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의 시절이다 - 정지우 사랑 애愛세이
정지우 지음 / 포르체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독 비가 잦은 5월이다. 누군가의 눈물일까 싶은 생각을 하니 저 비를 다 받아두고 싶다. 비를 좋아하기에, 비가 내리면 아련한 기억이 떠오른다. 하나의 우산을 받쳐 들고 연인과 빠른 걸음으로 빗속을 걷던 풍경. 서로에게 집중하던 시절이었고 그 시절이야말로 온통 ‘너’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다음의 행보가 각자의 우산을 걷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사랑을 말할 때, 사랑의 기억을 더듬을 때, 그 장면은 다정하게 나를 안아준다. 어쩌면 나는 정지우 사랑 애愛세이 『너는 나의 시절이다』를 통해 사랑의 애틋함을 마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무감한 나를 흔들어줄 그런 글들을 기대했다고 할까.


사랑에 대한 사유가 언제나 감미롭고 아름다운 건 아니다. 우리는 사랑을 원하지만 사랑에 대해 다 안다고 믿고 사랑에 대해 소홀하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정성을 다하는 일이고, 즐거운 일이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고, 그것에 몰입하는 일인데. 익숙함에 길들여져 어느 순간 그 모든 것들의 소중함을 놓치고 만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결국엔 하루하루 사랑하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다. 순간의 감정을 놓치고, 대화를 미루고 만다.


대화에 대한 정지우의 글은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열심히 기억하고 열심히 알려고 했던 시절을 생각나게 한 것이다. 하나라도 놓칠까 두려워 뭐든 다 알아내려고 했던 날들. 우리는 모두 반성해야 한다. 대화의 기본, 대화의 목적은 결국 서로에 대해 스며드는 거라는걸.


각자 서로에게 무엇이 중요하고, 그것이 어떻게 다른지에 관해서는, 사소한 것 하나에서부터 일일이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마치 기계적으로 장부를 작성하듯이 서로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외우고, 주입식으로 암기해야 한다. 사실, 그것이 대화이고 이해인 것이다. (41쪽)


사랑에 대한 글은 결국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의 대상은 무한하고 사랑에 대한 감정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정지우가 들려주는 사랑 역시 그러하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랑, 우리를 구원한다고 믿는 그 사랑은 과연 무엇일까. 지금의 나를 만든 사람들, 지금까지 나를 견뎌준 사람들, 그리고 내일도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 그들에 대한 애정을 기억하고 끊임없이 서로를 생각하는 일, 그 모든 게 사랑일 것이다.


어제 당신을 사랑한다고 믿었던 일을 기억하는 것, 오늘 당신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내일도 사랑하리라 믿는 것. 결국은 그 무한한 순환고리, 논리가 파괴되는 동어반복과 자가당착의 세계 속에서 어떻게든 버티며 빠져나오지 않는 것, 그게 사랑의 전부일 것이다. (132쪽)


정지우의 담담한 사유를 읽으면서 사람을 향하는 선한 마음을 지키는 일에 생각한다. 이익에 따라서 사람을 대하는 관계로 상처받고 마음을 굳게 닫았던 날들, 모두와 잘 지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피곤했던 시절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게 나를 향한 선의의 마음들 때문이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것이다.


한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은 놀라운 기쁨을 안겨준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는 일이라서 그렇다. 예전에 알지 못했던 세계라고 할까. 타인이었던 당신과 내가 우리로 속하는 일이라는 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설령 다시 타인으로 돌아갔더라도 그 아름다운 관계의 첫 떨림을 생각하면 나쁨보다는 좋음으로 기억될 것이다. 뒤늦은 깨달음이라고 해도 괜찮다. 살아가는 일도 그런 것 같다. 아이가 주는 감동을 통해 부모가 주신 사랑을 비로소 알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모르는 세계는 여전히 무궁무진할 것이다. 그 안에 숨겨진 사랑과 비밀을 발견하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일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상대의 비밀스러움과 무한함은 곧 내가 속한 공간 전체로 확대되어 나간다. 내가 속해있는 이 공간이, 이 세계가 둘도 없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세계가 무언가로 가득 차있다. 이전에 알던 그런 세계감이 아닌 다른 세계감, 세계의 낯선 이면, 그 세계성이 불러오는 감각이 우리를 휘감는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의 공간에, 사랑의 시간에 속하게 된다. (186쪽)


정지우의 글은 흐림의 기분을 맑음으로 이동시키는 힘이 있다. 혼탁한 마음이 정갈해진다고 할까. 복잡한 감정들이 차분하게 정화된다. 또한 따뜻한 차를 마시는 것 같다. 뜨거운 차가 아닌 알맞게 식혀 따뜻한 기운을 안겨주는 글이다. 아내와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면서도 자신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의 글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 것 같다. 아내와 아이에게 종종 노래를 불러주는 사람, 수영을 할 때마다 아버지를 떠올리고, 운전을 할 때마다 어머니를 떠올리는 사람, 여동생과 한 방에서 잠들며 수다를 떠는 사람의 글에는 온기가 있다. ‘우리는 화목하니까’, ‘화해할 수 있으니까 괜찮다’는 말이 내게로 왔다. 그래, 조금 다투더라도 화해하면 된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우리는 불화가 아닌 화목하니까 된다는 마음이 전염된다. 기분 좋은 전염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1-05-24 14: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뭔가 따뜻한 책일거 같네요. 표지부터 마음에 듭니다~!! 이런 내용의 책은 많은데 자목련님 리뷰 보니 읽어보고 싶네요 ^^

자목련 2021-05-25 09:45   좋아요 1 | URL
사랑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일상에서 느끼는 사랑에 대한 잔잔한 글이라고 할까요.
어떤 부분은 어렵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나쁘지 않았어요. 새파랑 님, 활기찬 화요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