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성생활 - 21세기판 킨제이 보고서
자닌 모쉬-라보 지음, 정장진 옮김 / 이마고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며칠전 신문에서 장 폴 뒤부아의 ‘프랑스적인 삶’이라는 책 광고를 보았다. 거기에는 “아들의 친구를 유혹하는 여자, 남편 몰래 외도해 낳은 자식을 고집스럽게 키우는 여자, 어느 날 갑자기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나 집을 나가는 남편, 아내와 자식을 쏘아죽이고 자살하는 정신분석학자”라는 줄거리가 적혀 있었다. 좀 웃겼다. 도대체 프랑스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삶이 프랑스적인 삶이라는 것인가?



이런 궁금증에 이 책이 조금 답변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자닌 모쉬-라보’라는 여성학자가 프랑스 당국의 지원을 받아 1999년부터 2001년까지 프랑스에 살고 있는 140명의 사람들의 성생활을 조사한 보고서다. 언뜻 보면 킨제이 보고서와 비슷하다. 하지만 킨제이는 설문조사를 중심으로 조사했지만 자닌 모쉬-라보는 심층면접을 중심으로 조사했다. 그래서 이 책에는 “난 삽입해야만 쾌락을 느낄 수 있어요. 그런데 그 남자는 내 몸을 구석구석 애무했어요. 그래서 짜증났죠" 라는 생생한 목소리가 차고 넘친다.



그럼 이 책으로 본 프랑스인의 성생활은 어떤 것인가?





우리보다 훨씬 개방적인 프랑스인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적잖이 당황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섹스를 하려면  먼저 둘이 사겨야 한다. 그리고 마음을 맞추고 손을 잡고 키스하고 페팅을 하다가 섹스를 하는 것으로 난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나온 사람들은 저런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한 눈에 봐서 괜찮다고 생각하면 바로 섹스를 한다. 그리고 점점 마음을 맞추어 가는 것 같다.


 


사귄다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성 파트너는 여러 명 있을 수 있다. 프랑스 사람들은 이걸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게다가 이들은 우리가 말하는 ‘원나잇’을 별거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전직 비서인 48세 여성은 몇 명의 남자와 섹스를 했냐는 질문에 “정말 아무런 중요성도 없어 거의 기억조차 안 나는 만남도 있어요. 그러니 어떻게 내가 얼마나 많은 남자를 만났는지 정확하게 말할 수 있겠어요?” 라고 말을 한다.



그럼 프랑스 사람들은 평생 동안 몇 명과 섹스를 할까? 이건 사람들마다 다 달라서 딱 뭐라고 말하기 힘들다. 단 한명과 섹스한 어떤 주부도 있고 3000명(!)과 섹스한 스트립 댄서도 있다. 그런데 보통 20대 프랑스인 남자는 약 20명의 성파트너를 경험하고 여자는 약 4-5명 정도를 경험한다고 한다. 이 책에는 남자들이 매춘부와 관계한 여자도 성파트너로 치기 때문에 이런 불균형이 생겼다고 한다.



프랑스인의 성생활 모습은 내 입을 딱 벌리게 한다. 이 조사에 답한 남자들 중에는 한명만 빼고 다 항문섹스를 해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경찰관인 30세 피에르는 “여성의 질보다 더 단단하고 좁아요. 그러니까 더 큰 쾌락을 줄 수 있죠. 게다가 접촉 면접도 더 넓어요. 그리고 또 덜 축축해요. 그래서 사정도 빨라요”라고 말한다. 또 많은 사람들이 3명과 같이 하는 섹스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요트강사인 알렉상드르는 “그건 항상 흥분돼요. 항상 뭔가 충만한 느낌을 주지요”라고 말을 한다. 리베라시옹같은 신문에 공개적으로 "성파트너"를 찾는다는 광고가 버젓이 실리기도 한다. 이들에게 성에는 어떤 금기가 없는 것 같다. 이 책에는 저자가 직접 관찰한 그룹섹스 이야기도 나오는데 이 부분은 차마 여기에 못 적겠다. 알고 싶으면 직접 읽어 보기를 바란다.

 

 

 

 

 

 

프랑스 성의 어두운 모습

 


우리에게 에이즈는 딴 나라 일에 가깝지만 프랑스인에게는 목숨이 걸린 일이다. 우리는 임신을 막으려고 콘돔을 끼지만 프랑스인들은 에이즈를 막으려고 콘돔을 낀다. 재미있는 점은 프랑스인들은 콘돔을 벗고 섹스를 하는 사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이’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에이즈의 위험이 있는데도 상대방을 믿고 콘돔을 안 끼니 이 얼마나 아름답고 신뢰가 가득한(?) 사이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 책에는 동성애자, 양성애자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게이들의 파트너 수는 보통 사람들보다 2-3배가 넘고 동거를 해도 3개월 이상 넘지 못한다. 레즈비언들은 한 사람과 오랫동안 관계를 맺기 원한다. 프랑스는 이런 사람들을 병적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도 정체성 때문에 고민하고 부모들에게 인정받지 못해서 고민한다. 또 연인과 길거리에 걸어가다가 종종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모욕을 받는다고 한다.



프랑스인들은 남녀가 오래 사귀면 여자 쪽에서 먼저 아이를 낳기를 원한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남자들이 여자가 아이를 낳으려고 하면 무조건 피한다고 한다. 심지어 여자가 애를 배었고 낙태할 생각이 없으면 십중팔구 남자들은 헤어지자고 말을 하거나 잠적한다고 한다. 자유가 좋기는 하지만 프랑스 남자들은 너무 무책임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에서도 1년에 5만 명 이상이 성폭행을 당한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집단성폭행인데 인권과 개인의 자유가 발달한 프랑스에서도 집단성폭행을 당한 여자들 대부분은 신고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책에는 안-마리라고 3명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자를 인터뷰한 모습이 나온다. 마리는 성폭행을 당한 후 매일 모르핀과 약과 술을 먹어야만 했다. 정신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강간의 충격이 계속 느껴지기 때문이다. 매일 신경정신과 의사를 만났고 정신병원에 세 번 입원했다. “나에게 그 사내들을 유혹한 뭔가가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죄의식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마리는 2년 만에 신고를 할 수 있었지만 경찰관의 무책임한 푸대접으로 마음고생이 더욱 심했다고 한다.







성은 다양해야, 하지만 존엄성은 지켜져야


 

이 책은 정말 재미있고 맥심이나 여성지에 나오는 그런 이야기보다 훨씬 풍부하고 다채롭다. 그리고 옳은 성, 바람직한 성이 무엇인지를 의심하게 된다. 무엇을 근거로 누구는 변태고 누구는 정상이라고 함부로 말하는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자신만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뭐가 잘못되었고 나쁘다는 것인가? 이 책은 이런 물음을 사람들에게 던져준다. 더불어 폭력적인 성, 잘못된 성, 규범과 억압으로 가득찬 성이 사람을 얼마나 불행하게 만드는 지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책에는 여기에 쓴 것 말고도 많은 내용이 나온다. 프랑스 남자들도 콘돔을 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슬람 여성들은 코란의 규범에 따라 처녀성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항문섹스를 한다. 게이들이 원나잇을 하는 방법은 너무 쉽다. 게이들이 모이는 숲이나 집회에 가서 같은 게이에게 말만 건네면 된다. 프랑스 남자들도 자기가 바람을 피우는 것은 별거 아닌 것으로 생각하지만 아내가 바람을 피우면 미치기 직전까지 간다고 한다. 이런 재미있는 내용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하지만 구하기는 힘들 것이다. 난 이 책을 사려고 했지만 품절되는 바람에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다. 인터넷에는 별별 거지같은 성 지식들이 진실인 양 판을 치고 이런 솔직하고 진실한 고백서는 사라지고 있는 지금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arine 2006-08-07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녀성을 지키기 위해서 항문섹스를 한다가 정말 압권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