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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V 빌런 고태경 - 2020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정대건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4월
평점 :
"모든 준비생들과 지망생들, 기회만 주어진다면 잘 해낼 사람들이지만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 놓인 누군가가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자신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소설을 썼다(작가의 말 중에서)."
꼭 암만 봐도 험해 보이는 길만을 골라 걷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종종 타인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지만, 그놈의 밥을 빌어먹지 못해 갖은 고생을 한다.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서야 겨우 시작이라도 할 수 있는 예술인으로서의 삶은 고달프지만, 또 그만큼 매력적이어서 거기에 투신하려는 자들이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늘어서 있다. 그리고 나도 늘 가시밭길 위를 헤매고 싶어 하는 부류 중 하나였다. 그래서 나는, 사회에서 일 인분을 해내지 못해 우울감을 느끼면서도, 예술에 집요하게 매달려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이 소설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내려는 이들의 버둥거림과 벗어날 수 없는 우울의 그림자는 내가 겪어본 일이기도 했으니 나는 이 책을 허구로만 생각하지 못했다. 내 과거를 제3자의 시선으로 때로는 냉철하게, 또 때로는 견디지 못하고 울고 웃으면서 읽어냈다. 예술이라는 꿈을 놓지 못한 이가 아니더라도, <GV 빌런 고태경>은 부단히도 기회를 찾아 헤매는 청춘을 위한 작품이기도 하다. 공무원과 유튜버를 권유하는 어머니와 도무지 이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꿈에 대한 집착은 내 삶과의 접점이다. 나와 여러모로 닮아 있는 소설을 참 적절한 때에 마주하게 되었다. 스스로를 불신하면서도 차마 놓지 못했던 꿈을 실현시킬 단 하나의 찬스를 만나게 될 거라는 기분 좋은 예감을 선사해 준 각별한 작품이다.
"어떻게 버티느냐고 물었지. 진정으로 응원해 주고 지켜봐 주는 한 사람만 있으면 돼.(217p)"
예술이든, 이외의 어떤 분야에 도전하고 있든 간에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한 준비는 고달프다. 적지 않은 경우에 준비라는 것이 음지에서 아주 오랜 시간을 인내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참으로 축축하던 그 시기를 글을 쓰며 버텨냈다. 책을 읽고 짧지 않은 글을 쓰는 것이 어렵지 않느냐고 누군가 묻기도 했다. 아니, 읽고 쓰는 것이야말로 내가 근근이 삶을 버티게 하는 요소다. 그게 내가 가진 두루뭉술한 꿈이기도 때문인 것도 있지만, 글을 통해 내 존재를 인식해 주는 어떤 이들이 내 삶의 터보 엔진이 되어주고 있다. 그들은 이미 머릿속에서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내 삶에 깊은 울림을 주고, 나의 허접한 글쓰기가 지금까지 이어지도록 도와주었다. 사회에서 나름의 자리를 찾고, 내 몫을 해낼 수 있도록 북돋워 주었다. 사람들의 사소한 행동으로 나는 지금 여기에 충실하고, 좋아하는 일을 너무 미워하지는 않으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제는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글을 쓰는 위치로까지의 도약을 꿈꾼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유예된 삶을 간신히 붙들고 있을 모든 준비생들을 떠올려 본다. 꿈꾸던 그 순간을 정말로 맞닥뜨리게 되리라는 허황된 위로는 건넬 수가 없다. 내 스스로도 그 시기를 만났는지 확신할 수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선택 아마추어'들이 실패를 감내하며, 무언가를 아끼는 우직한 마음과 함께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들도 나만큼 '고태경' 씨의 끈질긴 삶에 위안을 얻게 되길 바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