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의 흙집일기
전남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그가 큰 결심을 하고 직장을 그만둔 것은 참 잘한 일이다. 광주 충장 서점에서 [어느 시인의 흙집 일기](전남진, 중앙 M&B, 2003)를 보고 느낀 첫번째 소회다. 서점 문학 코너에 서서 책장을 넘기면서 난 참 오랜만의 시샘 같은 것이 마음 한 구석에 올라 옮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지어 보았으면 하는 시샘말이다.

책에는 페이지 페이지 마다 집이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담은 사진들도 있었다. 게다가 그 사진들은 집 만이 아니라 가시막골 그의 일가와 이웃들의 흙내 나는 사진들이 함께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곧 흙이고 그가 흙으로 빚는 집이 곧 사람이다!

나도 1994년이던가 그를 따라 가시막골을 갔었다. 층층이 산을 타고 오른 논들 어귀에 자그마한 집이 있었고, 할아버님과 할머님이 우리를 맞아 주셨다. 가죽나물을 정성껏 버무려 찬으로 낸 밥상을 참 맛나게도 먹었다. 난 그가 앞마당에 있던 가죽나무를 만지며 설명해 주던 그 말뽄 그대로 나중에 후배들에게도 그 나무얘기를 내 것인양(?) 해 주었더랬다. 밤에는 가시막골 흙내나는 세간살이 위로 정말 무진장 빛나는 별무더기들을 보고 놀라워했다. 다음날은 서툰 손으로 할아버님의 논일을 거들었었다.

삶에 흐린 날들이란 어떤 것일까? 직장이나 돈, 또는 차가 없는 삶인가? 그런 것을 현실적인 기준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태만하다. 현실은 그런 것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태만한 자기 만족 속에 있는 그러한 욕망의 부산물들이야말로 흐린날을 만든다. 많은 것을 가진 자들이 그만한 고통을 또한 덤으로 얻는 것은 그가 가진 태만함에 대한 현실의 복수다. 참으로 부지런하고 현실적인 삶은 흙을 빚는 '정성'에 있다. 거기서 오는 슬픔과 가지런한 눈물이 복되고 현실적이다. 헛된 것만을 쥐고 살아가는 사람은 끝내 손에 간지르르하게 만져지는 흙의 감촉을 잊고야 말 것이다. 삶의 감각을 제 손으로 잘라버리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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