캑터스
사라 헤이우드 지음, 김나연 옮김 / 시월이일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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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의 삶은 거칠게 없었다. 간섭하는 이가 없으니 자유롭다. 외롭거나 쓸쓸한 때가 오면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라는 걸 인정하면 그만이다. 주기적으로 만남을 이어가는 이가 있지만 서로 구속하지는 않기로 했다. 경제적으로도 부족하지 않았다. 사라 헤이우드의 소설 『캑터스』의 주인공 마흔다섯의 수잔이 그랬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지냈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다른 방향을 불러온다. 수잔도 예외는 아니었다. 뇌졸중을 앓던 엄마의 죽음과 유언장, 그리고 계획에 없던 임신이었다.


런던이라는 큰 도시에서 살며 나는 혼자만의 이상적인 삶을 꾸렸다. 내게 딱 알맞은 집과 능력을 꽃피울 수 있는 직장, 그리고 문화생활에 접근성까지. 회사에 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나는 내 모든 걸 통제할 수 있었다. (35쪽)


일흔여덟 엄마의 죽음은 의외로 받아들이기 쉬웠다. 문제는 유언장의 내용이었다. 엄마가 남동생 에드워드에 종신 재산 소유권을 증여한 것이다. 마흔세 살의 에드워드는 사고뭉치였고 언제 철이 들지 알 수 없었다. 분명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법을 전공한 수잔은 잘못된 유산 분배를 바로 잡기로 결심한다. 가족 간의 분쟁은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수잔과 에드워드는 매번 만날 때마다 갈등을 빚었고 둘 사이에 에드워드의 친구 롭이 중재 역할을 했다. 수잔은 그런 롭을 의심했다. 에드워드의 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롭은 친구와 수잔이 잘 지내기를 바랐다. 임신한 수잔을 도와주려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혼자 잘 해내고 있다고 믿었던 지나 삶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기분마저 느꼈다. 엄마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는 자책, 알코올 중독으로 돌아가신 아빠에 대해 생각들, 때때로 그들을 만나면서 지난 시절을 돌이켜보거나 추억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어쩌면 수잔이 새로운 가족을 만들기를 두려워하는 게 당연하지도 모른다. 무조건 에드워드만 사랑했던 엄마, 술을 제어하지 못한 아빠로 인해 창피했던 기억이 많았으니까. 그래서 임신한 사실을 알고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한 자신이 이상할 정도였다.


수잔은 임신으로 인한 변화를 감당하면서 차근차근 엄마가 될 준비를 하면서 유언장에 관해서도 다양하게 알아보았다. 이모와 엄마의 친구, 목사님을 만나면서 유언장의 효력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법적 효력을 얻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무엇 하나 뜻대로 되지 않아 속상할 때마다 롭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의 친절을 의심하고 경계했다. 롭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들려주고 다가와도 밀어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케이트가 있었다. 수잔의 이웃으로 가끔 귀찮을 정도로 찾아오는 두 아이의 싱글맘. 임신에 대한 모든 과정을 경험자로 알려주고 도움을 주었다. 스스로 가시를 내세우고 닫혀있던 수잔에게 롭에 대한 마음을 열게 하고 다양한 관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이끌었다.


인생은 항상 다른 길을 안내한다. 수잔에게도 그랬다.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밝혀진 진실과 아이를 갖고 가족에 대한 다른 생각을 품었고 케이트로 인해 혼자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배웠다. 고집스럽고 완고한 삶 대신 유연하게 살아도 괜찮다고 알려준다. 뽀족한 가시로 자신을 감싸는 선인장 같았던 수잔에게 단호하고 까칠한 말투 뒤에 숨겨왔던 외로움과 그리움은 누구에게나 있는 거라는 걸 말이다.


소설에서 롭이 선인장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마치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말 같다. 각박하고 치열해진 사회에 살아남기 위해 점점 더 선인장을 닮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 내가 알던 가시가 아닌 수분을 간직한 가시를 생각한다. 소설의 제목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손가락으로 커다란 선인장을 매만지며 그는 선인장이 수분을 간직하기 위해 잎이 아니 가시로 진화했다고 했다. 그리고 변형된 줄기가 식물에 약간의 그늘을 드리우기도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적에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가시가 생겼다고 믿지만 사실은 아니라고도 했다. 또 선인장의 두꺼운 표면과 잘 발달한 뿌리, 넓은 다육질의 줄기가 수분을 저장하고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진화한 거라고 했다. (250쪽)


서로가 잘 몰라서 시작된 작은 오해는 알려고 하지 않을 때 봉합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에드워드와 수잔의 관계는 모든 가족의 그것과 닮았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노력해야 한다는 걸 소설은 말한다. 어른이지만 여전히 성장해야 하는 수잔처럼 우리의 모습도 그렇다. 읽는 내내 분노하고 슬퍼하고 두려워하며 수잔의 성장통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리즈 워더스푼 주연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방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원작과 영화를 비교하는 즐거움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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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1-12-07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의 소설리뷰는 언제나 읽어보고 싶게 만들어요. 도입부부터 콰과과강!!!! 아.. 게다가 성장통이라니 ㅜㅜ 읽고 싶다.....

자목련 2021-12-08 15:14   좋아요 0 | URL
ㅎㅎ 감사합니다.
이 소설은 뭔가 특별한 것 없는데 또 그게 매력인 것 같아요.
주인공이 중년 여성이라는 점도 흥미롭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