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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의 위로
톤 텔레헨 지음, 김소라 그림, 정유정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평점 :
내가 출판사 아르테의 책 한 권을 친구에게 소개했을 때, 아르테가 어떤 출판사인지를 묻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서포터즈로 활동하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른이'를 위한 책을 만들어내는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냉정하고 무감각한 어른과 순수하고 모든 것에 열정적으로 반응하는 어린이 혹은 청소년 그 사이 어디쯤에 존재하는 독자를 위한 출판사,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번에 받은 <다람쥐의 위로> 또한 이전과 결이 같다. 책 표지에는 소설로 분류되었으나 어른이를 위한 동화에 가까운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에서도 꽤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네덜란드 작가 '톤 텔레헨'의 신작이다. 그는 동물이나 곤충들에게 인간과 같은 철학적 고민을 부여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고유한 특징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보통의 작품에서 동물이 등장하면 대개 인간처럼 기능하기 마련인데, 여기에서는 동물로서 고유의 특징을 최대한 유지하되 생각만큼은 단순하지 않게 쓰였다. 뭐랄까, 동물과 곤충도 읽고 쓰는 존재였다면 그들과 인간, 양쪽의 입장을 모두 고려한 작품이라고 평했을 듯하다.
이번 작품에서 위로의 주체는 당연히 다람쥐다. <브라운의 완벽한 고백>에서 '브라운'이 상대의 의중을 정확하게 짐작하여 위로를 건넬 줄 아는 프로였던 것과 달리, '다람쥐'는 상대가 원하는 바를 드러내면 그 방식을 따라 위로의 말을 속삭인다. 좋아하는 차 한 잔과 함께 누구의 말도 가로막지 않고 들어주는 인내심을 겸비한 청자이기도 하다. 옳고 그름을 따져 섣불리 조언하기보다 상대의 흐름에 맞춰 주는 것이 진정한 위로임을 다람쥐에게서 배울 수 있었다.
"난 서 있기만 해, 그냥 계속 서 있기만. 슬픈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백합 옆에서 쉴 새 없이 뛰어내렸다 올라앉았다 하며, 아무 어려움 없이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개구리를 향해 이따금씩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p12)"
"나는 항상 생각만 해, 항상. 한 번쯤은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외쳐 본다면 어떻게 될까. 다들 대답해 주겠지.
'여기야! 우리 여기 있어!'
그러고는 모두 아래로 내려올 거야. 어쩌면 같이 춤을 출 수 있을지도 몰라. 진지하고 처량한 춤을(p51)"
<다람쥐의 위로>에는 포유류, 조류, 파충류의 다양한 고민이 등장하는데, 그중에서는 내가 겪었던 것과 같은 종류의 힘듦을 지나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넘어지는 법을 알지 못하는 '왜가리'에게서 정체되어 있던 시기를 떠올렸다. 졸업 후에 부지런히 무언가를 배우고, 앞으로 나아가는 친구들과 달리 나는 머뭇거리고, 멀뚱거리며 서 있었다. 그때의 나는 넘어지는 법을 알지 못하는 '왜가리' 같았고, 신나게 부딪치며 뛰어다니는 친구들은 '개구리' 같았다. 넘어지는 일에는 고통이 수반되지만, 그래도 '개구리'처럼 뛰어오르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며 살고 싶었다. 글을 읽으면서, 태생적으로 넘어지는 일이 불가능한 '왜가리'와 인간으로서의 나는 다르면서도, 또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징어'는 약한 면을 드러낼 줄 모르던 나를 닮아 있었다. 나약함을 드러내고, 도움을 청하면 모두 기꺼이 바닥으로 내려와 나를 도와주었을 테지만, 나는 평소처럼 견디고 별일 없이 사는 척 굴었다. 소설 속 한 대사처럼 내가 설명을 해야만 상대가 이해할 수 있다면, 그건 설명을 해줘도 상대의 납득을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오징어'의 생각처럼 일단 털어놓고, 상대의 나를 향한 진지함과 처량함을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다. 그게 모든 것을 해결하진 못하더라도, 사소한 애정이 모여 당신의 극복을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당신에게도 이 책에 담긴 고민과 그에 대한 위로가 마음에 와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