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들의 공부법
박희병 엮어 옮김 / 창비 / 199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대학에 가거나 취업하기 위해서 공부를 한다. 즉 공부는 성공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경쟁이 심한 지금 사회에서 진지하게 공부를 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옛 사람들은 왜 공부를 했을까? 이 책 “선인들의 공부법”을 읽어보면 옛날 선비들이 어떻게, 어떤 목적으로 공부를 했는지 알 수 있다.



 

 

공부란 바로 삶 그 자체

 

 

선인들은 깊은 이치(도)를 알기 위해 공부를 했다. 이것을 알면 군자가 되고 더불어 세상을 안정시킬 수 있는 지혜를 얻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공부는 평생 동안 해야 하는 삶 그 자체였다. 그들은 공부를 함으로써 얻는 성과가 아니라 공부하는 태도 그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선인들은  “공부해서 남주냐” “30분을 더 공부하면 아내가(남편이) 바뀐다”가 아니라 “뜻을 굳게 지녀라”, “똑바른 자세로 공부하라”, “성급하게 하지 말고 천천히 하라” 라고 말했다.

 

 

또 정밀하고 치밀한 독서를 강조했다. 즉 글자 하나하나, 문구 하나하나를 진지하게 읽어가면서 공부해야만 깊은 이치를 알 수 있다고 한다.



 

 

학자마다 다른 공부에 대한 생각

 

 

그렇다고 이 책에 나온 선인들의 말이 다 같은 아니다. 주자나 이황 같은 성리학자들은 책을 깊게 읽어서 이치를 탐구하는 것이 진정한 공부라고 말했다. 그런데 자유로운 학문을 ?은 서경덕은 책보다는 생각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책이란 생각이 맞는지를 확인하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양명학을 만든 왕양명은 책을 읽는 것보다는 세상의 모든 아픔을 다 감싸 안는 것이 공부라고 했다.



수많은 의병장을 배출한 유학자 조식은 함부로 천리를 운운하는 것을 매우 웃기게 보았고 사변으로 가는 성리학을 매우 비판했다. 실학자는 현실에 직접 도움이 되는 공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홍대용은 “남을 이기려거나 자신의 박식함을 자랑하기 위해 세상에 아무 도움도 안 되는 헛된 말을 해서야 되겠는가?”라고 말했고 이익은 퇴계에 대해 “도의 본원과 도덕적 실천에 관해서 논의하는데 힘썼을 뿐, 현실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그 시대 주류인 성리학의 현실무능력을 완곡히 비판했다.



즉 선인들이 궁극으로 삼은 공부의 목적은 비슷하지만 그것을 이루는 방법에는 시대의 흐름과 자신의 가치관마다 매우 달랐다.


 

 

시대를 넘어서 선인에게 배울 것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학문은 대부분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어서 이 책에 있는 공부방법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힘들다. 가뜩이나 읽어야 할 것들은 쏟아져 나오는데 언제 한줄 한줄 읽고 생각하고 그러겠는가? 게다가 우리에게는 취업과 성공이라는 커다란 임무가 앞에 놓여 있다. 인격을 완성하고 세상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공부는 어쩌면 지금 세상에서는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 시대 사람들 중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순수하게 자기수양만을 위해 공부를 했겠는가?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과거에 합격하고 보란 듯 잘 살기 위해 사서삼경을  달달 외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은 어쩌면 몇 안 되는 극소수 선인들일 것이다.



그래도 토익 몇 점, 취업 성공, 고시합격같이 바로 눈에 보이는 어떤 결과를 얻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가다듬고 치밀하게 궁리해서 깊은 이치를 파헤치는 저 선인들의 공부태도는 우리에게 이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그것이 뭘까? 재화와 지위 획득이 아니라 순수하게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사회의 보탬이 되기 위해서 공부하라는 것 아닐까? 그래야만 진정한 공부를 할 수 있고 또 그런 공부야말로 정말 재미있고 보람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200여 페이지밖에 안되는 이 책은 쉬운 내용에 비해 우리에게 적잖은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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