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비가 잦은 5월이다. 누군가의 눈물일까 싶은 생각을 하니 저 비를 다 받아두고 싶다. 비를 좋아하기에, 비가 내리면 아련한 기억이 떠오른다. 하나의 우산을 받쳐 들고 연인과 빠른 걸음으로 빗속을 걷던 풍경. 서로에게 집중하던 시절이었고 그 시절이야말로 온통 ‘너’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다음의 행보가 각자의 우산을 걷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사랑을 말할 때, 사랑의 기억을 더듬을 때, 그 장면은 다정하게 나를 안아준다. 어쩌면 나는 정지우 사랑 애愛세이 『너는 나의 시절이다』를 통해 사랑의 애틋함을 마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무감한 나를 흔들어줄 그런 글들을 기대했다고 할까.
사랑에 대한 사유가 언제나 감미롭고 아름다운 건 아니다. 우리는 사랑을 원하지만 사랑에 대해 다 안다고 믿고 사랑에 대해 소홀하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정성을 다하는 일이고, 즐거운 일이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고, 그것에 몰입하는 일인데. 익숙함에 길들여져 어느 순간 그 모든 것들의 소중함을 놓치고 만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결국엔 하루하루 사랑하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다. 순간의 감정을 놓치고, 대화를 미루고 만다.
대화에 대한 정지우의 글은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열심히 기억하고 열심히 알려고 했던 시절을 생각나게 한 것이다. 하나라도 놓칠까 두려워 뭐든 다 알아내려고 했던 날들. 우리는 모두 반성해야 한다. 대화의 기본, 대화의 목적은 결국 서로에 대해 스며드는 거라는걸.
각자 서로에게 무엇이 중요하고, 그것이 어떻게 다른지에 관해서는, 사소한 것 하나에서부터 일일이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마치 기계적으로 장부를 작성하듯이 서로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외우고, 주입식으로 암기해야 한다. 사실, 그것이 대화이고 이해인 것이다. (41쪽)
사랑에 대한 글은 결국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의 대상은 무한하고 사랑에 대한 감정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정지우가 들려주는 사랑 역시 그러하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랑, 우리를 구원한다고 믿는 그 사랑은 과연 무엇일까. 지금의 나를 만든 사람들, 지금까지 나를 견뎌준 사람들, 그리고 내일도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 그들에 대한 애정을 기억하고 끊임없이 서로를 생각하는 일, 그 모든 게 사랑일 것이다.
어제 당신을 사랑한다고 믿었던 일을 기억하는 것, 오늘 당신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내일도 사랑하리라 믿는 것. 결국은 그 무한한 순환고리, 논리가 파괴되는 동어반복과 자가당착의 세계 속에서 어떻게든 버티며 빠져나오지 않는 것, 그게 사랑의 전부일 것이다. (1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