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장바구니를 채우고 채우고 채운다. 트위터에 이어 페북으로 이젠 인스타그램에서 책 추천을 받고 보니 내 장바구니만 무거워질 뿐이다. 어찌하여 트위터로 무시한 책들이 페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는 색다르게 느껴지고 인스타그램에서 시큰둥했던 책들은 블로그나 서재에 오면 또 다르게 보이니 이게 무슨 조화인가? 이래 저래 결국은 다 사서 읽어야 (소장해야) 한다는 것?

 

 

 

 

한창훈 쌤의 신간이 나왔다.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개정판이니 신간이기보다는 새 책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예전에 나왔던 첫 산문집 『향연』이 옷을 갈아 입었다. 2편이 빠지고 7편이 재수록되고 제목도 바꼈다. 바뀐 제목이 어쩜 그리 잘 어울리는지, 왜 예전엔 이렇게 제목을 짓지 못했을까, 아쉬웠다. 그랬다면 좀더 많은 독자들이 책을 찾아 읽었을 터인데. 어쨌거나 개정판이든 뭐든 애정하는 작가의 새 책이 나오면 무조건 좋아할 일이니 나는 좋구나! 

희한한 것은 『향연』을 적어도 세 번은 읽은 것 같은데 이번에 읽다 보니 새로운 글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새 옷을 입어 그런 건지, 그때의 상황과는 또 다른 상황이어서 그런 건지. 책이란 읽을 때마다, 그때의 감정과 주변에 따라 느끼는 것들이 달라지기도 하니까. 좋다.

 

 

 

인생은 요리와 비슷하다. 한 가지라도 빠지면 맛이 안 난다. 신체와도 같다. 오장육부 수백 개 뼈마디가 다 괜찮다 하더라도 이빨 하나 썩거나 발톱 갈라지면 통증 때문에 잠을 못 잔다. 국가를 하나의 생명체로 본다면 아침에 우는 사람들의 존재가 왜 중요할 수밖에 없는지 이해된다. 중심과 권력과 도시의 고독한 자아 외에도 저 먼 곳의 거친 삶도 하나의 뚜렷한 형태로서 인정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해놓고 보니 문득 떠오른다. 사실 구구절절 떠드는 것보다 이게 가장 좋은 답이 될 것이다. 브레히트의 시(詩) 「책 읽는 어느 노동자의 질문」이다.

 

존 버거의 책을 읽어봐야겠다, 생각했다. 인스타에서 『킹』을 읽은 분의 글을 읽은 후였다. 『킹』이 나온 후부터 존 버거의 책을 읽을 테다, 맘을 계속 먹었는데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었던 터라 자극제가 된 거다.. 그러다가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며 존 버거 얘길 하다가 다른 책보다 『G』를 읽으라는 추천에 다른 책은 다 내려놓고『G』부터 읽어볼 생각이었다. 한데 내가 읽은 줄로만 알았던 『A가 X에게』도 안 읽었더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뭐지? 내가 왜 그 책을 아직도 안 읽은 거지? 설마, 말도 안 돼! 하며 오래 전에 쓴 리뷰를 다 뒤져보았지만, 정말 읽지 못했다. 하여, 『G』를 잠시 두고 『A가 X에게』를 먼저 읽어보기로 한 것.

 

 

 

이제 와 생각해 보면, <G>는 손으로 그린 지도들을 묶은 책처럼 보인다. 산이나 계곡, 강어귀를 표시한 지도가 아니라, 역사의 전환점들을 그린 지도, 그리고 인간의 몸, 여성성과 남성성을 표시한 지도 말이다. …어쩌면 이 책은 욕망의 대상이 되지만 아직 알려지지 않은 그 무엇 속으로 떠나는 여행의 기록일지도 모른다._존 버거의 한마디

 

 

 

줄리언 반스의 새 책이 나왔다. 『용감한 친구들』 새 책이 나온 줄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발견. 요즘 이 책 저 책 장바구니에 책 서너 권 채우면 5만원이 훌쩍 넘어서 한꺼번에 지르지도 못하고 찔끔찔끔이다. 일찍 사려는 마음을 최대한 억누르며 가급적이면 일주일에 한번만 사자고 나를 달래고 있는 중이다. 1권도 아니고 2권짜리라서 아마도 읽으려면 날을 잡아야 할 터. 소설가 한유주 작가가 번역을 했다니, 더욱 기대가 된다.

 

 

 

잘 짜여진 퍼즐처럼 정교하게 구성된 줄리언 반스의 문장들을 접하면서, 힘에 부치기도 했고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대부분의 문장들은 단서처럼 느껴졌고, 후에, 때로는 한참 뒤에 앞의 문장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문장이 나타나는 경우도 많았다. 같은 사건을 두고 아서와 조지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시선이 교차되면서 이러한 ‘차이’를 보게 되는 즐거움이 컸다. 한편 번역자이기 전에 한 사람의 독자로서, 역사 속에서 잊히거나 묻힌 인물이 생생히 되살아나 또 하나의 생을 보여주고 있는 모습에서 희열을 만끽할 수 있었다. 시대가 낳은 가장 근사한 인물이었던 아서 코난 도일과 부침이 많은 생을 살았으나 끝까지 어떤 고결함을 보여주었던 조지 에들지의 이 이야기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선물처럼 다가온다. 독자 여러분도 아서와 조지의 ‘모험’에 즐겁게 동참하시기를 바란다._한유주의 한마디

 

 

 

『수전 손택의 말』, 수전 손택의 새 책도 한참 뜸을 들였다. 동생의 밑줄을 보지 않았다면 아마 장바구니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한데 밑줄 열심히 그어놓은 걸 보고 구매를 했다. 동생의 추천은 간혹 나와 다르기도 하지만 89%는 동의하므로 나도 얼른 읽어보자 했다.

 

 

 

당신은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는 양상의 전부와 과거의 우리 모습 모두가 문학 덕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책들이 사라진다면 역사도 사라질 것이고, 인간 역시 사라질 것이라고요. 나는 당신의 말이 옳다고 확신합니다. 책들은 우리 꿈 그리고 우리 기억의 자의적인 총합에 불과한 게 아닙니다. 책들은 또한 우리에게 자기 초월의 모델을 제공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독서를 일종의 도피로 생각할 뿐입니다. ‘현실’의 일상적 세계에서 탈피해 상상의 세계, 책들의 세계로 도망가는 출구라고요. 책들은 단연 그 이상입니다. 온전히 인간이 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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