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배신하지 않는 공부의 기술 - 당신의 노력을 합격으로 바꾸는 14일 완성 공부 습관 프로젝트
이상욱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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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공부 방법을 꼼꼼히 기술했을 뿐만 아니라 노력을 향한 무한한 긍정으로 삶에 대한 열정을 부추기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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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그러니까 프랑스혁명 전후의 ‘영국‘과 ‘프랑스‘ 사이를 분주히 오가는 얼굴이 있다. 텔슨 은행의 직원 ‘로리‘, 그는 직업인으로서 모든 일을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종의 노동으로 받아들인다. 근면함과 성실함의 대표적인 인물인 ‘로리‘는 ‘두 도시 이야기‘의 시작점이지만, 우리는 이 이야기의 중심점이 될 만한 인물을 찾아야 한다. 그의 이름은 ‘마네뜨 박사‘로 18년 동안 바스띠유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던 의사이다. 그의 증언으로 인해 낱낱이 폭로되는 프랑스의 민낯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귀족과 일반 시민의 격차는 너무 벌어져 있고, 한 쪽은 ˝우리 이 불쌍한 종족이 멸종(490쪽)˝하기를 바라고 있다. 더 이상의 차별과 배제를 견디지 못하고 혁명을 통해 국왕 부부를 처단하고 공화정을 수립한 시민들의 부재가 우리와의 유일한 차별점이다.

˝자유, 평등, 우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412쪽)˝는 시민들의 구호는 퍽 감동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한 순수한 의도에서 시작되었던 프랑스의 혁명은 점진적으로 비이성적인 형태로 변화한다. 그들은 ‘기요띤‘을 성녀로 추대하고, 사람들을 데려와 온갖 이유로 사형을 집행한다. 애초에 그들이 추구하던 자유나 평등, 우애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지 오래다. 마지막에 죽어가던 소녀의 말처럼 ˝만약 이 공화국이 정말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고, 그래서 그들이 덜 배고프게 된다면, 그리고 모든 면에서 고생을 덜하게 된다면(564쪽)˝ 좋겠지만, 이제 시민들의 공화국은 저속한 앙갚음을 하는 데에 급급하다. 그리고 그들의 불타는 복수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무고한 생명들이 활용된다. 혁명이 하나의 놀이처럼 전락한 가운데 그들의 모습은 ‘마네뜨 박사‘를 납치한 귀족들과 다를 바 없었다. 상대 집단을 무심하게 짓밟았고 그로 인해 집단 사이의 갈등을 오히려 더 심화시켰다. 심지어는 동일한 집단 내에서도 분열이 일어나도록 부추긴 것이다.

길을 잃은 혁명으로 인해 혼란스러움이 극에 달한 순간 속에서 빛을 발하는 건 타인을 향한 누군가의 ‘사랑‘이자 ‘연민‘, ‘희생‘이다. 귀족에게 착취당하고 유린당한 채 죽어간 가족들을 외면하지 않으려던 ‘마네뜨 박사‘에게서, 혹은 사랑하는 여인 ‘루시‘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던 ‘씨드니 카턴‘에게서 우리는 몇몇 감정들이 혼돈에 대항하는 무기이자 대안처럼 간주됨을 목격한다. 낭만적인 감상에 불과한지도 모르지만, 거대한 사회 앞에서 무력한 개인을 떠올린다면 그것만이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개개인의 노력이 광기 어린 사회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으리란 추측이 도리어 비이성적인 지도 모른다. 격변하는 사회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또 영향력을 발휘하여 사람들 전부를,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사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을까. 오늘도 그런 물음이 남는다.


˝다시 살아나고 싶겠지요?˝
그리고 오래된 대답.
˝잘 모르겠소.˝

82쪽

이 대화가 아주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마네뜨 박사‘에게 하는 질문처럼 들렸다. 불쌍한 사람들을 돕고자 했던 선의로 18년 동안 감금되어야 했던 ‘마네뜨 박사‘는 ‘로리‘와 ‘드파르주‘의 도움으로 자신의 딸 ‘루시‘와 만나고 새롭게 다시 태어났다. 다시,라고 말하는 것은 그 의사는 절대 이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18년이라는 세월은 너무 길었다. 나는 ‘마네뜨 박사‘가 시민들의 공화국이 태초에 가지고 있던 선의를 일깨우기 위해 다시 살아난 것만 같다. 길을 잃은 혁명이 실제로 사회를 올바르게 개혁하고 무고한 생명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도록 말이다. 하지만 ‘마네뜨 박사‘는 되살아나고 싶었을까. 잘 모르겠다, 이 오래된 대답 속에서 좀처럼 나아지지 않을 미래에 대한 회의가 느껴진다. 아니, 때로는 우리 사회에게 묻는 질문처럼도 들린다. 사회는 이대로 죽어있고 싶은지도 모른다. 퇴락한 사회에서 자신의 안위만 위협받지 않는다면 자유, 평등, 우애의 행방에 관해서는 침묵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건 ‘두 도시‘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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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들이 경험하는 방식 - 김솔 짧은 소설
김솔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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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놀라웠던 건 작품 내내 이어지는 번역투의 서술 방식이다. 분명 외국어로 적힌 원문을 한국어로 고심해서 내뱉은 것만 같은 말투가 흥미로웠다. 말투뿐 아니라 작가는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대륙을 넘나든다. 글을 읽으면서 작가의 안에 축적된 경험과 그만의 내공을 느끼며 나는 주말 동안 쉼 없이 책장을 넘겼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담아둔 것이 넘쳐나는 사람들만의 인상이 있는 듯하다. 나는 김솔 작가에게서 앞으로도 쏟아낼 것이 많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그건 하나의 '인상'에 지나지 않지만.

완독을 한 이후의 느낌을 묻는다면, 그저 혼란스럽다고 대답해야 할 것 같다. 등장인물이 겪는 감정은 물론이거니와 각 소설이 끝나는 방식, 마무리하는 문장까지도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서 '살아남은 자들이 경험하는 방식'이라는 제목을 발견하고서는 새삼 이 책에 담긴 '혼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세상에 살아남는다는 것은 끝없는 혼돈을 감내하겠다는 문장과 동일한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어릴 땐 혼란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서있으면서도, 그 단어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가진 감정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현재는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으면서도, '혼란스럽다'라는 단어가 주는 기이한 느낌에 휘말려 곧잘 내가 애초에 표현하고자 했던 바를 잊어버리고야 만다.

김솔 작가가 이 책에 적어내려간 글들은 짧은 농담의 모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자리에서 들을 때만 해도, '저게 무슨 소리지.' 싶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꾸만 되새기게 되는, 은은하면서도 강렬한 흔적을 남기는 농담들. 그래서 어쩐지 꿈이나 신기루 같은 소설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그가 분명히 무언가를 내 마음에 남겼는데, 그게 정확히 어떤 것이었는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으리라는 예감이 든다. 마치 '혼란'이라는 단어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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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알고 있다 다카노 시리즈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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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알고 있다>를 읽으면서 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어떤 특정 영화를 떠올렸던 것은 아닌데, 일본 영화에서 자주 보던 장면이 요시다 슈이치의 문장과 겹쳐져 눈앞에 그려졌다. 이름을 댈 수 없는 한 일본 배우가 웃음을 터뜨리고, 벽을 기어오른다. 언젠가 본 적 있는 영화가 하나의 글을 통해 수면 위로 떠올랐던 것일까. 하지만 역시 이름만큼은 모르겠다. 전형적인 일본 영상물의 냄새를 풍기지만, 그렇다고 또 너무 고전적이어서 도저히 완독하지 못할 작품은 아니다. 꽤 흥미롭고 생생한 묘사로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세계관이 이어져 있는 다른 작품도 읽어볼 계획을 세우고 있을 정도이다.

이 작품은 실제 아동학대 사건에서 구상이 시작되었고, 작품 속에서도 아동학대의 이야기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현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동학대에 관한 경각심을 일깨우듯이 '다카노'의 삶을 통해 빈번하게 등장한다. 작가는 그 아이들을 동정하기보다 밖으로 꺼내놓고 스스로 일을 하며 나름의 개체로 살아가는 방향으로 글을 썼다. 아이들에게 관심을 두고, 그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쏟으려 했던 작가의 의도는 좋았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온전한 자유를 부여받지 못하고, 상급자의 지시가 없으면 쉽게 길을 잃는다. 아이들을 구원한다는 번듯한 명목 아래에서 또 다른 착취가 버젓하게 자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웠다. 한편으로는 어른들에게서 완전하게 분리되지 못하고 뚜렷한 소신이 형성되지 못하는 것은 청소년기의 흔한 특징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이것은 차차 이후에 이어지는 작품들에서 아이들의 향방을 지켜본 후 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되었든 그들이 스스로를 학대하지 않고 마음껏 자신에게 행복할 자유를 줄 수 있기를, 원하는 곳에 원하는 크기의 별을 멋대로 그리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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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땅
김숨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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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본래 땅 위를 떠도는 조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러던 것이 선 하나로 분명하게 쪼개지고, 맹목적으로 땅을 지켜내기 위해 치고받기 시작했다. 인간은 자유로이 방황하던 시절이 없던 것처럼 선 밖의 온갖 것들을 배척하기 시작했다. '국가'와 '민족'을 시발점으로 삼아 자행된 폭력을 떠올려 보면 공통된 조상의 존재가 무색해진다. 한편으로는 다양한 방식으로 국가 간 이동이 증폭되었다. 유학이나 이민, 여행 등의 이유로 그리고 최근의 세계적 질병으로 국가 간의 경계는 희미해졌다. '지구촌'이 닳고 닳은 사회학적 용어가 아니라 체감 가능한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또 한 번 좀처럼 정착하지 못하고, 늘 떠도는 인류가 되어간다.

하지만 '떠돎'이 '자유'로 치환될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우리의 뿌리가 견고하게 박혀있는 땅의 존재 덕분이다. 타국에서 서럽고 외로워도 이는 하나의 잎에 불과하고, 뿌리가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저 너머로 귀환한 후에 모든 것이 치유될 수 있다는 믿음은 떠도는 이들을 지탱해 준다. 뿌리까지 통째로 뽑혀져 질질 끌려다니는 삶을 사는 이들은 경계의 구분과 정착을 더욱 반길 테다. 물론, 나의 뿌리가 심어진 땅이 있다는 사실이 내게 완전한 보호를 제공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등록증과 여권이 주는 강한 확신은 나의 무한한 떠돎과 귀환을 가능하게 만든다.

나는 '고려인'을 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오래전의 일이라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그들은 한국의 책임을 요구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어린 나는 그들의 상황에 몰입해서 저 사람들 빨리 도와줘,라고 외쳤던 것 같다. 그때 한 어른이 내게 고려인은 한국인이 아니니까 국가에서 나설 필요가 없다는 가르침을 주었다. 국가의 개념을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로 나는 알 수 없는 무력함을 느꼈다. <떠도는 땅>에 등장한 인물들도 대부분이 스스로를 러시아인으로 인식한다. 살아남기 위해서 러시아인이 되어야 하고, '조선'이라는 땅과의 시간적·물리적 거리에서 비롯된 생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한국 모두에 얇은 뿌리를 걸쳐 놓은 그들을 우리는 외면해야 옳을까. 2개 이상의 국가에 뿌리를 둔 이들에 관한 고민은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 외국에 거주하는 한인을 코로나 사태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본국에 데려온 정부의 행동을 비난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왜 모든 것을 한국이 부담을 지는지 의아해했다. 국제결혼과 외국인 유입 등의 이유로 국가의 경계가 허물어져가고 있는 지금, 우리는 중요한 길목 위에 서 있다.

내가 <떠도는 땅>을 읽으며 자주 억울한 마음이 들었던 건 '고려인'이 결국엔 같은 핏줄을 공유하기 때문인 점도 있다. 그러나 '국가'라는 딱지를 떼고 보아도, 분노는 그칠 줄을 모른다. 같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그 위에 군림하면서 소수 민족의 권리를 앗아간 권력자들의 행태가 분명히 옳지 못하기 때문이다. 핏줄에 대한 본능적인 보호 욕구보다 '인권'에 관한 개인적인 관심이 소설을 읽는 나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그저 생존과 자유를 위해 자신의 출생지를 이탈한 사람들에게 존중과 보호가 주어지길 바란다. '국가'라는 모호하고 불확실한 개념을 변명으로 삼기보다 '인권'을 중요시하고, '지구촌'을 위해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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