵, 더위와 추위를 참지 못해 지키지 못하는 적정 온도. 그 작은 실천이 모아지면 온실가스 배출이 줄어들고 지구는 좀 더 건강해진다.


자연이라는 주제를 떠나서도 각각의 에세이는 매우 훌륭하고 아름답다. 담담하면서도 차분한 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좋은 에세이를 만나는 일, 이 책이 주는 또 하나의 커다란 매력이자 즐거움이다. 그런 점에서는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 사는 삶의 기쁨을 만끽하는 경쾌하고도 우아한 문장이 가득한 메리 올리버의 『완벽한 날들』를 함께 읽으면 더 좋을 것이다.


나는 날마다 내 풍경 속으로 걷는다. 늘 똑같은 들판, 숲, 창백한 해변. 늘 똑같은 푸른빛으로 즐겁게 넘실대는 바닷가에 선다. 늦은 여름 오후, 보이지 않는 바람이 거대하고 단단한 똬리를 틀고, 파도가 흰 깃털을 달고 해변을 향해 달려와 소리 지르며, 고동치며 마지막 상륙을 감행한다. 나는 그런 순간들을 기억할 수도 없을 만큼 무수히 목격했다. 여름이 물러가고, 다음에 올 것이 오고, 다시 겨울이 되고, 그렇게 어김없이 되풀이된다. 풍요롭고 화려한 세상은 우주 안에서 그 뿌리, 그 축, 그 해저로 조용히 그리고 확실히 흔들리고 있으니까. 세상은 재밌고, 친근하고, 건강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상쾌하고, 사랑스럽다. 세상은 정신의 극장이다. 하나의 불가사의에 지극히 충실한 다양함이다. (『완벽한 날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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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07-13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자연도 휴식이 필요하다...이 말이 너무나 와닿습니다.
‘자연에 대한 지배력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지배력‘을 이젠 정말 보여줘야 한다는 레이첼 카슨의 말 모두가 새겨들었음 하네요.

자목련 2022-07-14 17:56   좋아요 0 | URL
쿨캣 님, 감사합니다. 이 책 참 좋았습니다. 주제로 다룬 자연에 대한 이야기도 좋았고 참여한 저자의 글들이 하나같이 아름답고 맑았다고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