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고장 난 시계를 집에 두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고장이 났다는 건 건전지를 제때 끼워도 시계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계가 많다는 건 그만큼 시간에 대한 강박이 강한 건 아닐까. 손목에 시계를 찼던 게 언제였던가. 휴대폰이 나오면서 시계는 멀어졌다. 직업적 특성 때문에 유독 시간에 민감했던 큰언니는 시계가 많았다. 어쩌면 시계를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집안에 둔 시계의 시각도 제각각이었다. 5분이 빠르게 가는 시계, 10분이 빠르게 가는 시계. 모두 정시보다는 조금씩 빨랐다. 이사를 하면서 장식용으로 내가 권했던 건 양면 시계였다. 마음에 드는 시계를 찾지 못했던 탓일까. 양면 시계는 두 개가 있다. 그러니까 벽에 걸려있는 시계는 모두 네 개였다. 그중 하나를 버렸다. 고장의 여부는 상관없이 버렸다. 동생의 말 때문도 아니었다. 멈춰 있는 시간을 소유한다는 게 부담스러웠다고 할까. 탁상용 시계의 건전지는 모두 뺐다. 시계는 오직 양면 시계, 두 개만 작동한다. 두 개의 시간이 흐른다고 해야 할까. 나 역시 시간을 조금 빠르게 설정했다. 휴대폰 알람의 경우도 기상이나 약속 시간보다 일찍 설정해 울린다. 시간을 붙잡고 싶었던 걸까. 글쎄 모르겠다.

 

12월 24일에 붙잡고 싶은 건 무엇일까. 딱히 그런 건 없다. 이제 일주일 후면 새로운 시간과 마주한다. 그것은 새로운 시간일까. 투명했던 시간은 언제였고, 미세먼지처럼 불투명했던 시간은 언제였을까. 누군가와 함께 보낸 기억을 선명하게 떠올리는 순간의 시간은 투명한 것일까. 자신의 전부를 드러내는 이런 잎맥처럼 환한 시간을 쌓고 싶다. 천천히 읽고 있는 서보 머그더의 소설 『도어』속 에메렌츠의 시간이 그러한 듯하다. 올해의 끝에는 그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좋은 소설과 보내는 시간은 빠르게 채워진다. 메리 올리버의 산문 『긴 호흡』도 좋을 것 같다. 외국 작가의 소설과 산문에 이어 한국작가의 소설과 시인의 에세이도 있다.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최단경로』와 박연준의 산문집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사람들은 마음이 아플 때 건강하고 강하게 이겨낼 수 있는 방법으로 슬픔이 자신을 비껴가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고 착각하곤 하는데, 이는 건강한 방법이 아니다. 멍울진 감정이나 체한 슬픔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슬픔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 슬플 기회를! 무언가 때문에 상심해 있다면 자신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슬픔을 피하지 말고, 같이 여행을 가자. 상처가 나를 데리고 떠나는 여행이 끝날 무렵, 딱지 앉은 상처를 이제 내가, 데리고, 돌아오면 된다. 그렇다. 다시 관성의 법칙이다. 떠났으니 돌아오는 것, 피 흘렸으니 아물기를 기다리는 것.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중에서)

 

스스로에게 충분하게 슬플 기회를 주는 일, 충분하게 웃는 기회를 주는 일. 맘껏 웃고, 맘껏 울어도 좋겠다. 후련한 마음으로 새로운 시간 속으로 걸어간다면 그 발걸음은 얼마나 경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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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4 1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27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9-12-24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2019년 서재의 달인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자목련 2019-12-27 11:07   좋아요 1 | URL
언제나 축하 인사를 건네주시는 서니데이 님, 감사해요.
저야말로 서니데이 님의 이웃이라 행복했습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서니데이 2019-12-31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새해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조금 있으면 2020년 경자년이 됩니다.
새해에도 항상 건강하시고 가정에 평안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행복과 행운 가득하시면 좋겠습니다.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자목련 2020-01-03 11:10   좋아요 1 | URL
2020년, 건강하고 즐거운 일들이 가득하기를 바라요.
서니데이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