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모토 테루는 내게 『환상의 빛』으로 각인되었다. 작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 작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소설로만 만나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국내 작가가 아니라서 그렇기도 하고 나의 성향 때문일 수도 있다. 겨우 몇 권이 소설만 읽었을 뿐이지만 문학에 담긴 분위기, 쓸쓸한 고즈넉함이 좋았다. 그러나 소설과 다르게 산문을 읽고 나면 더욱 그 작가에 대해 끌리는 경우가 있는데 미야모토 테루도 그런 쪽에 속한다.
보통의 이야기, 살아온 이야기가 전부인 이야기. 에세이는 그런 것이지만 『생의 실루엣』이란 제목 때문인지 지나온 삶의 중요한 순간을 마침표를 찍듯 정리하는 고해성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지난 시절을 돌아보며 정리하고 소중했던 이들의 이름을 불러보고 그리운 이의 흔적을 찾는 일을 생각하면 왠지 숙연해진다. 그래서 생의 마지막을 앞둔 시점이 아니더라도 간간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생의 그림자를 따라 걷는 일이라고 할까.
뭐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온통 슬픔이거나 우울의 분위기에 갇혀 있는 건 아니다. 물론 기쁨과 웃음으로 채워진 것도 아니지만. 미야모토 테루가 들려주는 가족, 소설, 질병, 여행에서의 사유가 담담하게 이어진다. 어머니의 첫 번째 결혼과 이혼, 아버지가 다른 형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힘들었던 시절, 그 세대만이 경험할 수 있는 시대적 고통과 아픔은 내 아버지와 그의 형제들의 고단한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어쩌면 모두 힘들었을 시대, 그때 자녀를 돌보는 일은 생계를 유지하는 일보다 우선이 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정을 헤아린다고 할까.
어떤 일들은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그것에 대해 제대로 볼 수 있고 알 수 있으니까. 미야모토 테루가 겪은 공황장애의 증상처럼 말이다. 당시에는 공황장애에 대한 개념도 없었으니 치료는커녕 이해받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지하철로 이동하는 과정에 나타난 발작으로 지하철을 탈 수 없어 직장을 그만둔 일(전업작가로 위해서라지만)도 그런 경우였다. 하지만 미야모토 테루가 쓴 것처럼 지우고 싶은 경험도 언젠가는 큰 깨달음을 안겨주니 그게 인생이 아닐까 싶다.
내가 공황장애라는 병으로 얻은 수많은 보물에 대해 말하자면, 이제는 그것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늘어놓을 필요가 없을 듯하다. 타인의 아픔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하나 더, 마음의 힘이라는 것의 대단함을 몸소 깨달았다는 점도 덧붙여둔다.(87쪽)
때로 우리를 살게 하는 건 불확실한 기억과 그것을 향한 궁금증과 그리움일지도 모른다. 어린 미야모토 테루가 무허가 터널 연립주택에서 보았던 어처구니없는 죽음과 불화하는 타인들의 모습은 삶의 모순 투성이지만 그 안에서 웃고 울었던 순간이 있었던 것처럼.
어떤 만남은 단 한 번으로 끝나지만 오랜 여운을 남기고 어떤 만남은 다음을 기약하면서도 먼 훗날 바람이 전해준 죽음의 소식으로 만난다. 생은 우리가 주관할 수 없는 그런 영역인데, 그것을 거부한 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12월이라서 그런 걸까. 괜히 마음이 분주하고 복잡해진다. 뭔가 더 채워야 할 것 같은데 나의 삶은 텅 빈 바구니처럼 썰렁하다. 1947년 생 노 작가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산다는 게 별게 아니라는 확신은 언제쯤 올까 궁금해진다. 오긴 올까. 말로는 쉽게 내뱉지만 사는 일은 언제나 난해한 문제를 받아는 것 같으니 생이 다할 때까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도 이런 문장을 읽으면서는 그래 사는 건 그냥 그런 거지 하면서 저자의 아버지의 말을 따라 중얼거린다.
네 살부터 서른다섯 살 사이, 싫은 일도 괴로운 일도 슬픈 일도 기쁜 일고 잔뜩 있었고 나를 둘러싼 것도 크게 바뀌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중략) 나는 그때만큼 안녕한 마음으로 아버지의 말을 음미한 적이 없다. ㅡ 뭐가 어찌 되건 간에, 대단한 일은 없어.(139~140쪽)
2021년을 맞으며 품었던 기대가 물거품처럼 사진 것도 아닌데 2022년에 대한 어떤 기대도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그릴 수 있는 생의 실루엣은 어떤 모양일까. 지금의 나는 얼마큼의 실루엣을 완성했을까.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는데 12월은 유독 쓸쓸하다. 마치 한 해의 뒷모습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뒷모습은 사람에게만 국한된 게 아닐 테니. 2021년을 떠나보내며 우리가 마주하는 뒷모습이 따뜻하면 좋겠다.
뒷모습에는 아무래도 ‘떠나간다’는 인상이 늘 따라붙겠지 하고 납득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나는 사람의 뒷모습에 끌리게 되었다. 누군가를 떠올릴 때 반드시 그 사람의 뒷모습을 마음속에 되살리는 것부터 시작한다.(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