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엄연히 저기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세계와 우리 사이에는 그것을 매개할 언어가 필요하다. 내가 내 발로 한 여행만이 진짜 여행이 아닌 이유다. (117쪽)

 

김영하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를 다 읽고 발췌한 문장을 적어보니 내가 어떤 단어에 끌렸는지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그것은 ‘환대’였다.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함을 그리워했던 것일까. 현재의 일상에서는 그런 환대가 사라졌다는 증거처럼 보였다. 일상에서의 일탈 혹은 탈피로 다른 곳으로의 이동이라 여행을 정의한다면 우리는 여행을 통해 뭔가 다른 삶을 꿈꾼다기 보다 반가운 인사와 정성스러운 마음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김영하에게 여행이 그러했을까.

 

보통의 여행 에세이와는 다른 여행에 대한 사유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그래서 남다른 느낌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직업으로 인해 잦은 전학을 다녔던 그에게 여행은 그 시절의 결핍을 치유해주는 하나의 과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언제 다시 떠나야 할지 모르는 불안으로 인해 친구들과의 사귐에 있어 스스로 마음을 열지 않았을 그에게 삶은 여행의 연장선은 아니었을까 싶다.

책은 그가 단순히 관광을 목적으로 여행을 떠난 게 아니라 일(소설 쓰기)과 취재를 위해 여행을 떠난 곳에서 마주한 일상에 대해 들려주는데 다양한 에피소드와 그에 따른 깊고 넓은 사유에 반하고 만다. 중국 여행에서 비자가 없어 도착하자마다 다시 추방당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방송으로 잘 알려진 ‘알쓸신잡’에서의 여행, 힘들었던 배낭여행과 『검은 꽃』집필을 위해 아내와 함께 멕시코를 여행한 이야기. 어떤 것 하나 흥미롭지 않은 게 없다. 김영하는 여행을 말하면서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을 고백한다. 대학시절 운동권에 속했다는 것도 놀라웠다. 여행지에서 아무도 모르는 사람으로 존재함과 동시에 특별한 존재를 원하는 여행자의 심리를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로 설명하고 ‘알쓸신잡’을 통해 경험한 ‘비(非) 여행’과 ‘탈(脫) 여행’에 대한 설명도 인상적이다.

그렇다면 내게 여행의 의미는 무엇이며 나는 어떤 여행을 꿈꾸는 것일까. 책에도 등장하는 방 안에서도 세계의 모든 걸 만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직접 만지고 느끼고 경험하고 싶은 욕망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건 이곳이 아닌 그곳에서 이곳과 다른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과 그곳에서 다시 이곳을 그리워하는 복잡한 마음은 아닐까. 여행을 대하는 태도는 다양하다. 누군가는 충동적으로 짐을 꾸리고 누군가는 하나부터 열까지 계획을 세우고 점검한다. 그러나 김영하가 그러했듯 우리가 기억하는 여행은 완벽한 여행이 아닌 돌발 상황이 삶으로 파고드는 그런 여행이다. 그런 여행엔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이 있다. 그 도움을 기억하는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전하고 그것은 아름다운 순환으로 발전한다. 여행이라는 우리네 삶에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타인의 환대 없이 지구라는 행성을 여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낯선 곳에 도착한 여행자도 현지인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인류는 오랜 세월 서로를 적대하고 살육해왔지만 한편으로는 낯선 이들을 손님으로 맞아들이고, 그들에게 절실한 것들을 제공하고, 안전한 여행을 기원하며 떠나보내오기도 했다. (139쪽)

우리는 인생의 축소판인 여행을 통해, 환대와 신뢰의 순환을 거듭하며 경험함으로써, 우리 인류가 적대와 경쟁을 통해서만 번성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148쪽)

방구석 여행자에 불과한 내게도 이 책은 여행의 기쁨을 안겨준다. 김영하가 여행과 접목시켜 읽어준 책들과 인문학적 사유만으로도 충분하다. 여행을 떠나지 않더라도 지금 이 삶에 대해 생각할 것들을 제시한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삶이라는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 그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말이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며, 타인의 신뢰와 환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여행에서뿐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도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굴러간다. 낯선 곳에 도착한 이들을 반기고, 그들이 와 있는 동안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다 가도록 안내하는 것, 그것이 이 지구에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들이 서로에게 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일이다. (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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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건축가 2019-10-22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대‘와 ‘여행‘ 이라는 두 단어가 닮은 듯 다른 듯이 공존하는군요. ^^

자목련 2019-10-23 14:33   좋아요 1 | URL
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단어인데 묘하게 공통점이 있는 듯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