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는 시각이 점점 늦어진다. 저녁은 천천히 찾아온다. 이렇게 계절이 흐르는구나 생각한다. 아파트 화단에 매화의 꽃봉오리가 보였다. 매화나무는 추운 겨울에도 뭔가 계속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어느 순간 활짝 터질 것이다. 신기한 일이다. 어린 시절에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절기나 계절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봄이니까 꽃이 피고 겨울이니까 눈이 오는 게 당연했다. 뚜렷했던 계절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몇 해 뒤에는 하나의 계절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내가 느끼는 계절의 냄새가 새삼 달콤하다. 고유한 빛과 냄새, 자연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다.

 

봄의 연못 물은 끊임없이 뒤척이는 푸른 양모 같다. 그 무겁고 차가운 물이 연못의 검은 바닥으로 내려가고, 그 무게에 밀린 바닥의 물이 흔들리며 위로 올라와 연못 분지를 야생의 영양으로 채운다. 그건 연례행사로 한 해의 식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늦은 봄이 되면 초록 풀과 갈대들이 올라오고, 수련의 첫 잎들도 보인다. 바람은 잠잠해진다. (83쪽)

메리 올리버의 글은 내게 이런 것들을 찾게 만든다. 어둠이 걷히는 새벽의 순간, 풍성한 연두의 풀들이 선사하는 싱그러움, 하루하루 커지는 잎맥을 지켜보고, 어린 새들의 날갯짓을 관찰하고 응원하는 일상을 기록하는 일. 소유하는 게 아니라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보는 것. 그 안에서 우리는 시인의 거칠고도 부드러운 숨소리를 듣는다. 그래서 시인이라는 창조, 창작자보다는 한적한 시골에 사는 자연친화적 생활자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녀의 산문에서 시나 시론, 혹은 창작의 과정보다는 짧은 메모나 죽은 나방의 날개를 묘사한 글이나 바닷가에서 마주한 생선뼈나 연못에서 겨울을 보내는 오리들의 글에 더 매력을 느낀다. 아마도 시골에서 나고 자랐고 근처에 바다를 두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더욱 그것들에 대한 그리움은 커지기 마련이다. 흙을 만지고 마당에 내린 눈을 치우며 투정을 부리던 순간은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고 있으므로.

사실, 그녀의 시나 시론은 보통의 독자인 내게 어렵다. 문학소녀였던 메리 올리버에게 월트 휘트먼이 얼마나 절친한 친구였는지 그녀가 소개한 글이나 시로 알 수 있다. 한 사람의 시인에게 영감을 주고 감동을 준 이가 시인이었다는 게 당연하면서도 그들이 서로에게 연결된 운명이었구나 싶다. 시의 세계로 인도한 월트 휘트먼에 대해 메리 올리버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처음 발견한, 그러니까 나 혼자 종이에서 발견하고 놀라움과 기쁨에 차서 읽었던 시들은 휘트먼의 것이었다. 나는 그에 늘 깊이 감사하며 살 것이다. 거기엔 풍성하고 엄선된 언어가, 엄청난 에너지가, 리듬이, 천 가지 방향의 완전한 몰입이 있었다. (126쪽)

 

‘내게 일이라 함은 걷고, 사물들을 보고, 귀 기울여 듣고, 작은 공책에 말들을 적는 것이다.’라고 서문에서 시인이 말했듯 시인은 항상 쓴다. 그게 무엇이든 쓰고 또 쓴다. 시인에게 시는 삶의 전부이고 시를 향해 나가는 과정은 삶의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30년 넘게 뒷주머니에 작은 공책을 넣고 다니는 시인의 모습을 상상한다. 불현듯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놓치지 않으려고 항상 수첩에 기록한다는 김연수의 말이 겹쳐진다. 공책에 직접 시를 쓰는 건 아니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은 시가 된다. 생각나는 대로, 보고 느끼는 대로 메모를 한다. 그 작은 공책에서 시가 태어나는 것이다. 완성된 글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마구 쓰는 일. 그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 그것이 시인의 태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시인에게는 작은 공책이 있듯 우리에게도 저마다의 공책이 있다. 누군가는 노트북, 누군가는 스마트폰, 누군가는 한글 파일이 그럴 것이다. 책에서 발견한 구절을 옮기거나 그 문장의 단어를 자신만의 언어로 바꾸어 연습하는 것처럼. 메리 올리버의 이런 ‘버지니아 울프가 쓴 많은 글은 그녀가 여자이기 때문에 쓴 게 아니라, 버지니아 울프였기 때문에 쓴 것이었다.’부분에서 버지니아 울프 대신 나의 이름으로 옮겨 읽는 일도 그렇다. 규칙적으로 쓰고 고치고 노력하고 실천했기에 시가 우리에게 도착할 수 있었다. 삶을 사랑하고 자주적으로 살아가는 일, 그 안에서 그녀는 정말 완벽했고 행복했을 것 같다. 그녀의 바람처럼 나의 생도 그렇게 채워질 수 있을까.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나의 삶을 완성하면서 말이다.

 

내 삶은 나의 것이다. 내가 만들었다. 그걸 가지고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다. 내 삶을 사는 것, 그리고 언젠가 비통한 마음 없이 그걸 야생의 잡초 우거진 모래언덕에 돌려주는 것. (53쪽)

 

이상하게도 나는 메리 올리버의 산문을 읽을 때면 새벽의 기운을 느낀다. 뭐랄까. 서서히 어둠이 걷히고 선명해지는 순간과 닮았다고 할까. 깊은 잠에 빠져 나는 느낄 수 없고, 알 수 없는 감각들을 모은 것 같다. 천천히 서늘하고 투명한 공기가 사라지고 전해지는 여명의 분위기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튼 그렇다. 메리 올리버의 산문 가운데 나는 『완벽한 날들』을 가장 좋아한다. 딱히 이유는 없다. 그냥 좋을 뿐이다. 좋은 걸 설명하는 일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다. 계절과 가장 완벽하게 어울리는 글을 만나는 기쁨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니 벚꽃이 흐드러지는 환한 봄이 오면 그녀의 문장들이 다시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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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0-02-19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녀의 글을 읽으면 새벽의 기운을 느낀다는 글귀에 동감동감 그러네요. 표지도 미명의 그 시간 아주 천천히 깨어나는 하늘을 보여주는 거 같지요. 이른 봄밤이 아직은 추워요. 건강히 지내세요 ^^

자목련 2020-02-20 15:11   좋아요 0 | URL
전체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어디선가 ‘쨍‘하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아무튼 묘해요. 엊그제까지 많이 추웠는데 우수 지나니 봄이 가까운 곳에 있는 것 같아요. 프레이야 님도 건강 잘 챙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