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맨션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상했던 내용이 아니었다. 당연하다. 나는 작가가 아니고 작가가 내 의도대로 소설을 썼을 리 없지 않은가. 그런데 나는 왜 어떤 내용을 예상했을까. 무엇이 나를 그렇게 이끌었을까. 어떤 사회적 고발을 다뤘을 거라 짐작했다. 포괄적 의미로 생각하면 사회적 고발은 맞다. 다만, 디테일에서 다를 뿐. 조남주의 『사하맨션』은 가상의 도시국가를 배경으로 그 안의 오래된 낡은 사하 맨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소설이니까 가능한 구상이지만 얼핏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을 벗어날 수 없다. 본국과 분리된 섬이자 타운은 도시국가가 되면서 엄격한 신분제도가 생겼다. 주민권을 가진 L, 체류권을 가지고 2년마다 심사를 받아 연장해야 하는 L2. 그리고 사하라 불리는 이들이 있었다.

 

어떠한 국제기구나 지역 연합에도 가입하지 않은 나라. 타운이라고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작고 가장 이상한 도시국가. 밖에 있는 누구도 쉽게 들어올 수 없고 안에 있는 누구도 나가려 하지 않는 비밀스럽고 폐쇄적인 국가에서 사하맨션은 유일한 통로 혹은 비상구 같은 곳이다. (33쪽)

 

최소한의 안전장치, 기본적인 인권의 존중도 없이 사하라 불리는 이들의 일상은 참담했다. 그러나 사하의 주민들은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공동체를 꾸렸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하나, 둘,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사하로 모여든 이들은 그들만의 규칙을 세우고 관리를 하며 40년을 이어온 것이다. 소설은 그렇게 사하로 들어온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전히 그곳에 사는 이들, 한때 살았지만 지금은 없는 이들, 아무런 이유 없이 어디론가 사라진 이들에 대해서.

 

701호에 사는 진경과 도경 남매는 처음부터 타운의 원주민은 아니었다. 본국에서 도경이 사람을 죽이고 도망쳐 이곳에 왔다. 어떤 희망도 절망도 없이 사하에서 살아간다. 작은 희망이라면 막연하게  L2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일까. 아니, 그런 희망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진경과 도경뿐 아니라 사하맨션에 사는 대부분의 이들이 그러했다. 사하에서 태어나 자란 사라, 우미, 우미를 키운 꽃님이 할머니, 관리실 지키는 영감, 그리고 생의 마지막으로 사하를 선택해 사하로 오는 사람들. 그들의 직업은 일정하지 않았고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었다. 타운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주민권이 없었으니까.

 

소설은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네 현실과 살아가는 현실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사람들을 태우고 흔적 없이 사라진 배, 메르스를 떠올리기에 충분한 신종 호흡기 전염병, L2와 사하, 그리고 주민까지 모여 타운의 국회와 총리관을 향한 나비 폭동이라 불리는 시위 모습. 소설 속 사건 하나하나는 우리가 떠올리며 짐작할 만한 그때 그 사건들과 겹쳐졌다. 소설은 현실을 반영하고 완전히 외면할 수 없으니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서 막연하게 소설이니까 기막힌 SF 이야기라 여길 수가 없다. 소설 속 인물 중 누군가는 내가 아는 이와 닮았고 그들의 고통은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라 말할 수가 없으므로.

 

내가 모르는 세상 어딘가에 사하는 존재하는 게 아닐까. 갑자기 몰려든 생각으로 가슴이 답답해진다. 몇 년 전 읽은 최인석의 『강철 무지개』가 생각나기도 했다. 차라리 현실과 동떨어진 구성으로 완벽하게 멋진 SF로 후련한 결말을 보여줬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건 왜 일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19-06-26 1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 요즘 정유정 작가의 신작과 함께 팟캐스트에서 많이 소개를 하고 있더라고요.
저는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 전작 82년생 김지영과 많이 다르다고 하더니, 자목련님 리뷰 첫 문장에서도 그런 느낌이 오네요.

자목련 2019-06-26 16:52   좋아요 0 | URL
네, 화제의 소설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전작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어요. <82년생 김지영>과는 다르지만 큰 들에서 보면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