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은 어둠과 통한다. 어둠은 암흑이며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것으로 이어진다. 새벽 두 시 어슴푸레 자신을 바라보는 검은 모자를 쓴 여인의 실루엣만 목격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우선 공포가 몰려올 것이다. 그 여인이 누구인가는 나중 문제다.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그 뒤로 어디선가 자신을 쫓는 누군가, 자신을 훔쳐보는 누군가를 찾는 행동은 지나친 것일까. 권정현의 장편소설 『검은 모자를 쓴 여자』 속 ‘민’에게 일어난 일이다.


주인공 ‘민’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 건실한 남편과 아들 ‘동수’와 고양이 ‘까망이’, 반려견 ‘무지’까지 누가 봐도 단란한 가족의 일상이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을 찾기까지 힘든 시간을 보냈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다녔던 학원에서 우연하게 남편과 만나 결혼한 민은 은수를 낳고 행복했다. 유모차에 세 살 된 은수를 태우고 산책을 나갔던 약수터 근처에서 사고가 났다. 민이 화장실에 간 사이 은수가 유모차에 나와 떨어져 죽은 것이다. 그때 민은 무언가를 목격했다. 알 수 없는 형체, 빠르게 지나가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남편을 포함한 어느 누구도 민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저 사고일 뿐이라고 민을 달랬다.


민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더 이상 아이를 갖기 않기로 한 민과 남편은 ‘무지’라는 반려견을 키웠다. 그러다 동수를 입양한 건 우연한 계기였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근처 교회에 버려진 아이를 발견했고 그것이 입양으로 이어졌다. 신기한 건 아이가 아주 갓난아이가 아니었고 아이의 품에 고양이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마치 아이를 지키려는 것처럼.


동수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출판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모든 게 괜찮아지는 기분이었다. 그 검은 모자를 쓴 여자를 목격하지 전까지는. 민은 상담을 받던 의사를 찾아 약을 처방받고 일상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계속 일어났다. 동수와 무지, 까망이와 함께 나간 산책길에서 무지가 어딘가를 바라보며 짖기 시작했고 까망이가 무지의 눈을 공격했다. 단순하게 여길 수 없었던 민과 다르게 남편은 여전히 별일 아니라 여겼다. 그건 시작이었다. 기괴하고 이상한 일이 계속 일어났고 민은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 민에게 남편은 여행을 권했고 집에는 친정엄마가 오셨다. 여행을 떠난 민에게 닥친 소식은 엄마의 죽음이었다. 화재로 인해 엄마가 죽은 것이다. 자기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고 자책하는 민은 집에 설치한 홈 카메라를 떠올렸다. 동수의 부주의로 불이 난 것으로 보였다. 엄마는 동수의 방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민은 모든 게 그 검은 모자를 쓴 여자 때문이라고 여겼다. 남편과도 관계가 있는 여자, 어쩌면 동수의 친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남편의 자동차에서 증거도 발견했다. 차계부에 그동안 여자와의 일을 기록한 것이다. 완벽한 증거를 찾기 위해 민은 남편의 제안대로 순순히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한다.


병원에 입원한 민은 의사와 상담을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면서도 약은 먹지 않았다. 기회를 엿보는 중이었다. 전직 경찰이었던 아버지에게 남편의 자동차에서 증거를 수집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확인한 자동차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민이 직접 본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민은 자신이 직접 모든 걸 밝히기 위해 몰래 병원을 나왔다. 정말 이 모든 게 남편의 계락은 아닐까. 소설을 읽는 나는 남편은 추악한 실체가 드러나고 민이 치유받기를 바랐다.


병원에서 나온 민의 앞에 나타난 남편과 여자, 그리고 동수의 모습은 진짜일까, 거짓일까. 그 어떤 것도 확인하지 못한 채 민은 도망자처럼 오래전 동수를 발견한 폐허가 된 교회에 숨어든다. 인적이 끊긴 밤에 나와 먹을거리를 사며 자신의 집을 바라본다. 그런데 만약 민이 정말 허상을 보는 거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검은 모자를 쓴 여자가 민이 만든 이미지라면 말이다. 섣불리 단정하기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는 민의 망상이라 여길 수도 있고 누군가는 모두가 민을 속이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재하는 것이 허상이고 허상 또한 실재합니다. 무대 밖으로 내려가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겠지요. 모자의 안팎에 진실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것들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순간 비로소 형체를 갖고 여러분을 따라다닙니다. 따라서 삶이란 모자 속 고양이를 꺼내는 일의 연속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냥 꺼내는 겁니다. 운명은 정해진 게 아니라 꺼내는 순간 결정되는 거예요.” (212~213쪽)


소설 속 민이 입원한 병원에 강연을 하는 마술사의 말처럼 모든 건 마음속에 있는 것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실재와 허상을 구분하는 일 말이다. 모자 속에 숨겨진 고양이를 볼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고양이를 꺼낼 수 있는 이는 또 얼마일까. 모호함으로 가득한 소설이다. 미로에 갇힌 채 출구를 알 수 없는 길을 계속 걷는 느낌이라고 할까. 작가의 말 가운데 이런 부분이 이 소설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글쎄, 모르겠다. 읽는 동안 에드가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 를 떠올린 건 나뿐이 아닌 것이다. 몽상과 악몽 사이를 오가는 서늘한 공포에 소름이 돋는다.


이 소설은 처음과 끝이, 왼쪽과 오른쪽이, 위와 아래가, 과거와 현재가 구분되지 않고 동그라미 안에 뒤섞여 있다. 우리는 여전히 제 꼬리의 기원을 찾아, 제 꼬리를 물기 위해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진실과 정의, 시대와 역사, 슬픔과 기쁨, 잠깐 스치는 인연들, 나아가 우리 삶이 이럴 것이다. (263쪽,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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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11-17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은 모자를 쓴 여자]도 읽으면 푹 빠지겠지만, 자목련님, 글에 첫문단부터 푸욱 빠져서...^^

자목련 2021-11-19 13:56   좋아요 1 | URL

얄라 님의 과분한 댓글에 하루가 신나게 열립니다!
따뜻하고 포근한 금요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