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뒤에 문학 평론가님의 해설이 없었더라면, 그냥 쉽고 공감이 잘되는 글이라고 넘겨버렸을 그런 글_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상을 상상력을 가미하여 독특하게 풀어낸 점이 돋보인 작품들..
읽으면서 "어쩜~어쩜~"이란 긍정을 아주 많이 하였던 듯!!
나는 특히나 <나는 편의점에 간다>와 <노크하지 않는 집>,<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가 가장 더 좋았다.
<달려라, 아비>
p9.
나는 내가 얼굴 주름을 구길수록 어머니가 자주 웃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사랑이란 어쩌면 함께 웃는 것이 아니라 한 쪽이 우스워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편의점에 간다.>
p40-p41.
모든 부드러움에는 자신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어떤 잔인함이 있다. 그게 사실이 아닐지라도 내가 그걸 사실로 만들어버리는 이유는 그러고나면 내 처지가 덜 속상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순간 엘에이의 한인촌을 습격한 흑인과 닮아있다.
p47.
그는 나의 식생활에서 성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두 ‘보고’있다. 왜냐하면 편의점이란 모든 걸 파는 곳이기 때문이다.~그는 나도 모르는 나의 습관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스카이 콩콩>
p60.
형과 나의 정수리에는 언제나 가로등 불빛이 노랗게 고여 있었다.
p61.
나는 창가에 턱을 괴고 앉아, 지구보다 더 큰 둘레를 그리며 돌고 있는 가로등의 운동을 상상했다. 지구의 원주와 가로등이 손끝으로 그려내는 원의 너비, 그리고 그 두 원의 너비차가 만드는 사이 안에서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
p70.
나는 ‘내 맘은요! 내 가슴은요, 아버지!“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 투게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었다.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 기분을 뭐라 표현해야 될지 몰라, 스카이 콩콩을 탔다.
p71.
갑자기 형을 그렇게 크게 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배신인 것 같았다.
p75.
나는 안테나가 가리키는 하늘을 보며, 반짝이는 별들이 쏟아내는 어마어마한 먼지 냄새를 맡으며, 내가 이곳에서 혼자 “나야…….”하고 말하면 저 별 어디에서 누군가 울어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p79.
그때 나는 가로등이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뭔가 눈감아주기 위해 저기 서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기적이란, 바로 그 눈감아주는 시간에 일어나는 일들일지 모른다고.
p83.
나는 정신없이 가슴이 콩닥거렸지만, 그것을 무어라 불러야 할지도, 어떻게 말해야 될지도 모르겠어서,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뒤 홀로 스카이 콩콩을 탔다.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
p87.
그 중 그녀가 가장 많이 하는 것은 ‘더 이상 생각하면 안된다.’는 생각이다.
p90.
그녀는 변명만 하고 사는 인간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오해를 견디고 사는 일이란 얼마나 더 외로워야만 가능하나 것인지. 그녀는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다.
p101.
그녀는 그녀를 잠 못 들게 하는 것이 아버지가 보는 텔레비전인지 텔레비전을 보는 아버지인지 알 수 없었다.
<영원한 화자>
p114.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를 알기 위해 내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는 사람, 그러나 그것이 내 이름인 것이 이상하여 자꾸만 당신의 이름을 불러보는 사람이다.
p131-p132.
대수롭지 않은 일 같지만, 도시락을 혼자 먹어본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곤혹스러운 일인지 알 것이다. 그것의 고통은 내가 혼자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혼자인 것을 모두가 ‘보고’ 있다는 데 있다.
p133.
~ 당신이 조용히 뒤집어주더너 삼겹살 색깔 같은 것들만 떠오르는 것이었다. 마치 우리가 사람을 죽이는 이유가 아주 작은 것들 때문이듯.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이유도 비슷할 지 몰랐다.
<사랑의 인사>
p144.
사라지는 것들은 이유가 있다. 그리고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것들은 반드시 할말이 있는 것이다.
p146.
“아버지가 사라졌습니다.”~“아버지가 길을 잃은 것 같습니다.”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p180.
안녕하세요. 가늠할 수 없는 안부들을 여쭙니다. 잘 지내시는지요. 안녕하고 물으면 안녕하고 대답하는 인사 위의 소소한 걱정들과 다시 안녕하고 돌아선 뒤 묻지 못하는 안부 너머에 있는 안부들까지 모두, 안녕하시길 바랍니다.
<종이 물고기>
p202.
주정을 성의없게 듣던 그에게 아버지가 “너 아빠 직업이 창피하냐?”라고 물었다. 그는 그 전에 한 번도 창피하지 않던 아버지의 직업이 아버지가 그렇게 질문하는 순간 창피해져버렸다. ~ 그는 군복무중 누군가를 창피해한다는 것은 동시에 그를 이해한다는 것일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p211.
그는 물러서서 벽면을 바라봤다. 자신의 몸에 그토록 많은 이야기가 깃들여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p212.
당신과 당신 사이의 당신
p214.
그는 오랫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희망에선 입냄새가 났다.
<노크하지 않는 집>
p244.
다만 주의력이 좋은 여자였다면 누군가 한 명은 아침에 내가 화장실 앞에 처음으로 붙여놓은 ‘미안해요. 무서워서 그랬습니다.’라는 포스트 잇을 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 순간 하고 있었다는 기억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