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 성년의 나날들, 박완서 타계 10주기 헌정 개정판 소설로 그린 자화상 (개정판) 2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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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분류: 국내도서>한국소설

▶ 한줄평: 얼핏 보면 평화로운 시대 속에서 잊어버린 '산'의 자리를 망각하지 않기 위해 기어코 삶의 궤적을 거슬러 오르는 작품이다.

▶책 소개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치밀하고 풍성하게 한 개인의 삶의 역사를 보여 주는, 또한 가장 진실 되게 쓰인 20세기 한국의 생활 풍속사적 의의를 지니는 작품(357-8)




"우리가 그렇게 살았다우."

2021년 작가 박완서의 타계 10주기를 맞아 연작 자전소설 두 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가 새로운 커버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앞서 읽었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유아기에 대한 그리움으로 독자들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면,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소설 속 '완서'가 주체적으로 가족의 생존을 책임지는 어른으로 자라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완서'의 어린 시절을 지탱해 주던 '싱아'의 환상적인 내음은 온데간데없고, 뒤죽박죽 섞인 정치적 이념과 그로 인한 파괴적인 전쟁만이 '완서'의 세상을 차지하고 있다. 1부에서 작가가 개인의 생활상을 묘사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면, 2부는 격동의 시대를 목격한 증언자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한다. 이렇듯 시대와 그 안에 놓인 개인의 심정을 최대한 분명하게 서술하려는 작가의 노력 덕분에 우리는 시대를 뭉뚱그려 서술해 놓은 정형화된 자료들에서 벗어나 비로소 이전 시대의 역사를 좀 더 온전하게 인식하고, 본인이 살아온 역사처럼 가깝게 느낄 수 있게 된다.



"웬 놈의 겨울이 이렇게 길다냐?(281)"

대한민국의 긴긴 겨울을 '완서'를 비롯한 여자들은 정말이지 억척스럽게도 견뎌내었다. 물론 그들뿐만이 아니라 그 시대의 온 사람들이 그랬다. 워라밸이니, 개인적인 꿈이니, 하는 소리는 그들에게서 거의 들어본 일이 없다. 재주가 있다면 오로지 먹고사는 일을 위해 쓰였고, 이외의 것들은 사치에 불과했으며, 때로는 그런 헛소리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갈 수도 있었다. 이제는 그들이 생활의 터로, 은신처로 쓰던 산들이 깎이고, 개간되고, 또 무너져 그 자리에는 온갖 건물들이 들어섰다. 이전의 흔적을 말끔하게 지운 채로 새롭게 들어선 건물만 보고 살아온 나로서는 삶에 대한 그들의 집요함과 투쟁 같은 나날들 때문에 숨통이 옥죄는 듯한 기분이 들곤 한다. 그러나 작가 박완서의 글을 읽는 동안 나는 넘실거리는 싱아 꽃밭과 사라진 그 산을 보았다. 그 앞에서 나는 한없이 숙연해지고, 잃어버린 사람들과 공간들의 규모에 압도되고야 만다. 깊숙이 파고든 칼날 같은 밤바람 속에서 피어난 '목련나무'가 볼 수 있던 풍경은 인간이 저질렀다고는 믿을 수 없는 미친 짓들뿐이었다. 추운 겨울 안에 봄기운을 욱여넣기 위해 자신을 갈아 넣어야만 했던 사람들의 자리를 가만가만 더듬어 보게 하는 것이 작가 박완서의 소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개인적인 기록, 시대에 대한 증언을 넘어서서 그 시대와 현재의 간극을 메우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저쪽과 이쪽을 모두 겪은 우리는 이제 어느 한 쪽에 국한되지 않는다. 작가의 표현처럼 '새로운 돌연변이의 종'이 되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자 서있다. '싱아'와 '산'의 자리를 잊어야만 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도리어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그 토대 위에서 만개하겠다는 확고한 결심이다. 그게 우리를 어떻게든 대학까지 보내고 싶어 했던 엄마들에 대한 보답이자 글로벌 시대에 태어난 'MZ 세대'만이 이루어 낼 수 있는 뚜렷한 특징이 아닐까. 우리는 'N포세대'가 아니라, 새로운 돌연변이로서 어떠한 편견이나 원한도 없이 우리 자신만의 싱싱한 생살로 접붙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로 규정되어야 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불도저의 힘보다 망각의 힘이 더 무섭다. 그렇게 세상은 변해간다. 나도 요샌 거기 정말 그런 동산이 있었을까, 내 기억을 믿을 수 없어질 때가 있다. 그 산이 사라진 지 불과 반년밖에 안 됐는데 말이다.
- P7

그가 가장 사랑한 것도 아마 예술이 아니라 사는 일이었을 것이다. 사는 일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재주로 열심히 작업을 했다. 그뿐이었다.
- P307

엄마는 도대체 내가 무엇이 되길 바라고 저러는 걸까. 쌓이고 쌓인 게 많은 엄마가 측은했다. 그러나 내가 엄마의 돌파구는 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럴 마음도 능력도 없었다. 나는 내가 보통 아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 P346

당신이 나를 찢어 내듯이 그이도 그의 어머니로부터 찢어 낼 거예요. 우린 서로 찢겨 나온 싱싱한 생살로 접붙을 거예요. 접붙어서, 양쪽 집안의 잘나고 미천한 족속들이 온통 달려들어 눈을 부릅뜨고 살펴봐도 그들과 닮은 유전자를 발견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돌연변이의 종이 될 테니 두고 보셔요. -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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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스테프 차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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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2020년 경찰의 무릎에 목이 눌려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은 흑인 사회뿐만 아니라 한국인들까지도 분노하게 만들었다. 물론 인종과 관계없이 공분을 살 만큼 중요한 사안이었지만, 특히 흑인과 아시아인에게 그 사건은 더욱 무겁게 다가왔다. 인종차별의 문제였고, 아시아인으로서도 인종차별 문제에는 질릴 만큼 질려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BlackLivesMatter' 운동이 sns상에서 거의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던 시점에 누군가는 흑인뿐만 아니라 아시아인도 범주 안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로나를 기점으로 아시아인을 향한 인종차별은 극에 달해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이 의견에 대해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흑인과 아시아인을 인종차별의 피해자로 놓고 본다면, 두 사회는 기꺼이 연결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당사자인 우리 모두가 느끼듯이 두 개의 커뮤니티는 하나처럼 기능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두순자 사건'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속에서 흑인과 아시아인 사이의 간극은 절대 봉합될 수 없는 종류의 것처럼 느껴진다.

16살 흑인 소녀를 총으로 쏜 '한정자 사건'으로 인해 '그레이스'와 '숀 매슈스'의 가족들은 서로 엮이게 된다. 총 한 발로 모든 일이 틀어지기 전에 이 사람들은 단지 선량한 시민이었고, 미국 사회로부터 차별받고 배제당하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무고한 흑인 소녀가 한인 여자에게 죽임을 당함으로써 두 가족은 언제든 충돌할 가능성을 지닌 집단으로 변모했다. 이는 두 가족 간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고, 흑인과 아시아인 커뮤니티 사이의 일로 확대되었다. 게다가 사건이 벌어진 이후 태어난 세대에게도 상대편을 향한 증오는 추상적이지만 하나의 개념으로 자리 잡아 그들은 항상 폭력의 위험에 노출되어야 할 것처럼 보였다.

16살에 죽은 '에이바 매슈스'의 동생인 '숀 매슈스'가 지적하듯이 그들의 비극은 전혀 개선되지 못한 채로 폭력을 향한 흥분만이 남았다. 사람들은 자신과 반대되는 진영에 있는 사람이기만 하다면 그들을 증오하고, 폭력을 시도하려는 상태에 이르렀다. 또한, '인종차별주의자'로 낙인찍히지 않기 위해 '숀 매슈스'나 그의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한 개인의 죽음이 집단의 문제로 간주되고, '폭력'이 대응 방식으로 선택된 순간 일은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가 문제를 의미 없이 극대화하고, 더 많은 희생을 감내해야 했던 적이 그간 얼마나 많았던가.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의 시작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는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의 시작을 알리는 소설이기도 하다. 어떤 죽음들로 인해 벌어진 파괴 위에서 우리는 작은 희망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소설은 어떤 결말도 확정 짓지 않은 채로 소설 밖 독자들에게 기대를 내비친다. '숀 매슈스'와 '그레이스'의 가족들이 보여준 가능성은 우리가 지금 내린 결정에 따라 파멸과 창조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면서 진행된 폐쇄정책을 떠올려 본다면, 거의 절망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에게 지펴진 분노의 불꽃이 사회의 동력으로 쓰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가 함께 꾸는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은 이전과 달리 흑인, 아시아인, 여성 등 인종과 성별을 향한 차별들을 가뿐하게 뛰어넘을 수 있다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그레이스는 카메라를 가리키던 알폰소 쿠리얼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그 애 이름을 기억해 주세요.‘
- P335

도시가 불길에 휩싸이고, 슬픔과 분노, 광란의 흥분에 사로잡힌 광경을 보았고, 작은 희망을 알아봤다. 재생. 파괴의 약속은 그것이었다. 감람나무, 무지개, 지구를 재건하기 위해 살아남은 선한 사람들. - P392

"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숀은 크게 외쳤다. "당신들이 아무 노력도 없이 위로받으려고 하는 행동이죠. 뭔가 바꾸고 싶다면, 우린 놔두고 정말로 ‘뭔가‘ 해 봐요." - P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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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2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사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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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된 지금 이 순간에도 일상 너머로 아름다움과 영광이 반짝거리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해도 그것이 진실이었다. (378쪽)

'양진'으로부터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에 이르기까지 재일조선인 4대의 시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흘렀다. 4대가 이어지는 동안 그들은 인간은 고통 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시작은 가난이었고, '파친코' 사업으로 우뚝 솟아오르자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그들을 괴롭혔다. 이제까지 '노아'와 '모자수'를 주축으로 '재일조선인'들이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슬픔을 중점적으로 드러냈다면, 2권에서는 일본 주류 사회에서 소외된 인간들이 등장하면서 인간이 짊어진 고통의 범위는 확대된다. 여기에 이르러서 비로소 우리 삶의 기본값이 고통이라는 점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 읽어나갈수록 인간으로서 고통으로부터 분리된 인생을 획득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깨달았다. 하지만 인간을 '희생자'라고 부르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그런 자기 연민으로부터 빠져나와 삶을 묵묵히 견디고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선자'와 그녀의 가족들이 알려 주었다. 그리고 시련 너머에 놓인 일상의 찬란함을 볼 수 있도록 길을 터주었다. 스스로 원하지 않았던 고통 안에서도 한없이 순수하고 다정한 '선자'의 가족들이 보여준 삶은 역사적·사회적 맥락과는 관계없이 반짝거리고 사랑스러웠다. 어떤 순간에도 삶은 끝없이 이어지고, 여전히 아름답다는 것을 이제는 아무런 의문 없이 이해할 수 있다.

그 누구와 함께 있을 때도 조선인이니 일본인이니 하는 국적에 신경 쓰지 않았다. 단지 자기 자신으로 있고 싶었다. (118쪽)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노아'와 '모자수'를 어지간히 괴롭혔다. 국적에 상관없이 자신의 능력만큼 인정받고 싶었던 '노아'의 바램과는 달리 '재일조선인'이라는 꼬리표는 '노아'와 '모자수'를 지겹도록 따라다녔고, 멸시의 대상이 되는 것도 모자라 사회적인 표본이 되도록 강요했다. 서울에서는 일본인으로, 일본에서는 조선인으로 이리저리 채이는 '노아' 형제의 이야기는 과거에만 속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대의 디아스포라도 자신의 뿌리를 정의 내리는 데 있어 심각한 고민을 안고 있다. 자신이 어디로부터 왔는가,에 대한 문제보다도 그들을 괴롭히는 것은 자신이 고향이라고 느끼는 삶의 터전에서 살아있는 개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일본에서 살아온 세월에도 불구하고 '노아'와 '모자수'를 비롯한 재일조선인은 외국인으로 간주되어 좋은 직장을 구하기 어려웠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파친코' 사업이었지만, 이 사업에 뛰어들면 '더러운 야쿠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만 했다. 일본인 사업자들보다 정직하게 사업을 운영해도 그들은 사람들의 비난을 모면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재일조선인 파친코 사업자들은 흔들리는 땅 위에서도 벼랑 끝에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삶을 비관하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남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경멸이 아니라 자신의 가족들이 살아남고 또 자식들이 자신에 비해 나은 삶을 사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억척스럽게 삶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과 가족을 위하는 마음은 더없이 익숙한 모습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그들의 삶이 곤두박질쳐서 죽음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느낄 때 나는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거 아시죠?" (374쪽)

자기 자신을 동정하지 않고 삶을 견뎌내는 일에 집중했던 '선자'와 그녀의 가족들, 그리고 모든 재일조선인의 노력이 응집된 결과가 '솔로몬'이라고 생각한다. 물질적·정신적으로 결핍된 삶을 살았던 이전 세대는 미래 세대에게 같은 삶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로 인해 '솔로몬'은 경제적으로 좀 더 풍족한 삶을 살았고, 다양한 인종이 혼재되어 있는 외국인 학교에서 삶을 배울 수 있었다. 그는 자연스레 일본과 일본인을 너무 많이 미워하지 않는 어른으로 자라났고, 자신의 역사적·사회적 맥락이나 타인의 시선은 잠시 접어둔 채로 자기 자신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전 세대가 인간으로 대접받기를 바라기만 했다면, '솔로몬'은 한 발 더 나아가 스스로가 스스로를 하나의 인간으로 인정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설정하며, 자기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솔로몬'의 현재와 미래는 현대의 독자들에게 작지 않은 의미를 가진다. 4대에 걸친 고난의 역사 끝에 우리는 나아가야 할 지점을 짚어낼 수 있었다.

'선자'를 통해 인생은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차렸다. 인생이라는 '파친코' 게임에서 얻어낼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는 인생의 끝에서 불현듯 우리에게 찾아오는 깨달음이 분명하다. 고통에 굴하지 않고 살아남으면 삶의 끝에서 우리의 인생 저편에 늘 아름답고 반짝이는 순간들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의 끝에 마주한 뭉클한 순간 때문에 나는 『파친코』가 아주 오래도록 계속되었으면 했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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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읽고 싶은 철학의 명저
하세가와 히로시 지음, 조영렬 옮김 / 교유서가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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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의 『행복론』, '플라톤'의 『향연』,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등은 읽지 않으면 안 될 훌륭한 고전들로 늘 손꼽혀 왔지만, 일반 독자로서는 다른 신간들을 제쳐두고 그 책들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읽지 않고 지나치려고 하니 기초 공사가 부실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던 참에 '하세가와 히로시'의 『지금 당장 읽고 싶은 철학의 명저』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물론 본 책을 읽은 만큼은 아니더라도 표면적으로 내세울 만한 깊이감은 획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책에 기대하는 바였다. 『지금 당장 읽고 싶은 철학의 명저』는 '인간', '사색', '사회', '신앙', 그리고 '아름다움'을 주제로 각 3권의 고전을 소개하고 있다. 제목에는 '철학의 명저'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개중에는 '리어 왕'과 같은 문학도 포함되어 있다.

세상에 널리 퍼진 책은 특정한 입장이나 특정한 사상신조를 가진 사람들 뿐만 아니라, 널리 크게 모든 입장과 사상신조를 가진 사람들에게 열려 있고, 열려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158쪽)

총 15권의 책에 관한 에세이를 적으면서 저자는 편향된 사고방식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고전을 극도로 찬양하지 않으면서 본래의 신념에 따라 자신의 소회를 술술 적어 내려간 글이기 때문에 고전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독자가 멈칫 거리는 일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쓰여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저자는 세계에 널리 퍼진 고전이 모든 입장과 사상신조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시선을 피하려고 하는 사태의 진상에 바짝 다가서는 책들을 칭찬해 마지않았다. 이렇게 쓰인 세계적인 고전들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만 할까. 그것은 자신을 '대체할 수 없는 하나의 개인'으로 자각하는 가운데 어떻게 자유를 확보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또한 다른 사회가 서로 다른 사상을 배척하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비판하며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이다. 물론 글로 적힌 것들을 실생활에 적용하려고 보면 온갖 변수들 때문에 제 맘대로 되지 않을 것이 뻔하다. 하지만 고전을 통해 확립된 가치관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삶의 기준점이 되어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고전을 읽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원문을 읽을 자신이 없다면, 『지금 당장 읽고 싶은 철학의 명저』 등으로 일부나마 향유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테다.

'하세가와 히로시'가 소개한 책들 가운데 전체 텍스트를 접해보고 싶은 작품들도 여럿 있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이나 '도스토옙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제까지 엄두를 내지 못하던 작품들을 지금 당장 읽고 싶어진다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루소'나 '도스토옙스키'의 책들을 섭렵하는 날이 오면, 저자인 '하세가와 히로시'가 짚어준 포인트들을 확인해 나가면서 좀 더 쉽게 글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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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 나씽 - 북아일랜드의 살인의 추억
패트릭 라든 키프 지음, 지은현 옮김 / 꾸리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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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 나씽』은 '북아일랜드'의 "분쟁"과 그 주역이었던 급진파 'IRA'의 역사를 복원하고, 이를 기반으로 '북아일랜드'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려는 시도다. '브렉시트' 이후로 '북아일랜드'의 내부 갈등은 재점화되었으며, 또한 서로 다른 이상에 갇힌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의 모습은 우리와 닮아 있기도 하므로 현대의 한국 독자들에게 이 책이 가지는 의미는 더없이 크다. 분할된 역사를 가진 국가의 국민이 아니라고 해도, 목숨을 걸고 역사적 사실에 관해 진술하려는 사람들을 외면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미친 삶으로부터 가까스로 벗어나 평화와 자유, 희망을 되찾는듯했던 '북아일랜드'가 다시 맞닥뜨린 혼란 속에서 과연 이전처럼 폭력을 동반하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동반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면서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그건 단지 '북아일랜드'만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에게 있어서는 '평행세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모든 게 다 역겹소. 그것은 나와 같은 사람이… 그 모든 죽음에 대해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는 뜻이오.(316쪽)


'북아일랜드' 분쟁의 중심에 서 있는 'IRA'에게 '진 맥콘빌'이라는 여성이 납치된다. 평화롭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실종 사건이 『세이 나씽』의 시발점이다. 'IRA'의 상징과도 같았던 '프라이스' 자매가 처음부터 과격하고 폭력적인 방식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점잖고 평범했던 사람들은 통제 불능의 상태에 휘말려 급기야 'IRA'의 총잡이가 되었고, '피의 일요일'을 겪은 이후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전술을 취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잘못이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분쟁' 동안 무고한 민간인들이 수도 없이 희생되어야만 했다는 것이 'IRA'에게 치명적인 오점으로 남았다. ' IRA' 때문에 민간인 사상자 수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폭력적인 수단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마찬가지로 늘어나면서 '어떤 순간에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라는 말은 거의 사실처럼 보였다.


성인이 되고 나서 온 생애를 IRA에 바친 사람의 삶이란 게 그랬다. 휴즈는 트워미가 말년을 보내고 있는 열악한 환경을 보면서 문득 운동에 퇴직연금제도는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285쪽)


'IRA'의 폭력성은 북아일랜드의 민간인들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주었지만, 'IRA' 대원 본인들에게도 그랬다. 당시 대원들은 모두 아주 젊었고, 그야말로 애들이었다. 제일 나이가 많다고 해봤자 29살에 불과했다. "어리고 날씬하고 비밀스러운 데다 독실하면서도 테러에 헌신(209쪽)" 하는 어린 대원들은 '북아일랜드'의 해방을 위해 투신하면서도 자신들만의 이상에 갇혀 스스로를 극도로 괴롭혔고, 투옥과 단식투쟁은 그들의 몸과 마음에 커다란 흉터를 남겼다. 그들은 수시로 자신들이 몸 바쳐 온 과거와 "분쟁"을 전체적으로 되돌아보곤 했다. 그러고는 자문했다: "'이러려고 우리가 목숨을 바쳤나? 도대체 이게 다 뭐지?(339쪽)'" 물론, 자신들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죽음들에 대해서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태초에 그들이 품었던 조국을 향한 열망의 의미는 퇴색했고, 이상에 갉아먹혀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종말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한국'이나 '아일랜드'의 종교적·이념적 "분쟁"의 의미를 이성적으로 따져봐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우리가 "주장했던 이상에 지나칠 정도로 절실하게 헌신하며 살았다(428쪽)".


관광객들에게는 "분쟁 관광"도 인기를 끌었다. 전투원이었던 택시운전사들은 유명한 전투와 순교자들과 무장괴한들이 그려진 벽화들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며 관광객들을 그 몹쓸 세월의 화약고로 안내했다. 그 효과는 "분쟁"을 머나먼 역사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었다.(431쪽)


'프라이스' 자매, '브렌든 휴즈' 등 이전 급진파 'IRA' 세대는 막을 내렸다. 아일랜드 국기는 이제 그다음 세대에게 넘겨졌다. 누군가는 'IRA'가 사라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폭력적인 과거를 미래 세대가 숙고할 수 있도록 아일랜드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세대가 거듭될수록 "분쟁"은 관광산업으로서만 사람들의 주목을 끌게 될지도 모른다. 한국과 북한 사이의 긴장감보다도 'DMZ' 관광이 내외국인의 애정을 받고 있듯이 말이다. "분쟁"이 문화 콘텐츠나 산업 자원으로 자리 잡고, 머나먼 역사로 남게 되는 때에 이르자 '아일랜드'와 '대한민국'을 겹쳐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두 국가 모두에게 가장 큰 과업은 폭력적인 개입을 배제한 채로도 통일된 국가를 이룩해낼 수 있는지의 여부일 것이다. 그리고 스무 해가 넘는 시간 동안 '대한민국'에 거주하면서 한 번도 그 일은 쉬워 보인 적이 없었다. 현 세대 내에서 어떤 식으로든 숙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조차 예측하기가 어렵다. 적어도 미래 세대에 한 편의 범죄 스릴러 영화 같은 글은 남기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만큼은 확실하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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