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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스테프 차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4월
평점 :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2020년 경찰의 무릎에 목이 눌려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은 흑인 사회뿐만 아니라 한국인들까지도 분노하게 만들었다. 물론 인종과 관계없이 공분을 살 만큼 중요한 사안이었지만, 특히 흑인과 아시아인에게 그 사건은 더욱 무겁게 다가왔다. 인종차별의 문제였고, 아시아인으로서도 인종차별 문제에는 질릴 만큼 질려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BlackLivesMatter' 운동이 sns상에서 거의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던 시점에 누군가는 흑인뿐만 아니라 아시아인도 범주 안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로나를 기점으로 아시아인을 향한 인종차별은 극에 달해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이 의견에 대해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흑인과 아시아인을 인종차별의 피해자로 놓고 본다면, 두 사회는 기꺼이 연결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당사자인 우리 모두가 느끼듯이 두 개의 커뮤니티는 하나처럼 기능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두순자 사건'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속에서 흑인과 아시아인 사이의 간극은 절대 봉합될 수 없는 종류의 것처럼 느껴진다.
16살 흑인 소녀를 총으로 쏜 '한정자 사건'으로 인해 '그레이스'와 '숀 매슈스'의 가족들은 서로 엮이게 된다. 총 한 발로 모든 일이 틀어지기 전에 이 사람들은 단지 선량한 시민이었고, 미국 사회로부터 차별받고 배제당하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무고한 흑인 소녀가 한인 여자에게 죽임을 당함으로써 두 가족은 언제든 충돌할 가능성을 지닌 집단으로 변모했다. 이는 두 가족 간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고, 흑인과 아시아인 커뮤니티 사이의 일로 확대되었다. 게다가 사건이 벌어진 이후 태어난 세대에게도 상대편을 향한 증오는 추상적이지만 하나의 개념으로 자리 잡아 그들은 항상 폭력의 위험에 노출되어야 할 것처럼 보였다.
16살에 죽은 '에이바 매슈스'의 동생인 '숀 매슈스'가 지적하듯이 그들의 비극은 전혀 개선되지 못한 채로 폭력을 향한 흥분만이 남았다. 사람들은 자신과 반대되는 진영에 있는 사람이기만 하다면 그들을 증오하고, 폭력을 시도하려는 상태에 이르렀다. 또한, '인종차별주의자'로 낙인찍히지 않기 위해 '숀 매슈스'나 그의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한 개인의 죽음이 집단의 문제로 간주되고, '폭력'이 대응 방식으로 선택된 순간 일은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가 문제를 의미 없이 극대화하고, 더 많은 희생을 감내해야 했던 적이 그간 얼마나 많았던가.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의 시작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는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의 시작을 알리는 소설이기도 하다. 어떤 죽음들로 인해 벌어진 파괴 위에서 우리는 작은 희망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소설은 어떤 결말도 확정 짓지 않은 채로 소설 밖 독자들에게 기대를 내비친다. '숀 매슈스'와 '그레이스'의 가족들이 보여준 가능성은 우리가 지금 내린 결정에 따라 파멸과 창조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면서 진행된 폐쇄정책을 떠올려 본다면, 거의 절망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에게 지펴진 분노의 불꽃이 사회의 동력으로 쓰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가 함께 꾸는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은 이전과 달리 흑인, 아시아인, 여성 등 인종과 성별을 향한 차별들을 가뿐하게 뛰어넘을 수 있다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그레이스는 카메라를 가리키던 알폰소 쿠리얼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그 애 이름을 기억해 주세요.‘ - P335
도시가 불길에 휩싸이고, 슬픔과 분노, 광란의 흥분에 사로잡힌 광경을 보았고, 작은 희망을 알아봤다. 재생. 파괴의 약속은 그것이었다. 감람나무, 무지개, 지구를 재건하기 위해 살아남은 선한 사람들. - P392
"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숀은 크게 외쳤다. "당신들이 아무 노력도 없이 위로받으려고 하는 행동이죠. 뭔가 바꾸고 싶다면, 우린 놔두고 정말로 ‘뭔가‘ 해 봐요." - P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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