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관계는 듣기에서 시작된다 - 듣기의 기술이 바꾸는 모든 것에 대하여
케이트 머피 지음, 김성환.최설민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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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듣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이해하려 애쓰는 과정을 통해 상대를 향한 배려와 관심을 표출하는 것이다. 그건 우리 모두가 갈망하는 것이기도 하다. 고유한 생각과 감정, 의도를 지닌 한 명의 사람으로 이해받고 존중받는 것 말이다. (54쪽)


듣는 일에 대해, 듣기의 가치나 태도 같은 걸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장면이 하나 있었다. 상사로부터 업무에 대한 조언(질책을 동반한)을 들을 때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소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형태의 듣기였다. 아마 상대도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일종의 잔소리, 청자가 집중하지 않으면 모든 소리는 잔소리가 된다.


케이트 머피의 『좋은 관계는 듣기에서 시작된다』란 책은 의외로 흥미롭고 재밌다. 화자와 청자, 둘 사이의 위치, 관계, 친밀감에 따라 대화는 다르게 흘러간다는 걸 알면서도 정작 우리는 그 대화에 집중하는 방법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듣기와 말하기에 대해 돌아볼 수 있었다. 인터뷰 기자인 저자가 만난 사람들은 다양하다. 어쩌면 기자로서 상대의 말을 가장 잘 듣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만난 이들이 들려주는 듣기의 힘은 대단했고 놀라웠다. 책을 읽는 동안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가 생각나기도 했다. 대화에 있어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충조참판(충고, 조언, 참견, 판단)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가장 기본적인 듣기는 잘 듣는 일이다. 잘 듣는 일, 그건 생각처럼 쉽지 않다. 대화의 주도권을 상대가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할 수도 있고 지루하다는 걸 표정으로 나타내서도 안 된다. 나는 어떻게 듣고 있을까. 신기하게도 상대방도 그걸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대면의 경우에도 그렇고 유선으로도 느낄 수 있다. 그런 경험 있을 것이다. 그가 만난 영업사원, 정치가, 경영자, 인질 협상가, 첩보원의 이야기는 우리가 얼마나 듣기에 소홀한지 알려준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듣기의 태도는 무엇일까.


지금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다고 가정해 보자. 스마트폰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싶은 말을 줄이고 상대의 말을 들어줄 것인가. 스마트폰을 테이블 위에 놓는 것만으로도 듣기에 집중할 수 없다는 걸 잘 알 것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듣기에 대해 소홀해졌다. 특히나 가장 가까운 이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상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다 알았다고 판단하거나 중간에 끼어들고 말을 막는다는 저자의 설명에 멈칫할 수밖에 없다. 가깝다는 이유로 듣기가 아닌 걱정과 해결이 앞서기도 하니까. 우리가 낯선 사람에게 힘든 상황과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이유다.


누군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말은 그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귀를 기울인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때 동원되는 주의력의 강도는 관계의 깊이와 수명을 결정짓는다. 가까운 사람들을 아주 잘 안다는 안일함에 빠지는 것은, 고정관념을 바탕으로 낯선 사람을 평가하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다. 특히 낯선 사람의 뚜렷한 사회적 신호에 의해 강화된 고정관념은 극복하기가 매우 힘들다. 하지만 듣기는 그런 덫에 걸려들지 않도록 당신을 보호해 준다. 듣기가 당신의 예상을 뒤엎어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91쪽)


기술의 발전으로 점점 대화가 사라지는 시대다. 진정으로 원하는 관계, 그 소통에는 무엇이 있을까. 바로 대화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준다면 나 역시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다. 가까운 사이가 아니더라도 우리에게는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책에서 소개한 가구점 영업사원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물건을 파는 사람이라면 구매를 위해 더 많은 설명과 말을 할 것이다. 하지만 영업사원은 반대로 손님의 원하는 말을 들어주고 침묵의 시간까지 기다린다. 중간에 재촉하듯 설명하고 말을 이어나갔다면 아무것도 사지 않았을 거라고.


듣기 능력이 좋은 사람은 말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상대가 원하는 바를 잘 포착하고 그에 상응하는 말을 할 수 있으니까. 우리는 한 번도 듣기의 중요성과 교육을 받는 적이 없다는 사실도 놀랍다. 그래서 듣기의 경험도 중요하다. 자신의 말을 잘 들어준 어른이 있었던 아이와 그렇지 않은 경우 성장했을 때 대화와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듣기에 대해 알아갈수록 듣기의 어려움, 듣기의 능력에 감탄하며 지나간 대화를 떠올린다. 잘 모르는 주제나 단어가 나왔을 때 솔직하게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 확인해야 하고 의미 있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걸 배운다. 대화에 있어 상대를 격려하며 상세한 설명과 정보를 이끌어내는 지지 반응이 일상에서 필요하다는걸.


개를 잃어버렸다 3일 후에 찾았다는 상대에게 울타리나 목줄을 잘 챙겨야 한다는 말보다 걱정했겠다며 어디서 어떻게 찾았냐고 물어야 한다는 게 지지 반응이다. 아, 대화는 왜 이리 어려운가. 상대의 입장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게 듣기의 기본일 텐데.


상대가 한 말에 대해 깊이 생각할 때, 당신은 그 사람의 생각과 느낌이 당신 안에 자리 잡도록 허용한 것이다. 이 과정은 듣기와 마찬가지로, 환대의 한 형태이다. 상대를 당신의 의식 속으로 초대해 들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사실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대화는 어떤 형태로든 머릿속에 각인될 수밖에 없다. (284쪽)


돌이켜보면 나를 걱정하고 지지해 준 이들과 나눈 대화는 오랜 기간 살아있다. 듣기가 환대의 한 형태라는 말을 마음이 새긴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마다 듣기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될 것 같다. 듣기라는 주제를 잘 설명하고 유용하게 다룬 책이다. 다른 의미로 대화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뜬금없지만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옛 속담에 대해 감탄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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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1-09-10 1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듣기는 환대의 한 형태 이말 기억해야겠어요.
듣는다는게 상대의 마음에 무엇이 들었는지 살피는 행위라는것도요.
참 어렵고 저는 잘 들으려고 노력하지만 이게 제 느낌에 굉장한 정신적 칼로리를 소모시키는 일이더라구요.
듣는다는거 참 힘들어요. 그래도 이왕 듣는다면 이 책의 저 내용을 생각해야겠어요.

자목련 2021-09-13 11:54   좋아요 0 | URL
듣는 행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어요.
좋은 구절이 참 많았어요. 언급해주신 그 문장도 그렇고요.
가을의 향기가 가득한 날들 이어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