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솜에게 반하면 - 제10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46
허진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 동화 <오즈의 마법사> 속 동쪽 마녀와 서쪽 마녀가 생각난다. 도로시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 위해 반드시 만나야 했던 마녀. 착한 마녀가 동쪽 마녀였는지 서쪽 마녀였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런 신비한 능력을 지닌 마녀를 한 번쯤 만나 단 한 가지 소원을 말해야 한다면 어떤 소원을 말해야 하나 상상을 할 뿐이다. 마우리가 사는 세상에 마녀가 있다면 그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까. 동화 속 이미지처럼 별 그림 모자를 쓰거나 빗자루를 타고 다니지는 않을 테니까. 아마도 요즘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모든 걸 소원을 들어줄지도 모른다.


제10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허진희의 『독고솜에게 반하면』은 아무런 정보 없이 읽었다. 그러니까 나는 독고솜이 여학생이 아닌 남학생일 거라 생각했다. 풋풋하고 순수한 중학생의 첫사랑을 기대했다고 할까. 버려야 할 편견이다. 기대와 달랐다고 해서 별로였다는 건 아니다.


중학교 1학년은 청소년이라고 하기엔 살짝 아쉽지만 그렇다고 어린이라고 할 수도 없다. 중학교의 세계는 초등학교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사춘기로 고민이 많아지고 친구와의 사귐과 부모님과의 관계에 있어 생각이 자라는 시기다. 『독고솜에게 반하면』는 그런 열네 살 아이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1학년 2학기 전학을 온 독고솜에 대해 반 아이들은 묘한 경계심을 보인다. 그 중심에는 반장인 단태희가 있다. 여왕이라 불리는 아이, 그 곁에는 태희의 말을 전하는 박선희가 있다. 삼삼오오 모여 함께 다니는 사이라면 큰 문제가 없는데 독고솜을 마녀라고 말하고 따돌린다. 독고솜과 한동네에 살았던 단태희는 독고솜 모녀와 사이가 좋지 않았기에 전학을 왔을 때 반갑지가 않았다. 독고솜의 교과서가 찢어지는 일이 일어난다. 당사자인 독고솜과 다르게 탐정을 꿈꾸는 서율무는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서율무는 독고솜이 점점 더 궁금했다.


『독고솜에게 반하면』은 서율무와 단태희가 화자가 되어 교차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독고솜은 정말 마녀일까. 서율무가 목격한 장면, 놀랍게도 정말 그랬다. 기분이 좋으면 모든 걸 공중으로 띄울 수 있었다. 모계로 전해지는 마녀 집안. 서율무는 독고솜과 진해지고 싶었다. 다른 아이들이 뭐라 생각하건, 솜이는 진짜 멋진 아이니까.


“기분이 좋으면 이렇게 돼 버려.”

독고솜 가방이랑 교실의 책상, 창가 화분까지 한꺼번에 공중에 두둥실 떠올랐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건지 떠오른 것들은 다 반짝이게 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의자랑 교탁이랑 급훈 액자까지도 붕 떠올라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그러자 마치 눈에 뭐가 씐 것처럼 세상이 다른 색으로 보였다. 미지의 세상에 훅 들어온 기분! 스스르 다리에 힘이 플리고 발바닥이 간질간질해지더니, 제멋대로 어깨가 들멍댔다. (17~18쪽)


율무가 솜이네 집에 놀러가면서 둘은 가까워지고 친한 친구가 된다. 솜이는 고구마와 고양이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물론 마녀의 능력도 있기는 했다. 기분을 헤아리고 따뜻하게 만드는 능력. 그런데 왜 다른 아이들은 솜이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소문을 만들어낼까. 그런 소문은 같은 반 아이 영미가 밤길에 폭행을 당해 입원을 하면서도 이어진다.영미의 마음과 상황을 잘 모르면서 도움을 준다는 이유로 입원비 모금을 하고 그 과정에서 분실사고가 일어난다. 범인은 누구일까, 이번에도 단태희의 무리가 벌인 일일까.


중학교 1년의 모습은 아직은 어린 철이 없는 아이의 모습일까. 어쩌면 그들의 모습은 우리 어른의 모습이 아닐까. 잘 모르는 사실에 대해 함부로 말하고 편을 가르는 어른의 모습 말이다. 『독고솜에게 반하면』은 명랑 탐정 서율무가 활약하는 탐정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십대 아이들의 관계를 다룬다. 서로에게 대해 알아가기 위해서는 진심을 보여주는 용기가 필요하는 걸 알려준다. 거기다 마녀라는 독특한 인물 설정으로 재미를 더하고 그 안에서 가정폭력과 따돌림이라는 심각한 문제을 유연하게 풀어낸다.


독고솜이 영미를 향해 마법을 부리는 이런 장면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사춘기 시절의 부족하고 부끄러웠던 나의 행동과 서툰 마음이 그립기도 하고 그때 그 친구들은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십대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고 어른에게는 주변의 아이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성장소설이다.


영미의 등 뒤 창문을 통해 열감 없는 가을 햇살이 밀려들어 왔다. 빛무리가 내려앉은 영미의 옆얼굴이 파도가 부서지듯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순간, 솜이가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솜이의 손이 영미의 손에 부드럽게 가닿았다. 쏟아지는 햇살에도 끄떡없는, 그 빛에 조금도 묻히지 않는 솜이의 새까만 눈동자가 영미에게 향했다. 그 순간 눈 안에는 영미밖에 없었다. 흔들림 없는 솜이의 검은 눈동자가 빛 속으로 사라져 가던 영미의 먼지 같은 얼굴을 붙잡았다. (110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1-11-12 18: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에게 마법이 가지는 의미가 참 다양하게 해석되는 거 같아요. 아이랑 같이 저도 재미있게 읽은 책입니다 반가워요 ㅎㅎ

자목련 2021-11-13 15:53   좋아요 1 | URL
말씀하신 것처럼 이 동화는 다양한 의미를 전하는 것 같아요. 저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남은 주말 따뜻하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