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
이용덕 지음, 김지영 옮김 / 시월이일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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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곳곳에서 수많은 사건들이 발생한다. 어떤 사건은 모두가 알고 기억하는 일이 되고 어떤 사건은 당사자만 알게 된다. 사건의 중요도는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 과장해서 말한다면 권력일지도 모른다. 다양하게 존재하는 채널을 차단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이들. 가해자와 피해자가 발생하는 하나의 사건을 생각하면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말아야 하고 가해자는 그에 준하는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가 그렇다. 분명하게 죄를 판단하고 억울한 피해지를 만들지 않는 것. 다소 과격하고 잔혹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이용덕의 『당신이 나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전에』에서도 다르지 않다.


가상의 미래 일본 사회에서 벌어진 일, 그 중심에서 선 이들의 이야기. 재일 한국인 3세가 경험한 것들이 녹아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에서 재일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어려움을 알지 못한다. 시대가 변하고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하게 뭔가 해결할 수 없는 한의 응어리가 남았을지도 모른다. 소설 속 미래의 일본 사회에서 외국인에 대한 생활보호가 불법이고 사회 전반에 한국에 대한 혐오가 가득하다면 더욱. 한국에서 재한 일본인과 다문화가정으로 살아가는 이들과는 다를 것이다. 일본과 한국 사이에는 아픈 역사가 있으니까.


그런 사회에서 혐오의 당사자는 하루하루 슬픔과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같은 아픔을 지닌 이들을 만나 연대의 힘을 키운다. 소설에 등장하는 6명의 청년도 그러했다.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채 자신만의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하고 해결할 방법을 찾다 서로에게 연결되었다. 일본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휘둘리며 살아간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둔 가시와기 다이치를 시작으로 청년들을 데리고 일본을 떠나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박이화, 청년회 소속이지만 무기력한 존재로 스스로 죽음을 꿈꾸는 양선명, 다이치의 계획을 몸으로 실행하는 윤신, 극우 보수정당에서 활동하며 다이치의 계획에서 가장 중요 인물인 기지마 나리토시,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한 여동생의 복수를 꿈꾸는 김태수.


다이치가 어떤 계획은 세우고 실해하려 하는지 처음에는 짐작할 수 없다. 일본 국적의 다이치는 경제적으로 부유했고 누가 봐도 차별이나 혐오의 대상이 아니었다. 재일 한국인의 생존권을 위한 투쟁을 지원하는 정도로만 보였다. 동생의 죽음으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김태수에게 그가 원하는 것을 해결해 주겠다는 다이치. 일본 가해자에게 똑같은 고통을 주려는 게 아닐까 싶었다. 다이치의 계획에 빠진 이는 오직 박이화다. 청년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그녀는 한국으로 향했으니까.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위한 여정, 마음속 어딘가에서 바라던, 다시 태어나는 것과도 비슷한 완전히 새로운 국면이다. 도피가 아닌 개척, 굴복이 아닌 시작, 슬픔이 아닌 투쟁심, 의지를 관철한 결과로서의, 아직은 위대한 과정일 것이었다. (143~144쪽)


혼자가 아니라 청년들을 데리고 부산에 왔다. 한국에서의 모든 활동을 블로그에 기록하겠다는 그녀의 바람은 너무 부질없고 허망한 것이었을까. 부산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 국정원 직원과 대면하는 부분은 소설 밖 현실에서도 진짜 그럴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이치의 계획을 떠나서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안타깝고 가슴 아팠던 건 김태수의 동생 김마야 사건이다. 아무 잘못도 없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피해자가 된 그녀. 그녀의 죽음 이후 새로운 마녀사냥이 시작된다. 그녀가 남긴 논문, 글에 대해 비방하며 폭력을 가한 것이다. 소설에는 그녀의 글을 통해 페미스트, 가부장제도, 비건, 여성문제, 평등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법보다 정의,라는 말에 대해서. 모든 독립운동은 불법이다. 모든 정의는 어디까지나 주관적이고 부정확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정의를 행해야 한다. 어떻게? 어디까지? 서프러제트에 의한 폭력 행사가 없었더라면 여성 참정권을 획득할 수 있었을까? 사회운동에 폭력이 일절 없었더라도, 역사가 반드시 좋은 방향으로 향했을까?’ (325쪽, 김마야의 글)


소설을 읽으면서 일본 사회에 국한된 상황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약자와 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 죽음의 곁에서 살아가는 난민들, 코로나 바이러스로 심해진 양극화 현상,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빈부의 격차. 점점 더 다양해지는 사회구성원, 누군가의 슬픔의 쌓이다 못해 폭발한다면 다이치의 계획은 현실에서 나타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미래는 이처럼 디스토피아일까. 두렵고도 무거운 마음을 지을 수 없다. 제목처럼 강렬하고 뜨거운 여운을 남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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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8-25 15: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은이도 한국인 역자도 한국인이어서 놀랐는데 재일교포가 쓴 글이군요. 소수자의 삶은 언제나 힘든거 같아요 ㅜㅜ

자목련 2021-08-26 09:23   좋아요 1 | URL
네, 아무래도 경험이 있으니 더욱 실감나고 아프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