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루쉰 지음, 이욱연 엮고 옮김 / 예문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야큐정전이란 소설로 중국민중의 허위의식을 비판한 루신(노신)의 산문집이다.

루신은 사실 사회변혁을 위해 운동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젊을 때 의사가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일본에 유학가서 의학을 공부했다.

어느 해부학 수업시간이었다. 그날 강의는 일찍 끝나고 시간은 조금 남았다. 그때 일본인 강사는 재미있는 걸 보여주겠다며 어떤 슬라이드 영상을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그건 바로 중국인 처형장면이었다. 수많은 중국 군중들이 중국인의 목을 베는 장면을 보기 위해 둘러모였다. 곧이어 일본인 무사는 어떤 중국인의 목을 칼로 베었다. 그 많은 중국인은 자기동족이 처형받는 모습을 무덤덤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이 슬라이드를 보고 일본인 학생들은 깔깔 웃었다.(왜 웃었는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일본인들의 정신세계에는 싸이코틱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노신은 웃지 못했다. 일본인들이 자신의 동족을 처형하는 장면을 보고 웃어서가 아니다. 저 처형장면을 너무나 당연히, 저항하지 않고, 아무생각없이 쳐다보고 있는 중국인들 때문이었다. 반항할때 반항하지 못하고, 오히려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비웃는 중국인들의 허위의식을 루신은 그때 본 것이다.

루신은 깨달았다. 중국인의 몸을 고치는 것보다 중국인의 생각을 고치는 게 더 중요하고 위급하다는 사실을. 그는 의대공부를 포기하고 문학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그 유명한 아큐정전을 썼다.

이 책은 루신이 각 잡지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서 정리한 것이다. 여기에는 중국인들의 생각을 깨우는 글들이 들어있다.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약한 중국인, 여자에 관한 모든 것들을 불결하고 부정하게 생각하는 나쁜 생각, 희생당한 학생들을 비웃는 지식인들, 모든 혁명을 무의미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비꼬는 자칭 성인군자들을 질타하는 글들이 써져 있다.

이 책에는 그런 저항적인 글들만 써져 있는 것이 아니다. 루신이 기억한 어린시절, 밤을 보고 느끼는 센치한 감정들도 이 책 곳곳에 들어있다.

그러기에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루신 사상의 정수'가 들어있다고 평했다.

리영희 선생님이 루신을 정신적 스승으로 여긴 사실은 너무나 유명하다. 그래서 이 책에는 리영희 선생님의 추천글도 들어있다.

솔직히 말해서 난 이 책을 읽고 감흥이 별로 오지 않았다. 독재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나에게 이 책 이야기는 딴나라 이야기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 책은 중국인들이 읽으라고 쓴 글이지 한국인들이 읽으라고 쓴 글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있는 이야기는 정말 좋은 이야기들이다. 특히 인간의 비굴함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글들은 매우 인상깊었다. 좋은생각이란 월간책자처럼 아주~감동어린~좋은말만 써진 책과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책 내용이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감동이 오지 않는다. 24살 대학생의 눈으로 보는 루신의 글들은 어제 본 책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도 한번 읽어볼 만한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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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보리짱 2005-05-31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흥이 오지 않았다에 한표 던집니다. 대학생 때 많은 것을 얻었다는 흐릿한 기억은 있는데..... 그 유명함 때문인가??
감동이 오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 .....
아마도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갔던 루쉰의 시대와 지금의 시대가 달라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중국과 한국의 차이도 있고.
어쨌든 루쉰의 이 책은 별 감흥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