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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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러 개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누구에게나 보여주고 나눌 수 있는 마음, 보여줄 수 있지만 나눌 수는 없는 마음,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마음, 오직 한 사람에게만 보여주고 나눌 수 있는 마음. 적절한 때에 맞춰 마음을 꺼내 사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생각처럼 쉽지 않다. 다른 누군가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기댈 수 있는 마음을 발견하면 전부를 보여주고 싶은 욕구에 흔들린다. 그러면서 궁금하다. 진짜 마음이란 무엇일까? 김금희의 장편소설『경애의 마음』을 읽으면서도 내가 안다고 믿었던 마음이 정말 맞는 것일까 혼란스러웠다. 이제 안다고 알 수 없는 나의 마음들.

 

우리는 쉽게 “네 마음을 안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내 마음을 몰라준다.”라고 속상해한다. 마음을 쉽게 다룰 수 있다고도 자신한다. 마치 마음이 보이는 투명한 유리나 거울인 것처럼 말이다. ‘반도미싱’ 영업부에서 팀장과 팀원으로 일하는 상수와 경애는 그렇지 않았다. 낙하산으로 회사에 들어온 팀장 상수에게 사내 파업에 참여하고 부당한 대우를 견디고 버티면서 현재까지 남은 문제 사원 경애는 반갑지 않은 사원이었다. 거기다 쉽사리 마음을 보여주지 않았다. 말투나 행동, 먹는 음식까지 상수와는 달랐다. 누구에게나 보여줄 수 있는 마음까지 감추고 있었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한 공간에서 미싱을 팔아야 한다는 목표 아래 시간을 보내지만 서로에게 내어줄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마음은 그런 것이었다. 쉽게 꺼낼 수 없고 꺼내도 접혀진 부분의 주름을 하나하나 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사실 두 사람의 접점은 독자에게는 한눈에 보인다. 그들이 단단히 싸매고 있는 마음의 한가운데 친구 ‘은총’이 있다는 걸 말이다. 자연스럽게 과거의 상처에 대한 마음이 아직 아물지 않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고 상처로 남는 상처도 있으니까. 그 마음의 결에 대해서는 상수와 경애가 똑같았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은 저절로 보이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실제 일어난 1999년 10월 동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에 대해 우리가 아는 건 뉴스에 보도가 된 게 전부인 것처럼. 아이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 사건의 원인보다는 그곳에서 고등학생이 술을 마셨다는 일에 관심을 보였으니까. 소설 속 그 현장에서 경애가 친구 은총을 잃고 품었던 마음을 우리는 평생 짐작할 수 없다. 사건을 증언하고 증인이 되어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하는 순간을 우리는 모른다. 누군가를 잃고 남겨진 채로 살아야 하는 마음이 어떨지 같은 일을 겪었다 해도 같을 수 없고 알 수 없다. 경애에게는 어떤 마음이 필요했을까? 소설의 제목인 사랑하고 공경하는 경애(敬愛)였을지도 모른다. 가장 단순하고 가장 아름다운 마음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외면해버린 마음이다.

 

대학 선배 산주와의 사랑 그러했고 반도미싱에서 파업을 하면서 머리를 삭발하고 시위를 할 때에도 그러했다. 그 마음은 경애 한 사람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결핍된 마음이 바로 그것이다. 함께 파업을 하고 회사를 떠나는 조 선생이 경애에게 전하는 말은, 그런 마음의 한 갈래는 아닐까. 어른으로서의 마음,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마음이 우리를 살게 한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마음을 보여주고 내어준 적이 있었는지 생각한다. 내가 그동안 무수하게 받은 마음은 순환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런 돌봄의 마음이 순환되었더라면 우리는 조금 더 안온한 세상을 만들었을 텐데.

​“일은요, 일자리는 참 중요합니다. 박경애 씨, 일본에서는 서툰 어부는 폭풍우를 두려워하지만 능숙한 어부는 안개를 두려워한다고 말합니다. 앞으로 안개가 안 끼도록 잘 살면 됩니다. 지금 당장 이렇게 나쁜 일이 생기는 거 안 무서워하고 삽시다. 나도 그럴 거요.” (30쪽)

 

더 나은 세상이 아니기에 우리는 소설을 통해 그 마음을 붙잡는 건 아닐까. 소설에 등장하는 화재사건과 직장 내 파업은 사회적 이슈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차마 말할 수 없는 그날의 뉴스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누군가는 무거운 주제라며 말을 삼가고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며 불편해할지도 모른다. 그 누군가가 내가 될 수 있고 나의 가족이나 친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피하고 싶은 거다. 그러나 똑바로 봐야 한다. 반복적으로 경험한 것처럼 불가항력의 일들이 일어나는 게 우리 생이므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안아주면서 살아가야 한다. 어떤 대책조차 대책을 황당하고 갑작스러운 죽음, 혹은 소설에서 가장 일상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사랑의 실연이나 베트남으로의 발령 같은 것. 보통의 상처처럼 보이지만 사소하지 않고 깊게 베인 상처들. 그래서 경애처럼 어딘가 내 마음을 들어줄 곳을 찾는 것이다. 경애에게 연애상담 페이지 ‘언니는 죄가 없다’는 유일하게 마음을 전부 보일 수 있는 곳이었다. 경애에 대한 어떤 편견도 없이 있는 그대로 마음의 상태만 보고 보듬어 준다. 진짜 경애하는 것이다. 포장된 마음이 아니라 순수하게 어루만지는 마음. 그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마음이 아닐는지. 화난 마음이든, 울고 싶은 마음이든, 짜증 나는 마음이든, 어떤 마음이든 모조리 쏟아부을 수 있는 곳에 쌓인 마음은 어떤 모양일까. 형체를 알 수 없겠지만 상수의 말처럼 온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사라져서는 안 되는 마음이다.

 

“살면서 조금씩 안 부서지는 사람이 어딨어요? 아무 사건 없이 산뜻하게 쿨하게 살자 싶지만 안되잖아요. 망하는 줄 알면서도 선택하고,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기꺼이 부서지고.” (155쪽)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강변북로를 혼자 달려 돌아올 수 있잖습니까? 건강하세요, 잘 먹고요, 고기도 좋지만 가끔은 채소를, 아니 그냥 잘 지내요. 그것이 우리의 최종 매뉴얼이에요. (176쪽) ​

 

소설에선 경애의 상처가 깊고 커 보여서 상수의 마음은 조금 나중에 보인다. 상수에게 어머니의 죽음과 단 한 명의 친구였던 은총의 죽음이 그를 지배하는 강도가 얼마나 센지. 지극히 개인적인 상실과 슬픔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겹쳐진 상수의 마음이 있기에 경애는 울 수 있고 은총을 함께 그리워할 수도 있다. 나와 겹쳐진 마음이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자신의 마음만 챙기는 이기적인 마음만 있다면 이 세상은 적막감으로 가득할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을 꺼낼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갈 텐데.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은 힘겹고 고단하다. 어떻게 하루를 버티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일과 사람에 치이고 사회의 제도와 정치적 시선에 치이며 오늘을 살아간다. 나와 닮은 마음을 발견하고 기뻐하면 괜찮아진 걸 느낀다. 마음의 힘을 믿는 일의 숭고함을 말이다. 켜켜이 쌓인 마음을 돌본다. 우리는 넉넉해진다. 그리하여 마음은 서로에게 그늘이 된다. 더위로 지친 삶을 그늘에서 식히는 것, 그것이 우리가 찾는 삶의 궁극적인 모습은 아닐까. 내가 가진 여러 개의 마음이 펼쳐지는 상상을 한다. 펼쳐진 마음이 누군가의 마음과 맞닿아 사랑하며 살아가는 일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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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10-04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태풍이 지나가고 공휴일도 지나니 금요일 저녁이네요.
기온이 조금씩 내려간다고 해요. 감기 조심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자목련 2019-10-05 15:31   좋아요 1 | URL
제법 더운 낮도 이제 곧 사라지겠지 싶어요. 서니데이 님도 건강하고 평온한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