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그녀
부다데바 보스 지음, 김현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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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르를 이어 20세기 인도문학의 대표 작가로 불리는 부다데바 보스의 『내 인생의 그녀』를 읽었다. 줌파 라히리나 살만 루슈디 같은 인도계 작가들은 알지만, 부다데바 보스라는 인도 작가는 처음. 인도문학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읽은 책 중에 가장 재미있게, 기억나는 책이라곤  비카스 스와루프의 『슬럼독 밀리어네어』이며, 가장 최근에 읽은 작품은 『세 얼간이』라는 작품.

 

『내 인생의 그녀』에 호감이 간 이유는 인도문학이라는 점이었는데 그 이유는 인도계 작가들의 영향이 컸다는 생각. 줌파 라히리나 살만 루슈디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봤다면 당연히 인도라는 나라에 관심이 생겼을 수도 있고, 발리우드라고 불리는 인도 영화가 기억에 남았다면 아마 인도문학도 당연히 궁금했을 테니까. 그렇게 간만에 읽은 소설 『내 인생의 그녀』는 내 젊었던 날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하며 내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게 만든다. 이루어진 사랑이든 이루어지지 않았던 사랑이든, 잊고 살았거나 잊지 못하고 살아온 내 삶의 지난 날들을 반추하며 미소 짓게 하는 선물 같은 책.

 

"기억은 남겠죠. 결국엔 기억만 남는 겁니다. 다른 건 없어요."

"그런 기억은 얼마나 가치가 있는 걸까요?"

"전혀 없죠!" 델리 남자가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에 방해가 되고, 시간을 잡아먹고, 사람을 슬프게 할 뿐입니다. 자, 커피 한잔합시다."

그래도 건축가는 물러서지 않았다. "지나가버린 행복한 시절에 대한 기억은, 행복한 걸까요, 슬픈 걸까요?"

(…)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좋아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없어요. 그다음에 어떻게 되었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했다는 사실이 중요하죠. 어쩌면 기억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어떤 기억이냐에 따라……"

 

내 기준으로 '지나가버린 행복한 시절에 대한 기억은' 행복하다.

특히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한 기억조차도 아프거나 슬픈 일은 사라지고

행복하고 즐거웠던 기억들만 남는다.

어쩌면 그런 식으로 그 상처를 잊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결론적으론 행복하다는 것.

아무튼 그리하여 그들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 인생의 그녀"에 대해.

 

1.마칸랄의 슬픈 사연

 

_꿈에 그리던 여자, 마음속에 품고 있던 그 여자. 우리 모두 그런 존재가 있죠. 마칸랄은 그 여자를 딱 한 번 현실에서 만나보고 싶었던 겁니다. 그것만이 진실이죠. 중요한 것은 그뿐, 나머지는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어제 우연히 <마녀사냥>을 봤다. 그 프로그램에서 남자들은 열번 찍으면 여자들이 넘어온다고 했고 여자들은 아무리 찍어도 처음부터 아닌 사람은 아닌 거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5년 동안 찍다가(!) 결국 커플이 된 사람을 보고 여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또 게스트로 나왔던 임창정은 이렇게 말하더군. 안 넘어온 여자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고. 그렇지만 여자로서 나는 돈 많이 벌었다고, 혹은 유명 인사가 되었다고 그때 받아주지 않은 것을 후회하거나 그러지는 않을 것 같다. 나 같은 사람은 아닌 사람은 끝까지 (돈을 엄청 벌었다 하더라도) 아니니까. 물론 가끔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진 않겠다. 그렇다면 아무도 누군가에 대해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라는 결론?! (적고 보니 도대체 어느 쪽이라는지 모호하기만 하지만서도;;) 하지만 '마칸랄의 슬픈 사연'은 말 그대로 슬픈 사연이었다. 과정이 어찌되었던간에 말라티에게 마칸랄은 남자가 아니었던 것. 아무리 잘생기고 돈을 많이 벌어도 아닌 사람은 아니었던……(다시 생각하면 마칸랄이 소극적이었다는 점이 걸린다. 좀 더 적극적이었다면? 움움 그래도 아닌 것은 아니겠지만ㅋ 뭐래;;)

 

2. 가간 바란의 사연

 

_사랑이라고 하셨죠. 저도 한때 사랑을 꿈꾸었습니다. 아무리 힘들여 화학공식을 익혔대도 그것과는 별개로 익혀야 할 삶의 기본공식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다.

 

_저도 행복했습니다. 젊은 날의 저를, 어린 날의 저를 아는 분들. 그분들에게 살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요? 머지 않아 저는 나이가 든 저를 아는 사람, 그러니까 저보다 젊은 사람이나 기껏해야 저와 동년배들의 기억에만 남게 되겠죠,.

 

_가볍게 받아넘기려느데 파키가 손으로 제 어깨를 살짝 만지며 말했죠. "그러네요. 우리 가간 바란 오빠도 이제 흰머리가 나네."

대수롭지 않은 말이고, 대수롭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저는 그렇게 말하던 그녀의 모습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절대로요! 그 말에서, 가볍게 제 어깨를 스치던 그 손길에서, 파키가 여전히 저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으니까요. 아마도 제 평생 사랑이 무엇인지 순간적으로나마 깨달은 것은 바로 그때 한 번뿐이었을 겁니다.

 

내가 추구하는 사랑은 사랑한다면 사랑한다고 말을 해야 하는 사랑인데,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고 말을 안하고 평생 안고 가기도 하나보다. 그러면 후회만 남잖아. 가간 바란처럼, 다 늙어서야 깨닫게 되고 말이야. 파키의 입장이야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가간 바란이 조금만 더 적극적이었다면…… 그러고 보니 마칸랄도 그렇고 가간 바란도 그렇고, 남자들이 참 소극적이라는 생각이 드네.

 

3. 의사 아바니가 결혼한 사연

 

_눈앞에서 사람이 그렇게 울면 기분이 어떤지 상상이 되냐? 게다가 그 눈물이 나 때문아라면 말이야. 내가 진정시키려고 하면 할수록 그 친구는 더 서럽게 울어,.

 

아바니의 사연은 마지막으로 사연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말처럼 사랑이라기보다는 중매에 가까운 이야기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받아주지 않는다면 일찌감치 포기하는 건데, 그렇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때 다른 누군가가 적극적으로 다가온다면 아마 그쪽으로 넘어가겠지. 네 명의 이야기 중에 가장 코믹하고 평범한 (!) 이야기랄까. 다 자기 짝은 따로 있다는 말에 공감이 가는 스토리.

 

4. 작가의 독백

 

_바람에 어떤 물건, 혹은 사람의 냄새가 실려왔죠. 지금도 저는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그 무언가를,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어요.

 

_모나리자, 당신은 몰랐을 겁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모르겠죠.

(…) 밤이면 밤마다 열병에 맞서, 우리를 짓누르는 어둠 속에서, 서늘한 그늘 밑에서 우리가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얼마나 행복했는지를요. 한 달 하고도 보름 동안 당신은 누워 있었고, 한 달하고도 보름 동안 당신은 우리 차지였습니다.

 

한 여자 친구를 두고 여러 남자 친구가 좋아하는 일은 우리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그 여자 친구와 사귀지 못하지만 평생 마음 속에 두고 살며 그녀의 삶을 지켜보는 일. 사랑은 서로가 함께 걸어가기도 하지만 이렇게, 각자의 길을 가면서도 지킬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대가 변해도 '남의 사랑'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마녀사냥>이 인기가 좋은 것도 그래서일까?) 

위의 네 남자의 이야기도 그렇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디선가 많이 들었던 이야기 같은데

듣다 보니 그 속에 비슷한 내가, 친구가 들어 있다. 그래서 그 사랑이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그 사랑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역시 지나온 사랑. 아름다웠던 청춘의 기억인지라 담담할 뿐이다.

문득 이 글을 쓸 때 친구가 들어보라고 전해준 "옛사랑"이란 노래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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