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기술
발타자르 그라시안 지음, 차재호 옮김 / 서교출판사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지랄한다

 

지금 많이 팔리고 있는 책 중에는 류시화, 법정스님, 탁닛한, 달라이라마가 쓴 책같이 무소유나 용서를 강조하는 책이 많다. 난 이런 책이 싫다. 누굴 용서하란 말인가? 세상에는 용서받지 못할 놈들이 뻔뻔스럽게 돌아다니고 있고 오히려 용서받아야 할 사람이 숨죽이며 살고 있다. 제주도민란학살사건이나 광주사태같은 현대사를 살펴보면 잘 알수 있다. 특히 나는 강간범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살인자에게는 사형을, 강간범에게는 거세형을"이라고 주장한 칸트의 말대로 난 정말 인간같지 않는 강간범들은 모조리 거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슨 무소유란 말인가?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무시받는 세상인데! 느긋하게 살라고? 그러다가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이런 책을 읽고 감동한 사람에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난 저런 책은 삶을 힘겨워 하는 현대인들에게 세상은 아름답고 살 만하다는 환상을 주는 최면제와 비슷한 역활을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저 글쓴이들을 무조건 비난하는 건 아니다. 법정스님은 한때 부패한 불교를 맹렬히 비난하셨다. 탓닉한 스님은 미국에서 반전과 평화운동을 하셨고 달라이라마는 티베트 해방을 위해 전세계를 떠돌아다니신다. 그리고 현대학문에서도 그분들의 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심리학에서는 행복은 바깥 환경보다는 자신의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증명했다.  비록 논란이 되고 있지만 신경신학에서는 온 세상과 내가 하나가 되는 신적 경험을 뇌촬영으로 증명해버렸다(위 내용을 알고 싶으면 'flow'(미하일칙센트미하일)나 '신은 왜 우리곁을 떠나지 않는가'(앤드류 뉴버그외)를 보길 바란다). 

그래도 난 이런 책들을 보면 솔직히 좀 쏠린다. 이건 내 성격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노래와 "TV동화 행복한 세상"이란 프로그램을 정말 싫어한다. 이런 것들을 보거나 들을 때마다 내 속은 뒤틀린다. 아무튼 나같은 사람에게는 사랑하라, 용서하라 같은 입에 발린 조언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차가운 조언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건 다른 사람들에게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떨까? 스페인의 대 문호 발타자르 그라시안이 쓴 "지혜의 기술"을 소개한다.

 

 

남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일은 절벽 위에 서서

다른 사람이 등을 떠밀어 주기만을 바라는 것과

같다

 

이 책을 쓴 발타자르 그라시안(1601~1658)은 스페인의 철학자이자 작가로 세상을 차갑고 날카롭게 보았기 때문에 기독교에 미움을 받은 사람이다. 그가 이 책을 내자 교단에서는 판매금지 조치를 내렸다. 그리고 200년 후에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이 책을 번역하면서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다. 쇼펜하우어는 이 책을 "소중한 친구처럼 당신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주는 책" 이라고 말했고 니체는 "유럽에서 발간된 책 중, 이 보다 분명한 인생지침서는 일찍이 없었다"라고 했다.

그럼 무엇때문에 쇼펜하우어와 니체가 이 책을 칭찬했는가? 그건 바로 이 책에 가식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랑하라, 작은 것에 만족하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말을 아껴 남에게 약점을 잡힐 빌미를 제공하지 마라" "지혜를 인생의 길잡이로 삼아라. 요즘 세상은 너무나 혼탁해, 거짓으로 자신을 치장한 자들이 대접받는 시대가 되었다" 같은 내용이 주를 이룬다. 즉 이 책은 처세술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가르쳐준다.

이 책의 문장은 매우 수려하고 날카롭다. 내가 이 책을 어쩌구저쩌구 하는 것은 이 책의 가치를 깎아먹는 짓이다. 난 이 책에 담긴 원문을 직접 소개하겠다.

 

 

"남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일은 절벽 위에 서서 다른 사람이 등을 떠밀어 주기만을 바라는 것과 같다-30쪽"

"언제나 본심대로 솔직하게 행동하면 남에게 속아서 기선을 빼앗기고 따돌림을 당하고 만다-33쪽"

"직업상 관계있는 사람들의 약점을 찾는 일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지혜로운 사람이 어쩔 수 없이 택하는 기술이다-40쪽"

"남을 돕는 데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은 좋지만 도리어 그 때문에 괴로움과 고민의 씨앗을 자신이 품게 되는 상황을 만들지는 마라-67쪽"

"요모조모 따져보아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절대로 행동으로 옮기지 마라-89쪽"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 있다.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남들에게 들키지 않는 것이다-119쪽"

"자신과 비교해서 지나치게 뛰어난 친구는 사귀지 않는 편이 좋다. 이름이 알려진 뒤에는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사람과 함께 다녀라-139쪽"

"입이 가벼운 사람은 겉봉이 뜯어져 버린 편지와 같다. 맘만 먹으면 누구든 들키지 않고 비밀을 캐낼 수 있는 한심한 사람이라는 말이다-166쪽"

 

 

무슨 책을 살 것인가

이정도 소개라면 이 책이 어떤지를 충분히 알았을 것이다. 겹친 내용도 많고 좀 뻔한 내용도 보이기는 하지만 잘 읽어서 나름대로 소화한다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이 책에 가득한 날카로운 문장을 읽다 보면 온 몸을 찌르는 무엇인가를 자주 느낄 것이다.

한가지 이야기할 게 있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번역본은 우리나라에 정말 많다. 제목도 "인생을 보는 지혜" "지혜의 기술"  "성공을 위해 밑줄 긋고 싶은 말들" 같이 모두 다르다.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책은 두행숙씨가 번역하고 집사재란 출판사에서 나온 "인생을 보는 지혜"라는 책이다. 이 책은 13년전에 나온 책으로 발타자르 책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자 가장 권위있는 책이다. 발타자르의 책을 사려면 두행숙씨가 번역한 책을 사길 바란다. 나도 이 책을 사려고 했는데 서점에 없어서 차재호씨가 번역한 이 책을 샀다. 이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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