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우티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
플라톤 지음, 박종현 옮김, 서광사, 2003
플라톤 (Platon, BC.427-347) :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객관적 관념론의 창시자, 소크라테스의 제자. 귀족 출신. 40세경 아테네 교외의 아카데미아에 학교를 열어 교육에 임하였으며, 또한 많은 저작(30권이 넘는 대화편)을 썼다. 그의 철학은 피타고라스, 파르메니데스, 헤라클레이토스 등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 당시의 유물론자 데모크리토스의 사상과 대립하였다.
그는 유명한 이데아설을 제창, 이데아(혹은 eidos=형상)는 비물질적, 영원, 초세계적인 절대적 참실재이며 이에 대하여 물질적, 감각적인 존재는 잠정적, 상대적이고, 이 감각에 호소하는 경험적인 사물의 세계는 이데아의 그림자, 모상(模相)이라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내세웠다. 세계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세계 영혼이며, 인간의 영혼은 세계 영혼이 주재하는 이데아계에 있던 것으로 이 영혼은 불멸(不滅)이며 이데아를 상기하는 것에서 진정한 인식이 얻어진다고 하였다.
감각적 지식은 단순한 '억견'(doxa)에 지나지 않고 영혼에 의한 지적 직관으로써 상기되는 것이 참지식으로, 이들 양자 사이에는 합리적 지식인 수학적 대상의 지식이 있다. 이때 그는 개념적 인식에 대하여 변증법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점차 일반적인 개념으로 전진하여, 가장 일반적인 것에 이르는 과정과, 이 발전적 개념으로부터 점차 일반성의 낮은 단계로 하향(下向)하는 2개의 과정을 취한다고 하였다.
이리하여 인간에게는 육체에 임시로 머물고 있는 영혼에 의해 이데아계를 인식하는 곳에 인간의 최고의 기쁨이 있으며, 철학자는 현실 세계를 이 이상에 근접(近接) 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는 아테네 귀족의 대표로서 이상적 귀족국가의 구상을 내놓고 철학자에 의한 지배를 제창하여 이 지배자 아래에 군인이 있고 그 아래에 상인이 있는 계층을 생각하였다. 이것은 그가 영혼에는 이성적, 의기적(意氣的), 욕정적(欲情的)인 것이 있다고 한 것에 대응한다. 플라톤의 철학은 그 후 계속 관념론 철학에 강력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철학사전], 중원문화
차례
머리말
일러두기
<에우티프론> 편
해제
대화자들
목차
I. 시작하는 대화(2a~5d)
1. 에우티프론이 소크라테스가 기소된 이유를 들음(2a~3e)
2. 에우티프론이 자기 아버지를 살인죄로 기소하게 된 경위를 소크라테스가 들음(3e~4e)
3. 소크라테스가 에우티프론에게 ‘경건함’이 무엇인지에 대한 가르침을 청함(4e~5d)
II. '경건함‘에 대한 첫 번째 강의: 사례 열거를 통한 의미 규정의 잘못(5d~6e)
1. 에우티프론이 살인, 성물 절취 따위의 올바르지 못한 것에 대한 기소와 같은 사례를 들어, 이를 ‘경건한 것’이라 말함(5d~6c)
2. ‘경건함’에 대한 물음은 그것의 한두 가지 사례가 아닌, 그것의 ‘특성’ 자체에 대한 것임을 환기시킴(6c~11b)
III. 두 번째 정의와 이에 대한 검토(6e~11b)
1. ‘경건함’은 ‘신들의 사랑을 받는 것’; 이에 대한 검토(6e~9c)
2. ‘경건함’은 ‘모든 신의 사랑을 받는 것’; 이에 대한 검토(9d~11b)
3. ‘모든 신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경건함’의 우유성일 뿐 본질이 아님이 지적됨(11a~b)
IV. 맥이 빠진 에우티프론에게 소크라테스가 협력을 약속하며 성원을 함(11b~e)
V. 세 번째 정의와 이에 대한 검토(11e~14a)
1. 올바름의 한 부분인 경건함(신성함): 최근류(最近類)와 종차(種差)(12c~e)
2. ‘경건함’은 신들에 대한 섬김이다.
VI. 네 번째 정의와 이에 대한 검토(14a~15c)
1. ‘경건함’은 신들한테 제물을 바치고 기원을 하는 데 대한 일종의 앎이다.
2. ‘경건함’은 신들에게 만족스런 것(마음에 드는 것)들을 말하고 행하는 것: ‘신들한테 사랑받는 것’이라는 두 번째 정의로 되돌아감.
VII. 대화의 종결(15b~16a)
1. ‘경건함’이 무엇인지를 처음부터 다시 고찰할 것을 소크라테스가 제의함.
2. 이를 에우티프론이 훗날로 미룸.
<소크라테스의 변론> 편
해제
목차
I. 소크라테스의 자기 변론(17a~35d)
1. 법정에 처음 서는 늙은이의 말투에 대한 이해를 구함(17a~18a)
2. 고발인들을 두 부류로 나눔(18a)
3. 법정 고발 이전에 자신에 대한 선입관을 갖게 한 최초의 고발인들과 이들에 대한 변론(18b~24b)
1) 자신을 자연에 대한 탐구자로 잘못 말함(19a~d)
2) 자신을 소피스테스로 잘못 앎(19d~20a)
4. 자신에 대한 비방들을 생기게 한 특이한 일과 그 이후의 행각(20c~24a)
1) 델피 신탁의 “소크라테스보다 더 현명한 자는 없다”는 응답을 전해 들음(20c~21a)
2) 신탁의 응답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러 나섬(21b~22e)
(1) 정치인들과의 대화에서 확인한 것(21c~e)
(2) 시인들과의 대화에서 확인한 것(22a~c)
(3) 장인들과의 대화에서 확인한 것(22d~e)
3) 이들에 대한 캐물음으로 증오심을 사는 한편으로 자신이 현자로 소문이 남(23a)
4) 신탁의 응답이 뜻하는 바를 확인함: 무지의 자각이 곧 지혜임을 깨달음(23b)
5) 한가로운 젊은이들이 자신의 흉내를 내어 잘난 사람들에게 캐묻고 다님(23c)
6) 이로 인해 망신당한 자들이 자기가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며 신들을 믿지 않는다고 비난함(23d~e)
5. 멜레토스 등 나중의 고발인들에 대한 신문(24b~28a)
1)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과 관련하여(24b~26a)
2) 나라가 믿는 신들을 믿지 않는다는 죄목과 관련해서(26b~27e)
6. 신이 지시한 사명에 대한 의식(28a~34b)
1) 자신에게 부과된 여러 가지 사명(28a~31c)
2) ‘영적인 것’ 또는 ‘영적인 알림’에 대하여(31c~d)
3) 한 정치적 사건에 대한 저항(32a~e)
4) 자신의 행각에 대한 증언을 요구함(33b~c)
7. 자신의 변론 태도와 관련해서: 무죄 판결을 애걸하지 않는 까닭(34b~35d)
II. 사형 구형에 대한 반대 제의를 벌금형으로 하는 것과 관련된 진술(35e~38b)
III. 최후진술(38c~42a)
1. 사형판결의 결과에 대해(38c~39b)
2. 유죄판결을 내린 이들에 대해(39c~d)
3. 무죄 방면을 위해 투표한 이들에 대해(39e~41d)
4. 모두를 향한 부탁과 작별(41d~42a)
<크리톤> 편
해제
목차
I. 대화의 시작(43a~44b)
II. 크리톤이 탈옥을 종용함(44b~46a)
1. 친구를 잃고 돈이 아까워 친구를 구해내지 못했다는 많은 사람(다중)이 나쁜 평판도 듣게 될 일을 걱정하여(44b~45a)
2. 다른 나라로 가는 일이 다 잘될 것임을 말함(45b~c)
3. 자식들의 양육과 교육 문제를 생각할 것을 권유함(45c~d)
4. 친구를 어떻게든 구해내지 못한 소심함을 탓할 사람들의 평판을 두려워함(45e~46a)
III. 소크라테스의 대답(46b~54e)
1. 크리톤의 권유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대답(46b~49a)
1) 최선의 것으로 판단되는 원칙의 준수를 말함(46b~c)
2) 많은 사람의 의견들(평판들)에 대하여(46c~47d)
3) 건강과 관련해서는 많은 사람의 의견 아닌 한 전문가의 의견이 중요함을 강조함(47d~48a)
4)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훌륭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며, 이에는 많은 사람의 의견이 중요한 게 아님을 말함(48a~b)
2. 이에 근거하여 판단할 두 가지 준칙(49a~50a)
1) 어떤 식으로든 고의로 올바르지 못한 짓을 해서는 아니 된다949a~e)
2) 합의한 것이 올바른 것인 한, 이는 이행해야만 한다(49e~50a)
3. 소크라테스와 의인화된 법률 및 시민 공동체 사이의 대화(50a~54d)
대화자들
<파이돈> 편
해제
목차
I. 대화에 들어가기에 앞서(57a~61c)
1. 소크라테스와의 담화 내용을 소개하기에 앞선 첫머리 대화957a~59c)
2. 감옥으로 소크라테스를 찾아간 친구와 제자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눔(59c~61c)
II. 죽음과 관련된 논의(61c~69e)
1. 자살에 대해 논의함(61c~62e)
2. 철학자(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와 죽음(63a~69e)
1) 죽음이 몸에서 혼이 벗어나는 것인 한, 그리고 철학자가 몸에서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한, 그는 죽음을 추구해 온 것임을 환기시킴(64a~e)
2) 혼 자체만으로 얻게 되는 지혜와 참된 훌륭함(덕): 혼의 순수화: 사후의 문제와 관련된 낙관적 희망(65a~69e)
III. 혼의 불멸성에 대한 논의(69e~107b)
1. 케베스가 혼의 불멸성이 증명되어야 하는 이유를 말함(69e~70c)
2. 혼의 불멸성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첫 번째 논변(70c~77d)
1) 대립되는 것들은 대립되는 것들에서 생긴다는 원리 또는 윤회설에 입각한 논변(70c~72e)
2) 상기설에 입각한 논변: 배움은 상기함이며, 그 앎의 대상들은 ‘아름다움 자체’나 ‘좋음 자체’와 같은 형상들이다(72e~77a)
3) 시미아스와 케베스는 이를 반쪽의 논증이라 하며 나머지 논증까지 요구함; 태어나기 전의 혼이 있었다 해서 사후에도 그것이 있다는 게 논증되는 것은 아니라며(77b~78a)
3. 혼의 불멸성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두 번째 논변: 닮음, 유사성에 의한 논증(78b~84b): 있는 것들의 두 종류 중에서 형상을 닮은 혼은 죽지 않는 것임을 말함.
4. 두 번째 논변에 대한 시미아스와 케베스의 의문 제기(84d~88b)
1) 시미아스의 의문 제기: 조율된 조화 현상에 빗댄 혼(85b~86d)
2) 케베스의 의문 제기: 여러 차례 거듭나더라도, 마지막 몸보다는 오래가지 못할지 모르는 혼(86e~88b)
5. 막간(88c~91c)
6. 시미아스의 의문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대답(91c~95a)
7. 케베스의 의문(95b~96a)
1) 그 요지의 재정리:혼은 전적으로 죽지 않으며 파되될 수 없는 것임을 증명해 달라는 요구(95b~e)
2)케베스의 요구는 결국 사물들의 생성과 소멸 전반에 관련된 원인 구명을 요구하는 것이 됨(95e~96a)
8. 케베스의 요구가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자연 탐구와 관련된 자신의 편력과 자신이 택한 차선의 방법에 대해서 말하게 함(95e~102a)
9. 혼의 불멸성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논변: 형상 이론에 입각해 논변을 함(102a~107b)
IV. 신화: 저승 또는 참된 지구에 대한 이야기(107c~115a)
V. 소크라테스의 최후 장면과 그의 죽음(115a~118a)
관련 사진
참고 문헌
고유명사 색인
내용 색인
<에우티프론> 편
해제
대화자들
I. 시작하는 대화(2a~5d)
1. 에우티프론이 소크라테스가 기소된 이유를 들음(2a~3e)
2. 에우티프론이 자기 아버지를 살인죄로 기소하게 된 경위를 소크라테스가 들음(3e~4e)
3. 소크라테스가 에우티프론에게 ‘경건함’이 무엇인지에 대한 가르침을 청함(4e~5d)
II. '경건함‘에 대한 첫 번째 강의: 사례 열거를 통한 의미 규정의 잘못(5d~6e)
1. 에우티프론이 살인, 성물 절취 따위의 올바르지 못한 것에 대한 기소와 같은 사례를 들어, 이를 ‘경건한 것’이라 말함(5d~6c)
2. ‘경건함’에 대한 물음은 그것의 한두 가지 사례가 아닌, 그것의 ‘특성’ 자체에 대한 것임을 환기시킴(6c~11b)
III. 두 번째 정의와 이에 대한 검토(6e~11b)
1. ‘경건함’은 ‘신들의 사랑을 받는 것’; 이에 대한 검토(6e~9c)
[8c]소크라테스: 에우티프론, 사람들이 올바르지 못한 짓을 저지른 걸 시인하면서도, 그래 그걸 시인해 놓고서도, 그렇더라도 자신들이 처벌을 받아서는 아니 된다고 주장하오?
에우티프론: 결코 그리 하지는 않습니다.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그들이 온갖 짓과 온갖 말을 다 하지는 않소. 자신들이 비록 올바르지 못한 짓을 저지르긴 했지만, 처벌을 받아서는 아니 된다는 걸 감히 말한다거나 주장하지는 않는다고 나는 생각하오. 다만 자신들이 올바르지 못한 짓을 저지른 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단는 게 내 생각이오. 아니 그렇소?
에우티프론: 참된 말씀입니다.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올바르지 못한 짓을 저지른 자가 벌을 받아서는 아니 된다는 그 주장을 그들이 하는 게 아니라, 아마도 이걸, 즉 올바르지 못한 짓을 저지른 쪽이 누구이며 무슨 짓을 했고 또 언제 했는지를 두고 말다툼을 하는 것일 게요.[8d]
[R-Commentary] 다시 말해 ‘올바름’이라는 실체적이고 불변하는 ‘기준’(idea)이 있으며, 사람들은 보통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스스로는 그것을 어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이데아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행위’고 그것에 대한 ‘잘못된 정당화’다. 그렇다면 플라톤은 여기서 horismos katholou로서의 보편적 정의를 내리기 위해 ‘행위’와 ‘판단’ 쪽에 오류 가능성을 두는 셈이다. 과연 그럴 것인가?
2. ‘경건함’은 ‘모든 신의 사랑을 받는 것’; 이에 대한 검토(9d~11b)
[10a]소크라테스: (...) 우리는 ‘운반되는 [어떤] 것’과 ‘운반하는 [어떤] 것’, ‘이끌리는 것’과 ‘이끄는 것’,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거니와 (...)
(...)
[10b]그러니까, 그것이 보이기 때문에, 이 때문에 그것이 보이게 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것이 보이기 때문에, 이 때문에 그것은 보이는 것이오. 또한 그것이 이끌리는 것이기 때문에, 이 때문에 그것이 이끌리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이끌리기 때문에, 이 때문에 그것은 이끌리는 것이오.
(...)
[10c]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오. 즉 만약에 어떤 것이 생성되거나(무엇으로 되거나) 무엇을 겪는다면, 그것이 생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생성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생성되기 때문에 생성되는 것이오. 또한 그것이 겪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겪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겪기 때문에 그것은 겪는 것이오. (...) 즉 그것이 사랑받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사랑하는 이들한테서 사랑을 받는 게 아니라, 그것이 사랑받기 때문에 그것은 사랑받는 것이라는 게 말이오.
(...)
[10d]그러니까 그것이 경건하기 때문에 사랑을 받지, 그것이 사랑을 받기 때문에 즉 이 이 때문에 경건하지는 않겠소? (...) 그렇다면 에우티프론! 당신이 말하듯, 신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 경건한 것이 아니고, 경건한 것이 신들의 사랑을 받는 것도 아니니, 둘은 서로 다른 것이오.
[R-Commentary] 생성과 주체, 또는 겪는 것과 겪음을 당하는 것, 그것은 다르다. 이 복잡한 논변은 뒤에 이어질 ‘본질’과 ‘속성’(우유성)의 관계에 대해 논하고 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플라톤이 각각의 현존에 대해 실체(ousia)를 분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
(...)
[10e]경건한 것은 이 때문에, 즉 그것이 경건하기 때문에 사랑받게 되지, 그것이 사랑받기 때문에 경건하지는 않다는 데 우리가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오. (...) 반면에 신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신들한테서 사랑을 받기 때문에, 즉 바로 이 ‘사랑받음’(phileisthai)으로 인해서 신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지, 그것이 신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즉 이 때문에 사랑을 받게 되는 게 아니라는 데도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오.
3. ‘모든 신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경건함’의 우유성일 뿐 본질이 아님이 지적됨(11a~b)
[11a]당신은 경건함(경건한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받고서는, 내게 그것의 본질(ousia)을 밝히려고 하지는 않고, 그것과 관련된 어떤 성상(性狀, 偶有性, 속성: pathos)을, 말하자면 이 경건함이 처한 상태를, 곧 모든 신한테 사랑받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소.
☞ ousia와 pathos를 대비 진술한 것은 플라톤의 문헌 중 이곳이 처음이다. ousia는 이전에는 ‘자산’이란 뜻의 일상어였는데, 자연철학자들로부터 시작해서 플라톤에 이르러 완연한 철학적 의미를 띄게 된다. 이 낱말은 ‘자산’(property, substance)이라는 의미 뿐 아니라, ‘본질’(essence), ‘실재성’(reality), 존재(being) 등을 의미한다. 이 대화편에서는 플라톤의 중기 이후 대화편과는 달리 ‘실재성’이나 ‘존재’의 의미보다, ‘본질적 정의’의 단면을 드러낼 뿐이다. 흔히 ‘실체’로 번역되는 substance는 라틴어 substantia에서 유래되고, 이는 바로 ousia에 상응한다.
IV. 맥이 빠진 에우티프론에게 소크라테스가 협력을 약속하며 성원을 함(11b~e)
V. 세 번째 정의와 이에 대한 검토(11e~14a)
1. 올바름의 한 부분인 경건함(신성함): 최근류(最近類)와 종차(種差)(12c~e)
2. ‘경건함’은 신들에 대한 섬김이다.
VI. 네 번째 정의와 이에 대한 검토(14a~15c)
1. ‘경건함’은 신들한테 제물을 바치고 기원을 하는 데 대한 일종의 앎이다.
[14d]그렇다면 옳게 청을 한다는 것은 그들한테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그들에게 바치는 것이라고 당신은 말하오? (...)
[14e]그와는 달리, 옳게 바친다는 것은 우리한테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그들에게 보답으로 바치는 것이겠소? 어떤 사람에게 전혀 필요로 하지도 않은 그런 것을 그에게 선물로 바친다는 것은 어쩌면 제대로 알고서 하는 짓(technikon)이 아니겠기 때문이오.
(...)
그렇다면, 에우티프론! 경건은 신들과 인간들 사이의 일종의 거래 기술(교역술: emporikē, technē)일 것이오.
2. ‘경건함’은 신들에게 만족스런 것(마음에 드는 것)들을 말하고 행하는 것: ‘신들한테 사랑받는 것’이라는 두 번째 정의로 되돌아감.
VII. 대화의 종결(15b~16a)
1. ‘경건함’이 무엇인지를 처음부터 다시 고찰할 것을 소크라테스가 제의함.
2. 이를 에우티프론이 훗날로 미룸.
<소크라테스의 변론> 편
해제
I. 소크라테스의 자기 변론(17a~35d)
1. 법정에 처음 서는 늙은이의 말투에 대한 이해를 구함(17a~18a)
2. 고발인들을 두 부류로 나눔(18a)
3. 법정 고발 이전에 자신에 대한 선입관을 갖게 한 최초의 고발인들과 이들에 대한 변론(18b~24b)
1) 자신을 자연에 대한 탐구자로 잘못 말함(19a~d)
2) 자신을 소피스테스로 잘못 앎(19d~20a)
4. 자신에 대한 비방들을 생기게 한 특이한 일과 그 이후의 행각(20c~24a)
1) 델피 신탁의 “소크라테스보다 더 현명한 자는 없다”는 응답을 전해 들음(20c~21a)
[20d]아테네인 여러분! 제가 이 이름(명성)을 얻게 된 것은 어떤 지혜(sophia)로 인해서랍니다. 그러면 이건 어떤 지혜이겠습니까? 이것이야말로 인간적인 지혜일 것입니다.
2) 신탁의 응답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러 나섬(21b~22e)
(1) 정치인들과의 대화에서 확인한 것(21c~e)
(2) 시인들과의 대화에서 확인한 것(22a~c)
(3) 장인들과의 대화에서 확인한 것(22d~e)
3) 이들에 대한 캐물음으로 증오심을 사는 한편으로 자신이 현자로 소문이 남(23a)
4) 신탁의 응답이 뜻하는 바를 확인함: 무지의 자각이 곧 지혜임을 깨달음(23b)
5) 한가로운 젊은이들이 자신의 흉내를 내어 잘난 사람들에게 캐묻고 다님(23c)
6) 이로 인해 망신당한 자들이 자기가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며 신들을 믿지 않는다고 비난함(23d~e)
5. 멜레토스 등 나중의 고발인들에 대한 신문(24b~28a)
1)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과 관련하여(24b~26a)
[26a]그러나 내가 본의 아니게 그들을 타락시키고 있다면, 법은 그런 잘못들로 이리로 끌고 오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붙잡고서 가르치고 훈계하는 것이오. 내가 알아듣게 될 경우에는, 내가 본의 아니게 하는 것이면 그만두게 될 것이 분명하니까.
2) 나라가 믿는 신들을 믿지 않는다는 죄목과 관련해서(26b~27e)
[26d]보시오, 멜레토스! 그대는 자신이 아낙사고라스를 고소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소? 그대는 그래 여기 이분들을 그처럼 무시하여, 클라조메나이 사람인 아낙사고라스의 책이 그런 주장들로 꽉 차있다는 것도 모를 정도로 문맹이라고 생각하오?
6. 신이 지시한 사명에 대한 의식(28a~34b)
1) 자신에게 부과된 여러 가지 사명(28a~31c)
[29a]여러분! 실로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현명하지도 않으면서 현명한 것으로 행각하는 것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건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니까요. 왜냐하면 아무도 죽음을 모르며, 그것이 인간에게 좋은 모든 것 가운데서도 으뜸가는 것인지조차도 모르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나쁜 것들 중에서도 으뜸가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라도 하는 듯이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어찌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안다고 생각하는 그 비난받을 무지가 아니겠습니까?
[R-Commentary] 이 진술은 에피쿠로스-루크레티우스의 언급과 너무나 닮았다. 과연 [파이돈]의 소크라테스와 [변론]의 소크라테스가 ‘죽음’에 대해 바라보는 관점은 왜 다른 것인가?
☞이와 관련해서 루크레티우스의 다음 언급 참조: “그러므로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고 우리와 전혀 관련이 없다,
정신의 본성이 필멸적인 것으로 드러나 있는 한.
(...)
우리가 존재하지 않게 될 때, 서로 하나로 합쳐져
우리의 존재를 이루고 있는바 육체와 영혼의 분리가 일어날 때,
그때는 분명코, 이미 존재하지 않을 우리에게, 전혀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을 것이며, 그 무엇도 감각을 일으킬 수 없으리라
(...)
죽음 속에는 우리가 두려워할 게 전혀 없다는 것을,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비참하게 될 수 없다는 것을,
또 일단 불멸의 죽음이 필멸의 생명을 데려가버리면,
그가 언젠가 태어났었든, 아무 때도 태어나지 않았었든, 이제는 전혀 차이가 없다는 것을.”(루크레티우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830~869행)
[30c]만일에 여러분께서 제 스스로 말씀드리고 있는 그런 사람인 저를 사형에 처하신다면, 여러분께선 저를 해치시기보다도 여러분 자신들을 더 해치시게 될 것이라는 걸 잘 아시고 계십시오. 멜레토스도 아니토스도 전혀 저를 헤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가능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30d]저는 한결 나은 사람이 한결 못한 사람에 의해서 해를 입는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2) ‘영적인 것’ 또는 ‘영적인 알림’에 대하여(31c~d)
3) 한 정치적 사건에 대한 저항(32a~e)
[32c]제가 구금이나 죽음을 두려워하여, 올바르지 못한 결정을 내리려는 여러분 편이 되느니보다는 오히려 법(nomos)과 올바른 것(to dikaion)의 편이 되어 온갖 위험을 무릅써야만 한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이 나라가 아직은 민주 체제였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R-Commentary] 소크라테스의 이 언급 마지막 문장을 잘 봐야 한다. nomos는 민주체제일 때 위험을 무릅쓰고 지킬만 한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아테네’에서 nomos는 불합리할 경우 지킬만한 권위를 시민들에게 제기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새겨야 한다.
4) 자신의 행각에 대한 증언을 요구함(33b~c)
7. 자신의 변론 태도와 관련해서: 무죄 판결을 애걸하지 않는 까닭(34b~35d)
II. 사형 구형에 대한 반대 제의를 벌금형으로 하는 것과 관련된 진술(35e~38b)
III. 최후진술(38c~42a)
1. 사형판결의 결과에 대해(38c~39b)
[38d]죽음을 피하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비천함(poēria)을 피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울 것입니다. 이것이 죽음보다도 더 빨리 내닫기 때문입니다.
2. 유죄판결을 내린 이들에 대해(39c~d)
3. 무죄 방면을 위해 투표한 이들에 대해(39e~41d)
[40c]죽는다는 것은 둘 가운데 하나이겠기 때문입니다. 그건 이를테면, 아무 것도 아닌 것(mēden)이어서, 죽은 자는 아무 것에 대한 아무 감각(aisthēsis)도 갖지 않거나, 또는 전해 오는 바대로, 그것은 일종의 변화(metabolē)이며 혼(psychē)에는 이곳에서 다른 곳으로의 이주(metoikēsis)일테니까요. 그리고 그것이 정녕 아무 감각도 없는 상태이기는 하나, 그것이 이를테면, 잠자는 사람이 아무 꿈도 꾸지 않을 경우의 수면상태(hypnos)라면, 죽음은 놀라운 이득일 것입니다. (...) [40e]그러므로 만약에 죽음(thanatos)이 그런 것이라면, 저로서는 그것을 이득이라 말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시간이란 것도 바로 이처럼 하룻밤보다 전혀 더 길 것이 없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시, 죽음이라는 것이 이곳에서 다른 곳으로 떠나가는 것과 같은 것이라면, 그리고 전해 오는 말이, 즉 죽은 자들이 그래서 모두 거기에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재판관 여러분, 이보다 더 크게 좋은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41a]만일에 누군가가 스스로 재판관들이라고 주장하는 이곳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저승(하데스)에 이르러, 진짜 재판관들을, 즉 그곳에서도 재판을 한다고 하는 바로 그 재판관들인 미노스와 라다만티스 및 아이아코스 그리고 트리프톨레모스를, 그리고 또 그 밖의 분들로, 반신 반인들 가운데서도 자신들의 일생을 통해서 올발랐던 분들을 그가 보게 된다면, 그런 경우에도 이 떠나감이 하찮은 것일까요? 또는 이번에는 오르페우스, 무사이오스, 헤시오도스 그리고 호메로스와 접하게 되는 대가로 여러분 가운데 누구라면 얼마를 지불할까요? 만약에 이것이 진실이라면, 몇 번이고 죽고 싶은 마음이니까요. (...) [41b]그리고 무엇보다도 굉장한 것은, 제가 이곳 사람들한테 했듯, 그곳 사람들 가운데서 누가 지혜롭고 또 누가 스스로는 지혜롭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지, 그들에게 캐묻고 시험을 하면서 지내는 것입니다.
4. 모두를 향한 부탁과 작별(41d~42a)
[41d]재판관 여러분! 여러분 또한 죽음에 대해서는 희망차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 한 가지는 진실이라고 생각해야만 하고요. 즉 선량한 사람에게는, 그가 살아서나 죽어서나 간에 그 어떤 나쁜 일도 없으며, 또한 이 사람의 일들을 신들이 소홀히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 말입니다.
<크리톤> 편
해제
[200]“정녕 이런 조건으로[철학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 저를 방면하려 하신다면, 저는 여러분께 말할 것입니다. 아테네인 여러분! 저는 여러분을 반기며 사랑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보다는 오히려 신께 복종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살아 있는 동안은 그리고 할 수 있는 동안까지는, 지혜를 사랑하는(철학하는) 것도, 여러분께 충고를 하는 것도, 그리고 언제고 여러분 가운데 누구든 만나게 되는 사람한테 이 점을 지적하는 것도 그만 두지 않을 것입니다.”(29c~d) 그는 여기서 당당하게 나라에 대한 불복종을 공언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더 상위의 것이라 할 델피의 신에 대한 복종을 내세우고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Santas는 지난 1세기 동안 제기되어 온 문제로서, 《변론》편과 《크리톤》편 사이에 어떤 불일치가 있지 않는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걸로 말하며, 퍽 재미있는 언급을 하고 있는데, 그 한 구절을 보자. “우리는 《변론》편에서의 가정적(假定的)인 경우와 《크리톤》편에서의 현실적인 경우를 대하는 데 잇어서 소크라테스가 일관성이 없었던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 《변론》편에서는 가정적인 경우에 있어서의 소크라테스의 입장은 시민적 저항, 또는 양심적 거부의 한 사례이다. … 반면에 감옥에서 [201]탈출함은 법률에 대한 은밀하고 회피적인 불복 행위이며, … 법률과 나라를 해치는 행위이다. … 무엇보다도 우선 두 작품의 극적인 계기들이 매우 다른다. 《변론》편에서는 그가 자기의 온 생애이기도 했던 자기 일에 대한 공개 재판을 받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이는 오랜 세월 동안의 그에 대한 모든 비방에 대항하여 자신을 변호하고, 같은 시민들에게 자기가 하고 있던 일에 대해서, 그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던 이 일에 가치를 부여하게 될 … 적절한 때며 아마도 마지막 시점이다. … 그러나 《크리톤》편에서는 이 모든 것이 지난 일이다. 그의 일이 옳고 좋은 것이라는 걸 아테네인들에게 납득시키는 시간은 이미 지나갔다. 이제는 그의 일과 그의 삶이 의거했던 그 원칙들과 그가 온 생애에 걸쳐 택하였던 그리고 법정에서 택하였던 선택들을 지키는 것만 남아 있을 뿐이다.”(54~5면)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그런 원칙의 준수와 그런 선택은 현실의 조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일생을 통해 개선하여 이룩하고자 한 조국을 위한 것이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R-Commentary] 이 문제는 아마 영원히 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박종현 선생은 여기서 인용한 Santas의 의견과는 좀 다르게 소크라테스가 ‘조국의 실정법’보다 ‘자신이 원하는 어떤 법’을 원했다고 본다.
대화자들
I. 대화의 시작(43a~44b)
II. 크리톤이 탈옥을 종용함(44b~46a)
1. 친구를 잃고 돈이 아까워 친구를 구해내지 못했다는 많은 사람(다중)이 나쁜 평판도 듣게 될 일을 걱정하여(44b~45a)
[44c]소크라테스: 하지만 여보게 크리톤! 왜 우리가 많은 사람의 의견(평판)에 대해서 그처럼 마음을 쓰게 되지? 더 종중해야 할 가장 합리적인 사람들은 이 일이 의당 그렇게 되어야 하듯, 그런 식으로 처리되었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일세.
2. 다른 나라로 가는 일이 다 잘될 것임을 말함(45b~c)
3. 자식들의 양육과 교육 문제를 생각할 것을 권유함(45c~d)
4. 친구를 어떻게든 구해내지 못한 소심함을 탓할 사람들의 평판을 두려워함(45e~46a)
III. 소크라테스의 대답(46b~54e)
1. 크리톤의 권유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대답(46b~49a)
1) 최선의 것으로 판단되는 원칙의 준수를 말함(46b~c)
2) 많은 사람의 의견들(평판들)에 대하여(46c~47d)
3) 건강과 관련해서는 많은 사람의 의견 아닌 한 전문가의 의견이 중요함을 강조함(47d~48a)
4)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훌륭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며, 이에는 많은 사람의 의견이 중요한 게 아님을 말함(48a~b)
[48b]그리고 이것 또한 가장 중히 여겨야 할 것은 사는 것(to zēn)이 아니라 훌륭하게(잘) 사는 것(to eu zēn)이라고 함이 우리에게 있어서 여전히 타당한지 아니면 그렇지 못한지 다시 생각해 보게나.
(...) ‘훌륭하게’(잘: eu)는 ‘아름답게’(훌륭히, 멋지게: kalōs) 및 ‘올바르게’(dikaiōs)와 동일한 것 (...)
2. 이에 근거하여 판단할 두 가지 준칙(49a~50a)
1) 어떤 식으로든 고의로 올바르지 못한 짓을 해서는 아니 된다949a~e)
2) 합의한 것이 올바른 것인 한, 이는 이행해야만 한다(49e~50a)
3. 소크라테스와 의인화된 법률 및 시민 공동체 사이의 대화(50a~54d)
[51e: 의인화된 법률의 대사]그대들 가운데 누구든, 우리가 재판을 하거나 또는 다른 일들에 있어서 나라를 경영하는 방식을 보고서도 머무른다면, 우리는 이미 이 사람이, 우리가 시키는 것들은 이행하기로 우리와 사실상 합의한 것이라고 보아, 또한 복종하지 않는 자는 삼중으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보고, 그건 자기를 태어나게 한 우리에게 불복한 때문이요, 자기를 양육한 우리에게 불복한 때문이며, 그리고 우리에게 복종하기로 합의하고서도 복종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우리가 무언가 잘못할 경우에 우리를 납득시키지도 않기 때문이지.
(...) [52d]시민생활을 함에 있어서 그대가 따르기로 우리와 맺은 계약(synthēke) 사항들과 합의사항들을 어기고서 도망하려 함으로써, 그대는 가장 미천한 노예나 함직한 바로 그런 짓거리들을 하고 있느니라.
[R-Commentary] 소크라테스가 의인화한 이 ‘법률’의 대사를 살펴보자면 소크라테스가 크리톤의 제안을 거절한 것이 결코 국가와 법에 대한 ‘맹목적 복종’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더 명백히 알 수 있다. ‘합의’나 ‘계약’을 깨는 것은 ‘미천한 짓’이라는 전제가 이 대사에는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실상 이 합의는 ‘암묵적 합의’로서 그것의 근본적인 정당성 여부는 소크라테스가 이 순간에 더 이상 묻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 충분히 ‘납득시키’려고 노력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의 이 논변은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와 논변의 중요한 근거 하나를 누락하고 있는 게 되는 샘이다. 고의든 아니든 간에 말이다.
[54b]자식들도, 사는 것도, 또는 그 밖의 어떤 것도 올바른 것(to dikaion)보다 더 귀히 여기지 말라.
<파이돈> 편
해제
목차
I. 대화에 들어가기에 앞서(57a~61c)
1. 소크라테스와의 담화 내용을 소개하기에 앞선 첫머리 대화957a~59c)
2. 감옥으로 소크라테스를 찾아간 친구와 제자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눔(59c~61c)
[60e]지나간 나의 생애에 있어서 똑같은 꿈이 여러 차례에 걸쳐 내게 나타나서는, 그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보이기는 했지만, 똑같은 것들을 말하는 거야. ‘소크라테스여, 시가를 지어라, 그리고 이를 일삼아 하라’고 말하는 거야. (...) 그래서 이 꿈은 이처럼 내가 해 오던 이 일을, 즉 시가를 짓도록 나에게 성원을 해주었네. 철학(philosophia)은 가장 위대한 시가(megistē mousikē)인데,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이것이기 때문이지.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철학과 시가를 동일시하고 있지만 이 뒤에 곧 ‘통속적인 시가’를 지어 보았노라고도 한다.]
II. 죽음과 관련된 논의(61c~69e)
1. 자살에 대해 논의함(61c~62e)
2. 철학자(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와 죽음(63a~69e)
1) 죽음이 몸에서 혼이 벗어나는 것인 한, 그리고 철학자가 몸에서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한, 그는 죽음을 추구해 온 것임을 환기시킴(64a~e)
[63e]진정으로 철학(지혜에 대한 사랑: philosophia)으로 생애를 보낸 사람은 내가 보기에는 죽음에 임하여 확신을 갖고 있으며, 또한 자기가 죽은 뒤에는 저승에서 최대의 좋은 것들을 얻게 될 것이라는 희망에 차 있을 것이 당연하다 (...)
[64a]철학에 옳게 종사하여 온 사람들은 모두가 다름 아닌 죽는 것[apothenēiskein=to die=dying]과 죽음[tethnanai=to be dead=being dead]을 스스로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실은 모르고 있는 것 같으이. 그러니, 만일 이것이 진실이라며, 온 생애를 통하여 다름 아닌 그것을 열망해 오다가, 오래도록 스스로 열망도 하며 추구하여 오기도 하던 것이 막상 자기에게 닥쳐왔을 때는 성을 낸다는 것은 확실히 이상한 짓일 것이네.
2) 혼 자체만으로 얻게 되는 지혜와 참된 훌륭함(덕): 혼의 순수화: 사후의 문제와 관련된 낙관적 희망(65a~69e)
[65c]적어도 혼이 가장 훌륭하게 추론을 하게 되는 것은 아마도, 이것들 중의 어떤 것도, 즉 청각도 또는 어떤 고통이나 즐거움도 혼의 주의를 돌려놓으면 괴롭히는 일이 없고, 혼이 몸과 결별하여 최대한으로 그 자체로만 있게 되며, 혼이 가능한 한 몸과 관계하지도 접촉하지도 않는 상태에서, 존재하는 것(진실: to on)에 이르고자 하는 그때일 걸세.
[67c~d]순수화(정화: katharsis)는 (...) 혼을 몸에서 되도록 분리하고(chōrizein), 몸이 모든 부분에서 혼이 그 자체로만 합쳐 모이고 결집되게 하여, 현재에 있어서나 이후에 있어서나, 마치 사슬에서처럼 몸에서 혼을 풀려나게 해서, 가능한 한 혼이 그 자체로 홀로 살아가게끔 버릇을 들이는 것 (...)
[67d]이것이 실은 죽음이라 일컬어지는 것으로서, 몸에서의 혼의 풀려남(lysis)과 분리(chōrismos)가 아니겠는가?
(...) 혼을 풀려나게 하는데 언제나 가장 열심인 사람들은, 우리가 주장하듯, 오직 제대로 지혜를 사랑하는(철학하는) 사람들(hoi philosophountes)뿐이거니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철학자들: philosophoi)의 수련(meletēma)이란 것도 바로 이것, 즉 몸에서의 혼의 풀려남과 분리이겠지?
(...) [68a]누군가가 참으로 지혜(phronēsis)를 사랑하고, 같은 이 기대를, 즉 저승에서가 아니고는 다른 어떤 곳에서도 제대로 지혜를 접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기대를 단단히 붙들고 있는 사람이, 자신이 죽게 되매 성을 내며 그곳으로 가기를 기꺼워하지 않을까? (...) 그런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그건 아주 불합리한 일이 아니겠는가?
(...) [68c]그러니까 절제(sōphrosynē)도, 많은 사람(다중: hoi polloi) 또한 그렇게 일컫는 것으로서, 욕망들과 관련해서 몹시 흥분한 상태로 되는 일이 없고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절도를 유지한다는 것도, 이 사람들만에, 즉 누구보다도 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지혜에 대한 사랑(철학) 속에서 살고있는 사람들에게나 어울리지 않겠는가?
III. 혼의 불멸성에 대한 논의(69e~107b)
1. 케베스가 혼의 불멸성이 증명되어야 하는 이유를 말함(69e~70c)
2. 혼의 불멸성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첫 번째 논변(70c~77d)
1) 대립되는 것들은 대립되는 것들에서 생긴다는 원리 또는 윤회설에 입각한 논변(70c~72e)
[70c]대립되는 것들(ta enantia)은 대립되는 것들 이외의 다른 어떤 것에서도 생기지 않는 것인지 (...)
(...)[71d]살아있음에 대해 죽어있음이 대립되는 것 (...) 그것들은 서로한테서 생기고 (...)
2) 상기설에 입각한 논변: 배움은 상기함이며, 그 앎의 대상들은 ‘아름다움 자체’나 ‘좋음 자체’와 같은 형상들이다(72e~77a)
[74a]상기함은 닮은(유사한) 것들(homoia)로 해서 성립되기도 하지만, 닮지(유사하지) 않은 것들(anomoia)로 해서도 성립하는 게 아니겠는가? (...) 그러나 닮은(유사한) 것들로 해서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아무튼 상기하게 될 때는, 그가 이런 걸 아울러 겪게(경험하게) 되는 게, 즉 상기함의 실마리가 된 것이 그가 상기하게 된 것과 그 유사성(닮음: homoiotēs)에 있어서 어떤 점에서 부족한지 또는 아니한지를 생각하게 되는 게 필연적이지 않겠는가? (...) 짐작건대 우리는 같은(동일한: ison) 무엇인가가 있다고 보겠지? 나는 나무토막이 나무토막과, 돌이 돌과 같음을, 또 그런 등속의 다른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 이외의 다른 무엇인가를, 즉 같음(동일함) 자체(auto to ison)를 말하고 있는 걸세. (...) [74b]우리는 이것에 대한 앎(지식: epistēmē)을 어디에서 얻게 되었는가? (...) [74d]누군가가 뭔가를 보고서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할 경우에, 즉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것이 다른 어떤 것과 같은 그런 것으로 되려고 하지만, [74e]그것과 같은 그런 것으로 되기에는 부족하기도 하고, 또한 될 수도 없거니와 훨씬 하찮은 것이라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될 경우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사람은, 이것이 닮기는 했으되(proseoikenai) 훨씬 모자란다고 그가 대비하여 말하고 있는, 그 대상을 먼저 알고 있었을 것임이 어쩌면 필연적일 거라는 데 대해 우리는 동의하고 있는가? (...) 그와 같은 일은 우리 또한 같은 것들(ta isa)과 같음 자체(auto to ison)와 관련해서도 겪었을(경험했을) 게야. (...) 따라서 우리가 처음에 같은 것들을 보고서, 이것들 모두가 같음(to ison)과 같은 그런 것으로 되려고 하지만 훨씬 모자란다는 생각을 하게 된 때의 그 시간보다는 이전에 우리가 같음을 먼저 알고 있는(proeidenai) 게 필연적일세.
3) 시미아스와 케베스는 이를 반쪽의 논증이라 하며 나머지 논증까지 요구함; 태어나기 전의 혼이 있었다 해서 사후에도 그것이 있다는 게 논증되는 것은 아니라며(77b~78a)
3. 혼의 불멸성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두 번째 논변: 닮음, 유사성에 의한 논증(78b~84b): 있는 것들의 두 종류 중에서 형상을 닮은 혼은 죽지 않는 것임을 말함.
[80e]바르게 지혜를 사랑하는(철학하는) 것 (...) 가벼운 마음으로 죽는 것 (...) 죽음의 수련 (...)
[81a]혼은 자기와도 닮은 것인(to homoion) 보이지 않는 것(to aides), 즉 신적이며 죽지 아니하고 지혜롭게 하는 것이 있는 데로 떠나가, 이곳에 이른 혼은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니 (...) 그렇다면 이들 중에서도 가장 행복한 자들은 그리고 가장 좋은 곳으로 가는 자들은 평민적이고 시민적인 훌륭함(덕)(hē dēmotikē kai politikē aretē)을 닦은 이들이 아니겠는가? [82b]바로 이것을 사람들이 절제(건전한 마음 상태; sōphrosynē) 및 올바름(정의: dikaiosynē)이라 일컫는데, 이는 철학이나 지성(nous)을 거치지 않은 채 습관(ethos)과 단련(수련: meletē)을 통해서 생기는 것이네만.
[84a]오히려 그[철학자]의 혼은 추론(헤아림: logismos)을 따르며 언제나 이에 열중함으로써 그것들에 대해 평온함을 갖추고, 참된 것(to alēthes)과 신적인 것(to theion), 그리고 의견(doxa)의 대상이 아닌 것(to adoxaston)을 바라보며, 이런 것에 의해 양육되어, 살아 있는 동안에도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고 생각할뿐더러, 죽어서도, 동류의 것(to syngenes)과 그와 같은 것한테로 가서, 인간적인 나쁜 것들에서 해방될 것으로 생각하네. (...) 그의 혼이 (...) 사방으로 흩날리어 날아가 버리고 아무 것도 어디에고 남아 있지 않게 되지나 않을까 하고 혼이 두려워할 위험한 사태는 전혀 없으이.
4. 두 번째 논변에 대한 시미아스와 케베스의 의문 제기(84d~88b)
1) 시미아스의 의문 제기: 조율된 조화 현상에 빗댄 혼(85b~86d)
[85e][시미아스의 반론]어쨌든 제게는 이런 점에서 그렇습니다. 누군가가 리라와 현들의 조화(harmonia)에 관련해서도 같은 주장을 펼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죠. 즉 조율된 조화란 볼 수 없고(aoraton) 물질적이지 않으며(asōmaton) 아주 아름다운(pankalon) 어떤 것이며 조율된 리라에 있어서 신적인 것(theion)이지만, [86a]리라 자체와 현들은 물체들(sōmata)이며 물질적인 성질의 것들이고 복합적인 것들이요, 지상의 것들이며 죽게 마련인 것(to thnēton)과 동류인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 현들이 툭 끊기면, 리라와 현들이, 사멸하는 성질의 것들인 터에, 여전히 존재할 아무런 방도도 없지만, [86b]신적이며 사멸하지 않는 것과 같은 성질의 것이며 동류의 것인 조율된 조화는 소멸해버리니까요. 그것도 사멸하는 것에 앞서 소멸해버리는 겁니다.
2) 케베스의 의문 제기: 여러 차례 거듭나더라도, 마지막 몸보다는 오래가지 못할지 모르는 혼(86e~88b)
[88a][케베스의 반론]이런 것들[영혼의 윤회와 불멸]에 동의해 줄지라도, 다음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동의해주지 않는다면, 즉 혼이 여러 번의 태어남을 견디어내다가 마침내는 죽음들 가운데서 어느 한 차례의 것에서 아주 소멸해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동의해 주지 않는다면, [88b]그러면서도 이 죽음과 혼에도 파멸을 가져다 줄 이번의 몸과의 분리(dialysis)를 아무도 모른다고 말한다면 (...) 혼이 전적으로 죽지 않는 것이며 파괴도리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증명할 수 없는 사람으로서 죽음에 대해 확신을 갖는다는 것은, 생각 없이 확신을 갖는 것이 아니고서야, 누구에게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만약에 그렇지가 못하다면, 죽게 될 사람이 자신의 혼이 몸에서의 이번의 풀려남에서 완전히 소멸해 버리지나 않을까 하고 언제나 두려워할 게 필연적입니다.
5. 막간(88c~91c)
[89d]우리가 논변(논의)을 싫어하는 사람들(misologoi)로 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지. 사람을 싫어하는 이들(misanthrōpoi)이 되듯이 말일세. 이것보다, 즉 논의(논변)을 싫어하는 것보다도 더한 나쁜 일을 누군가가 겪게 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네. 한데, 논변 혐오(misologia)와 인간혐오(misanthrōpia)는 같은 식으로 생기지.
[90e]지금으로서는 나 스스로도 이 문제와 관련해서 지혜를 사랑하는 자세로 임하지 않고 마치 아주 교양 없는 사람들(hoi apaideutoi)처럼 이기기를 좋아하는 자세로 임하고 있어서네. 왜냐하면 교양없는 사람들도 뭔가에 대해 논쟁을 하게 되면, 그 논변이 다루고 있는 것들의 진상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않고, 자신들이 내세운 것들이 같이 있는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도록 하는 데에 열을 올리기 때문일세.
6. 시미아스의 의문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대답(91c~95a)
7. 케베스의 의문(95b~96a)
1) 그 요지의 재정리:혼은 전적으로 죽지 않으며 파괴될 수 없는 것임을 증명해 달라는 요구(95b~e)
2)케베스의 요구는 결국 사물들의 생성과 소멸 전반에 관련된 원인 구명을 요구하는 것이 됨(95e~96a)
8. 케베스의 요구가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자연 탐구와 관련된 자신의 편력과 자신이 택한 차선의 방법에 대해서 말하게 함(95e~102a)
[98b]나로서는 이 기대들을 아무리 큰 대가를 받을지라도 단념할 수가 없었거니와, 오히려 그 책들[아낙사고라스의 책들]을 몹시 서둘러 입수해서는, 최대한으로 빨리 읽었는데, 이는 가장 좋은 것(to beltiston)과 한결 못한 것(to kheiron)을 되도록 빨리 알기 위해서였네. 여보게! 정말이지 이 굉장한 기대에서 나는 내침을 당했네. 그건 내가 책을 읽어 나감에 따라 그 사람이 정신(지성: nous)을 전혀 활용하지도 않고, 또한 사물들에 대한 질서 부여(diakosmein)와 관련된 어떤 원인들을 그것에는 돌리지 않으면서도, 공기와 에테르, 물 그리고 그 밖의 여러 가지 이상한 것들을 원인으로 주장하는 걸 보게 되었기 때문이네.
[100d]내가 단순히 그리고 솔직하게 또한 어쩌면 순진하게 견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일세. 즉 그것을 아름답도록 만드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저 아름다움의 나타나 있게 됨(parousia)이거나 결합(koinoia)이거나 또는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이건 간에 말일세. 왜냐하면 내가 아직은 이것이다 하고 자신 있게 단언하지는 못하지만, 모든 아름다운 것이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움(to kalon)으로 해서라는 건 자신있게 단언하는 바이기 때문일세.
☞ parousia: 영어로는 presence, 불어로는 présence, 독일어로는 Anwesenheit. 플라톤에게 이는 ‘관여’(methexis)와 더불어 이데아 또는 형상이 사물과 관련되는 다른 방식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아름다운 사물들에 아름다움(아름다움 자체)의 모습이 어떤 형태로든 ‘드러나 있게 됨’을 의미한다.
koinoia: 공동체, 협력, 관계, 공동 관여, 공동 관계, 공유, 함께 함, 교합, 결합, 교류, 관계 맺음, 관여 등을 뜻한다.
※ ‘메텍시스’는 사물 쪽에서의 관계 맺음이며, ‘파루시아’는 형상 쪽에서의 관계 맺음, ‘코이노이아’는 상호적인 관계 맺음이다. 남녀의 성적인 관계를 일컫기도 한다.
[101b]하나에 하나가 더하여질 경우에 이 더함이 둘로 됨의 원인이라든가 [101c]또는 하나가 나누어질 경우에 이 나눔이 둘로 됨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걸 자네는 조심하지 않겠는가? 그러면서도 자네는 큰 소리로 외치겠지. 각각의 것이 ‘생성되는 것’(…로 되는 것: gignomenon)이, 그것이 관여하게 될 각각의 것의 고유한 존재(본질:ousia)에 관여하는 것 말고, 달리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 걸 자네는 알지 못한다고 말일세. 이 경우들에 있어서도 자네는 알지 못한다고 말일세. 이 경우들에 있어서도 자네는 둘(dyo)로 됨(to dyo genesthai)의 원인으로 둘인 것(둘임: dyas)에 대한 관여(metaskhesis) 이외의 다른 어떤 원인도 댈 수 없다고, 그래서 둘이고자 하는 것들은 이에 관여해야만 한다고, 그리고 하나(hen)이고자 하는 것은 하나인 것(하나임: monas)에 관여해야만 된다고 말일세.
⇒‘생성’을 ‘본질’에 관련시킴으로써 생성을 목적론에 종속시키는 이 방식이 플라톤의 관념론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이데아의 위계가 형성되는 것도 당연할 것이고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비판하고자 한 지점도 이곳이다.
9. 혼의 불멸성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논변: 형상 이론에 입각해 논변을 함(102a~107b)
[102d]그러고보니 내가 문서를 작성하듯 말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어쨌든 사실은 내가 말한 대로일 게야.
⇒‘문서를 작성하듯 말’한다는 이 고백은 유심히 봐야 한다. 이 고백은 데리다도 자신을 일컬어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러한 대화의 protocol은 고유한 철학적 스타일이다. 어째서 철학이 가지는 parol에 대한 이 제국주의적인 욕구들.
[103b]자네는 방금 말한 것과 그때 말한 것의 차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네. 왜냐하면 그때는 대립되는 사물에서 대립되는 사물(to enantion pragma)이 생긴다고 말했지만, 지금은 대립되는 것(대립자) 자체(auto to enantion)가 자기와 대립되는 것으로 결코 될 수가 없다는 말을 한 것이기 때문일세. 그게 우리 안에 있는(우리에게 있어서의) 것이건 또는 그 본질(본성)에 있어서의 것이건 간에 말일세. 그때는 대립되는 것(대립자)들을 지니고 있는 사물들을 그것들과 같은 이름으로 부르며 이것들과 관련해서 우리가 말했던 것이지만, 방금은 그와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사물들 안에 있게 됨으로써 이것들로 하여금 그런 이름을 갖게끔 해 준 저것들 자체에 대해서 말했던 것이니까. 그러나 저것들 자체는 상호간의 생성(됨: genesis)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걸세.
⇒형상(이데아) 자체는 생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이 언급은 플라톤이 누누이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106b]죽지 않는 것이 파괴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면, 혼에 죽음이 닥친다해서, 그것이 죽음을 받아들이지도 않거니와 죽은 상태의 것이 될 수도 없기 때문이네. 마치 셋이 짝수일 수 없고, 또한 홀수도 짝수일 수 없고, 불이 찬 것일 수 없으며, 불 속에 뜨거움 또한 찬 것일 수 없다고 우리가 말했듯이 말일세.
IV. 신화: 저승 또는 참된 지구에 대한 이야기(107c~115a)
[107c]혼이 과연 죽지 않는 것이라면, 그 보살핌이야말로 비단 우리가 살고 있다(to zen)고 하는 이 기간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때를 위해서 요구되네. 그리고 만약에 누군가가 이를 소홀히 한다면 그 위험은 이제 곧 무서운 것일 것으로 생각되네. 만일 죽음이 실은 모든 것에서의 벗어남(apallagē)이라면, 나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천행일 것이니, 이들은 죽음으로써 몸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혼과 함께 자신들의 나쁨(나쁜 상태, 사악: kakia)에서도 벗어나게 되는 것이지. [107d]그러나 실은 혼이 죽지 않는 것인 것 같으므로, 혼이 나쁜 것들에서 벗어나는 길이나 구원책으로는, 혼이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훌륭해지고 지혜롭게 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없으이. 왜냐하면 혼이 저승(하데스)으로 가면서 지니고 가는 것으로는 교육(교양: paideia)과 생활방식(trophē)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인데, 이것들이야말로 그곳으로의 여정의 바로 시작 단계에서부터 망자를 가장 크게 이롭도록 해주거나 해롭게 하는 것들이라고도 하네.
☞여기서 ‘교육’(교양)은 지혜(phronesis)를 얻은 상태고, ‘생활방식’이란 후천적으로 습관화된 것이다.
[113d]거기에서 그들이 기거하면서, 일찍이 자신들이 저지른 죄과들에 대해 벌을 받음으로써 정화가 되면, 용서를 받게 된다네. 만약에 누군가가 죄를 지은 일이 있다면 말일세. 또한 선행들에 대해서는, 저마다 거기에 상당하는 보답을 받게 된다네. 그러나 저지른 잘못들의 광범함으로 해서 교정(치유)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자들은 (...) 마땅한 운명(moira)이 이들을 타르타로스 속으로 던지는데 여기에서 영영 이들이 빠져 나오지 못한다네.
⇒‘심판’의 주제. 그러나 여기에 어떤 ‘원죄’는 보이지 않는다.
[114d]그렇다고 이것들이 내가 이야기한 그대로라고 자신있게 주장한다는 것은 지각 있는 사람에겐 적절치 않으이. (...) 그게 그러하다고 생각하는 삶에게 있어서는 그게 적절하고도 모험을 할 가치가 있다고 내게는 생각되거니와, 이 모험은 훌륭한 것이니까 이와 같은 것들은 자신에게 주문을 외듯 해야만 해. (...) 바로 이런 이유들로 해서 누구든 이런 사람[혼의 불멸성과 심판을 아는 자]은 자신의 혼에 대해서 확신을 가져야만 하네. 즉, 생애를 통해 몸과 관련된 다른 즐거움(hēdonē)들이나 치장(kosmos)들에 대해서는, 제 것 아닌 낯선 것들이며 이롭게 하기 보다는 해롭게 하는 것이라 여기고서, 결별을 하되, 배우는 것(to mathanein)가 관련된 즐거움에 대해서 열의를 보이며, 혼을 낯선 것이 아닌 혼 자체의 장식물(kosmos), 곧 절제(건전한 마음상태: sōphrosynē)와 올바름(정의: dikaiosynē), 용기(andreia), 자유(eleutheria) 그리고 진리(alētheia)로 장식하고서, 이처럼 저승(하데스)으로의 여행을, 정해진 운명이 부를 때는, [115a]떠날 생각으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말일세.
V. 소크라테스의 최후 장면과 그의 죽음(115a~118a)
[115b]자네들이 자네들 자신들을 돌본다면, 자네들이 뭘 하든, 자네들은 나를 위해서도 내 가족을 위해서도 그리고 또 자네들 자신을 위해서도 기쁠 일을 하게 될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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