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류사회 - 새로운 계층집단의 출현
미우라 아츠시 지음, 이화성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언제부터인가  바깥 활동을 하지 않고 게임과 인터넷만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폐인'이라는 말이 돌아다니고 있고 이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재미있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폐인을 청년실업의 불쌍한 희생자라고 생각하지 '낙오자'나 '패배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폐인들이 점점 늘어나서 결국 이 사회 사람의 반이 되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미우라 아츠시는 이 책에서 일본에서는 하류가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결국 일본 인구 반이 하류가 되고 일본 사회는 상류와 하류로 갈라져 버린다고 경고한다.

 

 

하류남자는 뒹굴뒹굴, 하류여자는 노래하고 춤춘다

그럼 하류는 누구인가? 언뜻 보기에는 길거리에서 할일없이 빌빌거리는 돈없는 사람들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면 여기서 말하는 하류는 "인생에 의욕이 없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가난하지 않다. 그들은 컴퓨터와 핸드폰을 가지고 있고 쇼핑을 좋아하며 서브컬쳐 문화를 즐긴다. 하지만 이들은 일할 의욕도, 성공할 의욕도 없다. 왜냐하면 아르바이트로 충분히 자기가 원하는 문화를 즐길 수 있으므로 구지 힘든 사회경쟁에 뛰어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람들과 잘 만나지 않아서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매우 떨어진다. 재미있게도 하류남자는 방에 안나오려고 하고 하류여자는 바깥에서 놀려고 한다. 글쓴이는 이런 모습을 "하류남자는 집안에서 뒹굴뒹굴하고 하류여자는 노래하며 춤춘다"라고 재미있게 표현한다(상류여자는 공부하느라 바빠서 놀 시간이 없다고 한다).

이들은 나다운 인생을 꿈꾼다. 이들은 주로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하며 자기만의 개성있는 삶을 살려고 한다. 하지만 나이가 점점 들면서 취직은 안되고 소득은 적어진다. 그리고 점점 생활 수준은 낮아진다.

하류들은 하류들끼리 살고 그들끼리 결혼한다. 그들이 낳은 자식도 역시 하류가 될 확률이 높다. 그러면서 점점 계층은 고정되어 간다. 결국 사회는 상류와 하류로 갈라진다. 하류들은 "꿈이 깨진 데 대한 패배감에 못 견디고 무기력하게 살 수 밖에"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는 "상류가 중류와 하류를 배려해주는 일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하류는 패배자인가?

그럼 상류와 하류로 나뉘는 일은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저자는 이 문제를 교육정책으로 풀려고 한다. 즉 돈이 없는 사람이 대학에 갈 때에는 가산점을 주고 도쿄대학 수업료를 무료로 하고 대학 수업을 인터넷으로 볼 수 있게 해서 다른 지역 사람들이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하자고 한다. 더불어 상류는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발휘하라고 한다.

일단 난 수많은 설문조사표와 일본에서만 쓰이는 용어 때문에 이 책을 좀 지루하게 읽었다. 그리고 하류의식을 지니는 까닭은 단지 교육에만 있는 것은 아닐 텐데 저자의 대안이 너무 교육쪽에 몰려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 교토대학 수업료 무료화같은 저자의 대안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생각도 든다.

더불어 이 책은 하류들이 나다운 삶을 살고 자기만의 세계에 파묻히는 것을 매우 비판하는데 난 그런 삶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사려고 하는 게 무엇이 나쁜가. 단지 겉으로 그렇게 좋아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는 것은 너무 삶을 딱딱하게 보는 것은 아닌가?

물론 책 중간중간에 "거리나 역에서 쓰러져 있는 젊은이를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라면서 "기회균등을 한결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라는 걸 보아 저자는 가슴이 따듯한 사람인 것 같다. 그리고 저자는 양극화가 완전히 계급으로 되버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그들의 삶에 좋은점을 찾고 그들이 제대로 살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가 도와주는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 비주류인 하류들이 만드는 서브컬쳐가 일본 문화의 중심이 될 지도 모른다. 실제로 세계에 위세를 떨치고 있는 일본 에니메이션은 저자가 하류라고 말하는 오타쿠들이 만들지 않는가. 

이 책 마지막에는 우리나라 사람들 3명이 쓴 서평이 실려 있다. 그런데 조선일보 주필이라는 이준이란 사람은 "가진자를 구박하는 나라에서 살겠다는 부자가 어디 있으며 세금 많이 걷는 나라에서 기업하겠다는 기업인이 어디있느냐"라며 "빈곤층 문제 해결애도 시장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라고 하류사회의 대안을 매우 차갑게 말한다. 이런 내용은 하류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철저한 기회평등을 주장하는 글쓴이의 생각과 완전히 다르다. 출판사는 다음 판에 내용의 일관성을 위해 이준 주필의 서평은 빼버리는 게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