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 성년의 나날들, 박완서 타계 10주기 헌정 개정판 소설로 그린 자화상 (개정판) 2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 주제 분류: 국내도서>한국소설

▶ 한줄평: 얼핏 보면 평화로운 시대 속에서 잊어버린 '산'의 자리를 망각하지 않기 위해 기어코 삶의 궤적을 거슬러 오르는 작품이다.

▶책 소개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치밀하고 풍성하게 한 개인의 삶의 역사를 보여 주는, 또한 가장 진실 되게 쓰인 20세기 한국의 생활 풍속사적 의의를 지니는 작품(357-8)




"우리가 그렇게 살았다우."

2021년 작가 박완서의 타계 10주기를 맞아 연작 자전소설 두 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가 새로운 커버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앞서 읽었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유아기에 대한 그리움으로 독자들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면,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소설 속 '완서'가 주체적으로 가족의 생존을 책임지는 어른으로 자라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완서'의 어린 시절을 지탱해 주던 '싱아'의 환상적인 내음은 온데간데없고, 뒤죽박죽 섞인 정치적 이념과 그로 인한 파괴적인 전쟁만이 '완서'의 세상을 차지하고 있다. 1부에서 작가가 개인의 생활상을 묘사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면, 2부는 격동의 시대를 목격한 증언자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한다. 이렇듯 시대와 그 안에 놓인 개인의 심정을 최대한 분명하게 서술하려는 작가의 노력 덕분에 우리는 시대를 뭉뚱그려 서술해 놓은 정형화된 자료들에서 벗어나 비로소 이전 시대의 역사를 좀 더 온전하게 인식하고, 본인이 살아온 역사처럼 가깝게 느낄 수 있게 된다.



"웬 놈의 겨울이 이렇게 길다냐?(281)"

대한민국의 긴긴 겨울을 '완서'를 비롯한 여자들은 정말이지 억척스럽게도 견뎌내었다. 물론 그들뿐만이 아니라 그 시대의 온 사람들이 그랬다. 워라밸이니, 개인적인 꿈이니, 하는 소리는 그들에게서 거의 들어본 일이 없다. 재주가 있다면 오로지 먹고사는 일을 위해 쓰였고, 이외의 것들은 사치에 불과했으며, 때로는 그런 헛소리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갈 수도 있었다. 이제는 그들이 생활의 터로, 은신처로 쓰던 산들이 깎이고, 개간되고, 또 무너져 그 자리에는 온갖 건물들이 들어섰다. 이전의 흔적을 말끔하게 지운 채로 새롭게 들어선 건물만 보고 살아온 나로서는 삶에 대한 그들의 집요함과 투쟁 같은 나날들 때문에 숨통이 옥죄는 듯한 기분이 들곤 한다. 그러나 작가 박완서의 글을 읽는 동안 나는 넘실거리는 싱아 꽃밭과 사라진 그 산을 보았다. 그 앞에서 나는 한없이 숙연해지고, 잃어버린 사람들과 공간들의 규모에 압도되고야 만다. 깊숙이 파고든 칼날 같은 밤바람 속에서 피어난 '목련나무'가 볼 수 있던 풍경은 인간이 저질렀다고는 믿을 수 없는 미친 짓들뿐이었다. 추운 겨울 안에 봄기운을 욱여넣기 위해 자신을 갈아 넣어야만 했던 사람들의 자리를 가만가만 더듬어 보게 하는 것이 작가 박완서의 소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개인적인 기록, 시대에 대한 증언을 넘어서서 그 시대와 현재의 간극을 메우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저쪽과 이쪽을 모두 겪은 우리는 이제 어느 한 쪽에 국한되지 않는다. 작가의 표현처럼 '새로운 돌연변이의 종'이 되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자 서있다. '싱아'와 '산'의 자리를 잊어야만 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도리어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그 토대 위에서 만개하겠다는 확고한 결심이다. 그게 우리를 어떻게든 대학까지 보내고 싶어 했던 엄마들에 대한 보답이자 글로벌 시대에 태어난 'MZ 세대'만이 이루어 낼 수 있는 뚜렷한 특징이 아닐까. 우리는 'N포세대'가 아니라, 새로운 돌연변이로서 어떠한 편견이나 원한도 없이 우리 자신만의 싱싱한 생살로 접붙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로 규정되어야 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불도저의 힘보다 망각의 힘이 더 무섭다. 그렇게 세상은 변해간다. 나도 요샌 거기 정말 그런 동산이 있었을까, 내 기억을 믿을 수 없어질 때가 있다. 그 산이 사라진 지 불과 반년밖에 안 됐는데 말이다.
- P7

그가 가장 사랑한 것도 아마 예술이 아니라 사는 일이었을 것이다. 사는 일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재주로 열심히 작업을 했다. 그뿐이었다.
- P307

엄마는 도대체 내가 무엇이 되길 바라고 저러는 걸까. 쌓이고 쌓인 게 많은 엄마가 측은했다. 그러나 내가 엄마의 돌파구는 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럴 마음도 능력도 없었다. 나는 내가 보통 아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 P346

당신이 나를 찢어 내듯이 그이도 그의 어머니로부터 찢어 낼 거예요. 우린 서로 찢겨 나온 싱싱한 생살로 접붙을 거예요. 접붙어서, 양쪽 집안의 잘나고 미천한 족속들이 온통 달려들어 눈을 부릅뜨고 살펴봐도 그들과 닮은 유전자를 발견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돌연변이의 종이 될 테니 두고 보셔요. -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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