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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피 ㅣ 민음 경장편 1
김이설 지음 / 민음사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무섭다_ 작품 속 세계가 너무 어두워서 주인공이 내 친구였다면 '얼마나 힘들었니? 나에게 기대-'라고 말하며 손을 내밀어 주고 싶을 정도로 측은하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처음엔 들었다. 그러다가도 그걸 해소시키는 방안으로 선택한 가학적인 모습과 '강력한-하지만 더럽고 외면되어야 마땅한-힘'에 구속되는 모습을 보며 마냥 편을 들어줄 수가 없다.
나쁜 피_ 이 책을 읽고 있는데 얼마 전 이루마의 라디오에서 들은 끌로드 제롬의 샹송 -고아-
라는 곡이 떠올랐다. (L'orphelin고아) 자신의 자전적인 삶을 가사로 표현했다는 이 곡은 고아였던 그가 자신은 부모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기 전에 두분이 돌아가셨지만, 자신의 자식에게만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달라는 조름을 들어주고 싶다는... 뭐 대충 그런 소개였는데..
주인공 화숙도, 너무도 심각하게 열악하고 힘든 삶,생활에서 벗어나기가 참 어려웠겠지만, 좀더 건설적으로 노력하였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화숙과 같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 모두가 참 불쌍하다_
여기서 내가 말하는 안쓰러움이란 그녀 집안의 '빈(貧)'함만이 아니다.라는 건 이 글을 읽게 되는 모든 독자가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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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3.
때론 그것이 가장 큰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를 닮지 않은 것, 적어도 내 밥벌이를 할 수 있는 몸뚱이를 가진 것만으로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지도 모를 일이었다.
p68.
나는 도착지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목적지로 향하는 시간이 더 좋았다. 내가 사는 곳이 지긋지긋해 도망치듯 버스에 올랐지만 어디든지 내가 사는 곳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쉽게 깨달았다. ~ 그건 어디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종착지는 나에게 의미가 없었다. 그저 벗어난다는 의미,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시간이 필요했다.
p108.
따지면 나쁜 사람은 없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도 없고, 상처 없는 사람도 없다. 다만 이기는 사람과 지는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p123-p124.
어쩌면 증오란 자기가 미워하고 싶은 상대를 정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상대에게 왜곡된 기억과 감정을 모조리 퍼붓는 소모전과 같은 것.
p130.
"안 취했다. 이 년아. 두고두고 보니까 죽어 자빠질 때까지 밥 차리라고 할 년이잖아, 네 년이."
<작품해설> 中
p185.
김이설이 관심을 갖는 '현실'이란, 생존의 절박함을 드러내는 어떤 경험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사실적인 이야기로 되살리는 독특한 시선과 방법이다.
p189.
화숙의 원망 : "나는 남들처럼 살기가 힘들다."
화숙의 체면 : "어떻게든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 이 원망과 체념은 주인공이 근본적으로 느끼는 어떤 '결핍'의 구체화된 감정이다.
p192.
이 책의 독특한 심리학 - 고통에 장식된 "박해자의 심리학"
p194.
(공격적이고 위악적인 박해자의 자세, 일종의 '히스테리적' 증상)으로부터 그의 욕망은 '자기' 삶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의 삶을 토대로 만들어진다. "나"의 욕망은 결핍된 "내"가 구성하는 의미가 아니라 타자들이 이미 인정하는 것에 내가 얼마나 부합하는 가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p195.
(화숙의 체계는) 선악은 없고 승패만 있는 세계다.
p195-p196.
'외삼촌'이라는 강력한 힘의 자리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자리'에 놓인 '나'의 운명적 결핍을 보상하고 수정할 수 있다.
(엄청 어려운 부분 특히, 비현실을 상정하는 의식과 현실을 탐구하는 의식에 대한 고찰 부분은 숨이 턱 막힌다 -0-)
p198.
불행을 불행으로서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을 통해 자기의 존재 방식을 성찰하는 계기나 스스로 불행을 규율하는 방법을 발견하게 되기를. 그리하여 이 음울한 고통의 세계로부터 기운차게 창조되는 인간의 위대한 환함에 대해 언젠가 고개를 끄덕일 아름다운 긍정을 만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