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통화를 하는 이들에게 나는 때로 걱정거리가 된다. 그래서 통화가 되지 않거나 문자에 답이 없으면 그들의 조바심은 풍선처럼 커진다. 걱정한다는 건 마음을 주는 일이고, 걱정한다는 건 힘들 때 기대도 된다는 허락과도 같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내게 고모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 주변 이들을 잘 챙기는 고모의 성향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상대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며칠 전 통화를 하면서도 그 아름다운 걱정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끓인 보리자가 담긴 주전자에 손등과 손목 경계를 데였다. 이번엔 왼손이다. 비슷한 부분의 오른손에도 화상 자국이 남았다. 부주의했기 때문이다. 제법 작지 않은 물집이 잡혔고 아직 터트리지 않았다. 남동생이 보고 조심 좀 하지, 하면서 안타까워했다. 속상해하는 동생의 마음이 고마웠다. 남동생과는 차를 타고 오면서 조카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가족이라는 관계, 가장 기본적인 사랑이 밑바탕이 된 관계라 우리는 쉽게 말한다.
고모와 남동생과 사소한 일상을 나누면서 그들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낀다.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한 안부, 사랑이 없으면 절대 전달될 수 없는 공기. 하지만 사랑은 식물과 같아서 처음에만 사랑을 주고 알아서 잘 자라겠지 생각하고 관심을 줄이면 병에 걸리고 심지어 죽어버린다. 사랑도 그러하다. 사랑하며 살자고 숱한 다짐을 하지만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파도에 사라진다.
사랑이 없으면 책을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할 것이다. 감기 여파로 책은커녕 모든 사물에 대한 떨어진 집중력을 끌어모은다. 사랑의 힘으로 읽어나갈 책이 있다는 건 신나는 일 아닌가. 점점 사랑이 커지는 윤이형의 대상 소식이 반갑고 장용준의 우수작도 기대가 큰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 뭉크의 삶에 대해 들려줄 것 같은 『뭉크』, 고 박완서 작가의 『아름다운 나의 이웃』을 천천히 읽으려 한다. 그리고 망설이는 책은 맨 처음 『제비를 기르다』의 맛을 기억하는 윤대녕의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다. 언제부턴가 조금씩 멀어지는 작가가 되었다. 식은 사랑이 뜨거워질 수 있을까.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