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이런 정신과 의사는 처음이지? - 웨이보 인싸 @하오선생의 마음치유 트윗 32
안정병원 하오선생 지음, 김소희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은 고단하다. 들어준다는 건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고 집중한다는 건 감정을 쏟는 일이기 때문이다. 직업의 경우라도 그렇다. 고객의 불편에 응대하는 상담직원, 학생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교사, 마음이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 해결책을 제시해주어야 하는 역할이 새삼 대단하다고 느낀다. 안정병원 하오 선생의 에세이『어서 와, 이런 정신과 의사는 처음이지?』에 그런 노고가 고스란히 담겼다. 그렇다고 의학적 용어를 설명하거나 권위적인 의사 이미지를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중국 웨이보의 유명 블로거라는 이력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에세이는 유머가 넘치고 간단명료하며 심지어 재미까지 있다.

 

어차피 사람은 한 권의 책과 같은 것이 아닐까. 읽어도 이해 한 되는 사람이 있고, 계속 읽어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15쪽)

책의 서문에서 하오 선생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척 의미심장하다. 자신을 버섯이라 생각하는 환자에게 의사가 그에게 자신도 버섯이라고 인사한다. 한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환자에게 의자가 버섯은 먹을 수도 있고 움직일 수도 있고 잠도 잘 수 있다며 그를 치료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정신 질환에 대한 편견과 정신병원이라는 공간에 대해 정확하게 짚어준다고 할까. 책을 읽으면서 나는 올리버 색스가 생각났다. 하오 선생과 마찬가지로 진심으로 환자를 대하는 게 그의 글에서 느껴졌다. 책에서 하오 선생은 자신을 찾아온 환자, 함께 일하는 병원 직원, 광장에서 운동을 하는 이웃, 같은 시각 같은 버스를 이용하는 주변 사람들을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신과 질환에 대해 설명한다.

하오 선생은 사랑에 빠질 때마다 가출을 하는 조카, 도박에 빠져 고생한 친구, 주식투자로 인해 부부 사이가 나빠진 원장, 대학시절 돈을 빌려 갔던 친구가 돈을 갚은 얼마 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안타까운 사연, 32가지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이 모두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일상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정신질환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 말이다. 자연스럽게 독자는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예전과 다르게 방송에서 공황장애나 대인기피증을 앓는 사례를 통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 하지만 막상 병원의 문턱은 여전히 높고 사회적 분위기도 좋은 편은 아니다. 하오 선생의 책을 읽으면서도 우리 문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쉽고 유쾌하며 재밌는 책이지만 마음 한 편이 무겁다. 무리한 다이어트로 인해 섭식장애가 와서 병원에 입원한 간호사의 모습은 미에 대한 잘못된 기준에 대해, 노인성 우울증 치료를 위해 극단을 시작한 할아버지들의 모습은 고령화사회의 해법에 대해 고민하고 만든다.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적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조현병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인식도 마찬가지다. 병을 이해하고 치료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공감’과 ‘연대’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지원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우리네 모습이 부끄럽게 여겨진다. 책에서 특히 기억에 남은 건 우울증 치료에 대한 설명과 소아 자폐증에 대한 부분이다. 우리가 ‘마음의 감기’라고 쉽게 말하는데 그렇게 표현해서는 안 되다는 전문가의 말을 기억한다. 하오 선생의 말에 따르면 우울증 치료는 급성기, 지속기, 유지기가 있다고 한다. 급성기는 증상을 개선하는 3개월, 지속기는 효과를 확실히 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6개월, 재발 예방을 위해 후속 조치를 하는 기간이 유지기라고 하며 보통은 약을 장기간 복용하는 게 정상이라고 한다. 전문가와의 진단과 치료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자폐증에 대한 건 인식의 차이였다. ​출근길 버스에서 만나는 아이가 창밖 풍경을 볼 수 있도록 자리를 맡아주는 작은 배려, 하오 선생이 출장을 가면 다른 승객이 자리를 맡아주면서 서로를 이해하면 아이의 사회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오 선생이 자폐증에 대해 기사와 승객에게 설명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기에 가능했다. 모르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바꿀 수도 없듯이 하오 선생의 책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정신 질환은 불치병도 아니고 감추어야 할 질병도 아니란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우리는 신이 한 입 베어 문 사과처럼 누구나 결점을 가지고 있다. 만약 그 결점이 비교적 크다면, 그것은 신이 특히나 그 사람의 향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217쪽)

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은 어렵다. 그래도 노력하는 이들이 있기에 세상은 살만한 곳이 아닐까. 때로는 친구처럼, 동네 아저씨나 할아버지처럼 친근하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설명해주는 하오 선생 같은 이들 말이다. 그러니 유용한 정보와 함께 책 읽는 즐거움까지 안겨준 알찬 책이다. 덤으로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둔 결점을 꺼내어도 좋다고 말해주는 따뜻한 다정한 눈빛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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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9-11-01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신과 의사는 여러 사람 말을 들어주느라 힘들겠습니다 그래도 아픈 사람 마음을 받아들여주면 좋겠네요 예전에는 정신과에 가는 걸 안 좋게 보기도 했지만 지금은 편하게 가는 듯도 한데, 아직도 안 좋게 보는 사람 있겠네요 정신과 의사는 다른 정신과 의사한테 말할지도... 소설에서 그런 거 본 것도 같아요 실제는 어떨지 모르겠네요

사람은 누구나 이상한 부분이 조금 있을 거예요 그게 심해져서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는 거겠지요


희선

자목련 2019-11-04 14:01   좋아요 0 | URL
정신과 상담을 하는 일이 예전보다는 많이 수월해졌지만 지금도 그런 시선이 남아 있는 듯해요. 맞아요, 저마다 이상한 부분을 갖고 사는 것 같아요. 희선 님, 11월 즐겁게 시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