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오랜만에 읽었다. 추리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책이면서 딱히 그렇지도 않기 때문. 무슨 소리냐고? 이건 그녀가 메리 웨스트매콧, 이라는 필명으로 쓴 작품들 중에 하나이고, 추리적 요소를 벗어난 심리서스펜스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심리서스펜스, 뭔가 거창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읽고 나서 난 애거서 크리스티를 존경하고 싶어졌다. 『봄에 나는 없었다』는 최근에 쓴 소설도 아니고 70여년 전에 나온 소설이다. 반세기도 전에 나온 소설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환경은 변했지만 사람의 심리는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주인공인 조앤의 심리는 마치 내 주변의 누군가, 를 모델로 한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닮아 있었다.

 

이야기는 바그다드에 사는 딸의 집에 다녀오던 중년의 여성 조앤이 집이 있는 영국 런던으로 돌아가던 도중 폭우로 인한 기차 지연으로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숙소에 머물게 되면서 시작된다. 그곳에서 오롯이 혼자가 된 그녀는 처음엔 휴식과 고요, 평화를 생각하지만 이내, 이곳에 오기 전에 우연히 만났던 오래 전 친구 블란치가 던진 말을 곱씹어보다가 잊고 지내던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린다.

 

남편 로드니가 시골에 가서 살자고 했던 일부터 아이들과의 관계에 관한 것까지 살아오면서 무심히 잊었던 기억들. 하지만 하나둘씩 끄집어내는 기억들 속에 나타나는 진실은 그동안 그녀가 부정하고 피해왔던 일들이었다.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상처만 깊어지는 조앤. 남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으로 자부심에 차 있던 그녀는 사실은 누구에게도(가장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이들에게마저) 사랑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혼자가 되지 않았다면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깨달음이었다.

 

이 책의 장점은 여기에 있다. 단순한 스토리로 보자면 그렇다. 하지만 애거서 크리스티가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조앤이라는, 때가 되어 결혼을 하고 돈벌이 잘하고 문제 일으키는 일 없는 남편 뒷바라지하며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는, 우리 주변에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중년의 주부 조앤을 통해 인간의 핵심을 꿰뚫어본다는 것이다.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나'를 보진 못했지만 이 책을 읽은 결혼한 주부의 대다수는 헉! 하며 일정부분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을 것이다.

 

며칠동안 숙소에 묶여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조앤은 결국 깨달음을 얻는다. 잘못 살았구나, 집에 돌아가면 이젠 변해야겠다. 다짐을 한다. 과연, 변했을까?

 

필명으로 쓴 소설이지만 애거서 크리스티다운 결론은 뒤통수를 치고도 남는다. 헉, 하는 소리와 함께 한동안 책을 덮지 못했다. 가엾은 조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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