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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의 에로틱한 잠재력
다비드 포앙키노스 지음, 김경태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누구나 어릴 때 혹은 나이가 들어서도 무언가를 수집하는 일에 흥미를 느낄 것이다. 수집이라고 하면 가장 흔했던 기념우표수집이나 관광지에서 파는 조잡한 배지, 하다못해 레스토랑에서 광고로 제작한 컵받침이나 성냥, 라이터 같은 것이라도 수집을 한 기억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 정말 길이길이 역사에 남을 '알 수 없는 어떤 것'에 푹 빠진 남자가 있다. 바로 물건관계(?) 복잡하다고 물건들 사이에서 떠도는 돈 후앙, 엑토르였다.
우선 그에 대해 말하자면, 영웅과 같은 인상을 가졌으며, 예쁜 혀를 소유하고 있었고, 미국 여행을 안 가고도 미국에 주 하나를 세워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미국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남자다. 그런 그의 취미가 '수집'이라는 것은 어쩌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에 부응해서 그의 수집 역사 역시 끝이 없으니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이러한 것들이다.
"(…)그는 우표를, 면허증을, 부두의 배 그림을, 지하철 표를, 책의 첫 페이지를, 아페리티프를 저을 때 쓰는 플라스틱 막내와 과일 조각을 꽂는 플라스틱 꼬치를, 병뚜겅을, '너'와 함께한 순간을, 크로아티아 속담을, 킨더 장난감을, 냅킨을, 누에콩을, 카메라 필름을, 기념품을, 커프스버튼을, 온도계를, 토끼발을, 출생신고서를, 인도양의 조개를, 아침 다섯시의 소음을, 치즈 라벨을 한마디로, 모든 것을 수집했고 매번 같은 흥분을 느꼈다.(…)"
그런 그가 거의 알려지진 않았지만 '선거 캠페인용 배지 보유자 전국 대회'라는 수집가들의 경연대회에서 1960년 미국 공화당 예비선거 캠페인 사용되었던 '닉슨 이즈 더 베스트' 배지로 우승을 할 뻔하다가 스웨덴 남자가 꺼내 놓은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트 클럽 밴드'의 리더를 선출하는 선거 캠페인 배지라는 비틀즈 배지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솔직히 그 배지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닉슨보다는 어쨌든 비틀즈가 낫지 않은가?^^) 그 후로 그는 '수집'이라는 걸 자제해보기로 했다. 물론 그게 말처럼 쉬웠다면 이 책은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코믹하고 유쾌하고 발랄한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거의 매 페이지마다 킥킥거렸는데 다비드 포앙키노스라는 외우기도 힘든 이름을 가진 작가의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우디 앨런 같은 글에 그만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더구나 주인공인 엑토르가 아내의 에로틱한 잠재력을 수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은 거의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이런 재미난 발상을 할 수 있는 건지, 또 아내 브리지트의 환상은 얼마나 웃겼는지(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라면 모든 남자들이 한번쯤 아내의 요구를 들어줘야 할 것 같기도 한;;;), 마지막에 대미를 장식한 그의 대단하고(?) 감동적인 수집품(?)은 또 얼마나 긴장감이 넘치던지….
이 책이 프랑스에서 출간될 때 '자전적 소설 아님'이라는 띠지를 두르고 나왔다고 한다. 그 설정이 또 얼마나 웃겼을 지 상상이 되고도 남음이다.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해서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 행복한 결말을 보여주는 다비드 포앙키누스의 『내 아내의 에로틱한 잠재력』은 어쩌면 그동안 나도 몰랐던 나의 에로틱한 잠재력을 우연히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 유리창이 아니라면 바닥에 걸레질로라도.-.- 정말? 그렇다면 나도 빨리 도서관에 가서 하다못해 만화책 앞에서라도 운명적인 연인을 찾아봐야겠다.
사족: 이 책을 읽기 전에 로제 니미에의 딸이 아버지 로제 니미에에 대해 쓴 책을 읽고 있었는데 우연하게도 『내 아내의 에로틱한 잠재력』이 로제 니미에 상을 받은 작품이란다. 만약 내가 로제 니미에에 관한 책을 읽지 않았다면 관심도 없이 그냥 넘어갔을텐데, 책이란 참 재미있는 것 같다. 작은 연결고리에도 어머!하고 놀라게 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