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에로스와 필리아[도입](203a-207d4)
(1) 에로스[형식적인 틀]: 에로스의 비상호성(203a-206e2)
[205e]그가 자네에게서 달아나 버린다면 자네가 애인에 대해 말한 찬사들이 더 대단한 것일수록 자네는 그만큼 더 멋있고 훌륭한 것들을 빼앗긴 자가 되어 우습게 보이게 될 것이네. 그러니 친구여, 사랑(연애)에 관한 일들에 있어서 지혜로운 자는 누구든지 자기가 사랑(연애)하는 자를 낚아채기 전까지는 장차 어떻게 될지 염려되어 그를 칭찬하지 않는다네. 그리고 동시에 잘생긴 자들은, 누군가가 그들을 칭찬하고 추켜세울 때면, 자만심과 도도함으로 가득 차게 된다네.
(2) 필리아[내용상의 도입]: 친구간의 상호적 필리아(206e3-207d4)
[207c]친구들의 것이야말로 공동의 것이라고 이야기되니까(1), 바로 이 점에서 자네들 두 사람은 전혀 차이가 없을 것이네.
(1) 이것은 피타고라스학파의 격률로 알려져 있다. 이와 유사한 구절은 ≪국가(Politeia)≫4권, 424a; 5권, 449c;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8권, 1159b31 참고.
2. 필리아와 앎 혹은 유용성의 관계[예비적 탐구](207d4-211a1)
[210e]애인을 추켜세워서 우쭐하게 만들 게 아니라 깍아내려서 위축시켜야 한다는 말일세.
3.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친구의 두 후보](211a1-213d5)
(1) 메넥세노스의 능력[본격적인 논의 준비](211a1-211d6)
(2) 상호적 필리아와 비상호적 필리아[본격적인 논의 시작](211d6-213d5)
[212e~213c]그렇다면 메넥세노스 사랑받는 것이 사랑하는 자에게 친구인 것 같네. 사랑받는 것이 사랑하든, 아니면 미워하기까지 하든 말일세. (...) 이 말에 따르면 사랑하는 자가 친구가 아니라 사랑받는 자가 친구이네. (...) 그렇다면 또한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움받는 자가 적이네. (...) 그렇다면 이것 보게. 많은 사람들이 적들에 의해 사랑받고 친구들에 의해 미움받으며, 적들에게는 친구지만 친구들에게는 적이네.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는 것이 친구인 것이라면 말일세. 그런데 말이네, 친애하는 벗이여, 자기 친구에게 적이고 적에게 친구라는 건 아주 불합리하네. (...) 이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면, 사랑하는 것이 사랑받는 것의 친구가 될 것이네. (...) 그렇다면 미워하는 것이 미움 받는 것의 적이네. (...) 그렇다면 우리는 앞서의 것들에 대해서 했던 것과 똑같은 합의를 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네. 즉 친구 아닌 것의 친구가 있는 경우가 자주 있고, 심지어 적의 친구마저 있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누군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을 사랑하거나 아니면 심지어 자신을 미워하기까지 하는 것을 사랑할 때가 바로 그런 경우라는 것, 그리고 적 아닌 것의 적이 있거나 심지어 친구의 적마저 있는 경우도 자주 있는데, 누군가가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것을 미워하거나 아니면 심지어 자신을 사랑하는 것까지도 미워할 때가 바로 그런 경우라는 것 말일세. (...) 그러면 우리는 이걸 도대체 어떻게 다루어야 하지? 사랑하는 사람들도, 사랑받는 사람들도, 사랑하기도 사랑받기도 하는 사람들도 친구가 아니고 오히려 이것들 말고 아직 서로에게 친구가 되는 다른 어떤 사람들이 있다고 우리가 말하데 된다면 말일세.
4. 비슷한 것이 비슷한 것에게 친구[셋째 후보](213d6-214e1)
[214c-214e]내가 보기에 (...) 훌륭한 자들은 서로 비슷하고 친구인 데 반해 나쁜 자들은 (그들에 관해 흔히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게 바로 이것이기도 한데) 도대체 서로 비슷하지 않고 심지어 그들 자신이 자신들과 비슷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변덕스럽고 불안정하다는 것이네. 그리고 그 자체가 자신과 비슷하지 않고 어긋나 있는 것은 다른 어떤 것과 비슷하거나 친구가 되는 일이 좀처럼 없을 것이네. (...) 그럼 이제, 벗이여, 내가 보기에는 비슷한 것이 비슷한 것에게 친구라고 말하는 자들은 바로 이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네. 즉 훌륭한 자만이 오직 훌륭한 자에게만 친구인 반면, 나쁜 자는 훌륭한 자와도 나쁜 자와도 도대체 참된 사랑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거지. (...) 그렇다면 이미 우리는 누가 친구들인지를 말할 수 있는 것이네. 누구든 훌륭하기만 하면 그들이 바로 친구들이라는 것을 우리 논의가 보여주고 있으니 말일세.
5. 훌륭한 자의 자족성[셋째 후보 논의의 심화와 비판](214e2-215c2)
[215a-215c]서로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면서 도대체 어떻게 서로에 의해 존중될 수 있을까? (...) 훌륭한 자는 훌륭한 자인 한에서는 스스로 충분할 것 같은데? (...) 그리고 충분한 자는 자기의 충분함 덕택에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자일 것이네. (...) 그리고 아무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자는 뭔가를 존중하지도 않을 것이네. (...) 뭔가를 존중하지 않는 자는 사랑하지도 않을 것이네. (...) 그리고 사랑하지 않는 자야말로 친구가 아니네. (...) 그러면 우리가 보기에 어떻게 훌륭한 자들이 애당초 훌륭한 자들에게 친구가 되겠는가? (...) 적어도 그들이 서로를 대단히 가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면 적어도 친구는 아닐 것이네.
6. 비슷하지 않은 것이 비슷하지 않은 것에게 친구[넷째 후보](215c3-216b9)
[215e]그[헤시오도스]는 아직도 자기 논의를 계속, 더욱 호기 있게 펴나가고 있었네. 그러니까 비슷한 것이 비슷한 것에게 친구라는 것은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사실은 이와 정반대라고 말하면서 말이네. 그건, 가장 반대되는 것이 가장 반대되는 것에게 가장 친구니까 그렇다는 거네. 각 사물은 자기와 비슷한 것이 아니라 반대되는 것을 욕구하니까 말일세.
(...) [그런데]‘그렇다면 적대적인 것이 친구인 것에게 친구(인 것)인가, 아니면 친구인 것이 적대적인 것에게 친구(인 것)인가?’ (...) 그럼 정의로운 것이 부정의한 것에게, 혹은 절제된 것이 제멋대로인 것에게, 혹은 훌륭한 것이 나쁜 것에게 친구인가? (...) 반대됨에 의거해서 어떤 것이 다른 어떤 것에게 친구라면, 이것들도 친구일 수밖에 없네. (...) 그렇다면 비슷한 것이 비슷한 것에게 친구인 것도 아니고, 반대되는 것이 반대되는 것에게 친구인 것도 아니네.[216b]
7. 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이 훌륭한 것의 친구[다섯째 후보](216c1-218c3)
[271a]그렇다면 이것 보게. 오로지 훌륭한 것에게, 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만이 친구가 된다는 결론이 따라 나오네.
[271c]“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세. 누군가가 금발인 자네 머리카락들을 백연으로 문지른다면, 그때 자네 머리카락들은 흰가, 아니면 다만 그렇게 보이는 것뿐일까?” (...) “다만 그렇게 보이는 것일 테지요.” (...) “그렇지만 그때 그것들에게 흼이 와 있을 것이네.” (...)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직은 그것들이 조금이라도 더 희지는 않을 것이네. 오히려 흼이 자기들에게 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조금도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네.” (...) “하지만 친구여, 실로 노령이 그것들에다 바로 이 똑같은 색깔을 가져다주게 되면, 그때는 그것들이, 자기들에게 와 있는 것과 꼭 같은 유의 것이 되어 버리네. 즉 흼이 자기들에게 와 있음으로 해서 희게 되네.” (...) “자, 그러니까 바로 이게 내가 지금 묻고 있는 것이네. 어떤 것이 다른 어떤 것에게 와 있을 때마다, 와 있는 그것을 가진 것은 와 있는 것과 같은 유의 것이 될 것인가, 아니면 어떤 방식으로 와 있을 때는 그렇게 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안 그렇게 될 것인가?” “오히려 후자 쪽이죠.” (...) “그렇다면 나쁘지도 훌륭하지도 않는 것 역시 때로는 나쁜 것이 자기에게 와 있는데도 아직 나쁘지 않은 경우가 있는가 하면, 아미 자기에게 와 있는 것과 같은 유의 것이 되어 버린 때도 있네.” (...) “그렇다면 나쁜 것이 와 있는데도 나쁘지도 훌륭하지도 않은 것이 아직 나쁜 것이 아닐 때, 이 와 있음은 그것이 훌륭한 것을 욕구하도록 만드네. 반면에 그것을 나쁘게 만드는 와 있음은 그것에게서 훌륭한 것에 대한 욕구도 사랑도 빼앗아 버리네. 그때는 그것이 더 이상 나쁘지도 훌륭하지도 않은 것이 아니라, 나쁜 것이니까 말일세. 그런데 앞의 논의에서 훌륭한 것은 나쁜 것에게 친구가 아니었네.” (...) “무지를 가지고는 있지만 아직은 그것으로 인해 분별없거나 무식하게 되지는 않고, 다만 자기들이 알지 못하는 것들이 무엇이든 그것들을 알지 못한다고 여전히 생각하는 자들이 남아 있네. 그러니까 바로 그 때문에, 아직 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자들이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네. 반면 나쁜 자들은 지혜를 사랑하지 않으며, 훌륭한 자들도 마찬가지네.(...)” (...) “나쁘지도 훌륭하지도 않은 것이 나쁜 것의 와 있음 때문에 훌륭한 것의 친구라고 우리는 주장 하니 (...)”
8. 첫째 친구[다섯째 후보 논의의 심화와 비판](218c4-220e6)
[220c-e]그러면 훌륭한 것이 사랑을 받는 게 나쁜 것 때문인가? (...) 그렇다면 우리에게 친구인 저건(즉 다른 모든 것들이-바로 그것들이 다른 친구를 위해서 친구라고 우리가 말하고 있는데-바로 그것으로 귀결된다고 할 때의 그것)은 정말로 이것들과는 전혀 비슷하지 않네. 이것들은 친구를 위해 친구라고 불려 왔지만, 참으로 친구인 것은 이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타고난 것임이 분명하니까 말이네. 그것은 적을 위해서 우리에게 친구라는 것이 분명히 밝혀졌으니 말일세. 그런데 적이 떠나가 버리면, 참으로 친구인 것은 더 이상 우리에게 친구가 아닌 것 같네.
9. 욕구가 필리아의 원인[여섯째 후보로의 이행](220e6-221d6)
[221d]욕구가 참으로 사랑의 원인이고, 또 욕구하는 것이 욕구 대상에게, (욕구하는 바로 그때) 친구인 반면에, 이전에 무엇이 친구인가에 관해 우리가 말하고 있었던 것은 마치 길게 늘어진 시처럼 어떤 허튼 이야기 (...)
10. 가까운 것이 가까운 것에게 친구[여섯째 후보](221d6-222e7)
[222a]어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욕구하거나 사랑(연애)할 때, 만약 그가 혼에 있어서든, 아니면 혼의 어떤 습성에 있어서든, 아니면 기질이나 모습에 있어서든, 어떤 식으로든 사랑(연애)받는 자에게 가까운 자가 아니라면, 도무지 욕구하지 못할테고, 사랑(연애)도 사랑(친애)도 못할 것이네.
[222d]그렇다면 여보게들, 우리가 사랑에 관해서 우리가 맨 처음에 거부했던 그 논변들에 다시 빠져 들어가 버렸네. 훌륭한 자가 훌륭한 자에게 친구인 것 못지않게 부정의한 자는 부정의한 자에게, 그리고 나쁜 자는 나쁜 자에게 친구일 것이니 말일세.
☞이렇게 해서 플라톤은 사랑과 친구가 어떤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아포리아로 던져 놓는다. 이 과정에서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논변에 ‘욕구’를 도입하는 순간이다. 앞서 욕구는 반대되는 것 사이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헤시오도스에 대한 반박을 통해 마무리했고, 여기서는 욕구라 비슷한 것에 대한 욕구라고 결론짓는다. 문제는 이 욕구가 결코 비슷한 것에 대한 욕구만은 아니라는 데 있다. 이것을 애초에 기각하면서 ‘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을 후보자로 내세운 것이다.
이 논변의 과정은 내 생각에 ‘자족’과 ‘결핍’ 사이를 진동한다. 그러면서 이 두 가지를 모두 제거하면서 결국 아포리아로 빠지는 것이다. ‘차 있지도 비어 있지도 않은 상태’가 규명될 경우에 이 문제는 해결될 것인데, 플라톤의 논변 과정에서 이러한 ‘모순 관계’는 상정될 수 없다. 따라서 이때 주체는 항상 ‘헛것’처럼 보인다. 사랑을 채우지도 포기하지도 못한 채 허상을 찾아 헤매는 유령과 같은 존재, 그것이 플라톤의 ‘사랑의 주체’라고 할 수 있겠다.
11. 아포리아[파장](223a1-223b8)
[223b]우리가 스스로 서로의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나 자신도 자네들 무리 가운데 속한다고 치고 있으니 하는 말이네만) 아직 친구가 무엇인지 발견해 내지 못했다고 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