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었다. 난 김영하 작가의 작품을 많이 읽지 않았다. 그동안 내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 취향이 아닌 작가의 작품은 안 읽어도 되는 권리가 독자에게 있다. 그런 것 좋다. 그럴 때 나는 독자, 라며 어깨에 힘도 주니까.

 

책은 처음 만날 때가 중요한 것 같다. 내 독서의 상황과 그날의 기분에 따라 내 맘으로 받아들이는 책의 호불호는 상당히 다르다. 아마 처음으로 김영하 작가의 책을 읽을 때는 내 마음이 그 책을 받아줄 상황이 아니었었나보다. 이상하게도 읽은 책 몇 권 안 되는데 매번 그랬으니까. 그런 내게 김영하 작가를 좋아하는 친구는 『빛의 제국』을 추천했다. 알았다고 하고선, 읽지 않았다. 이젠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일단 얇았다. 요즘은 읽는 속도가 책을 구입하는 속도를 반도 못 따라간다. 한꺼번에 많은 권수를 사는 것도 아니고 기껏 많아야 세 권이다. 물론 권수보다 중요한 것은 횟수이겠지만. 그러다 보니 두꺼운 책보다 얇은 책을 선호하며 먼저 읽는다. 이 책이 그랬다. 김영하 작가의 작품이지만 일단 얇았다. 제목도 나쁘지 않았다. 아멜리 노통을 좋아했던 적이 있어서 그녀의 책 제목과 조금 헷갈리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나를 끌었던 것은 표4(딋표지)의 문구였다.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이 문구를 본 순간, 이 책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무서운 게 '악'이 아니라 '시간'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이지?

 

저 문구에 관한 이해는 책을 다 읽은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맞다. 무서운 건 '악'이 아니었다. 바로 '시간'이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짧았다. 이게 김영하 스타일이었던가? 아닌 듯 느꼈다. 어쩌면 내가 김영하 작가의 작품을 많이 읽지 않았으므로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동안 읽었던 그의 작품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책을 펼친지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책을 덮었다. 한데 놀라운 것은 밑줄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뭘 이렇게 그어댔을까?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치매는 늙은 연쇄살인범에게 인생이 보내는 짓궂은 농담이다."

 

이 책은 한번 읽어서 이해가 안 된다. 다시 읽어보게 된다. 솔직히 처음 읽고 이게 뭐지? 던질 뻔 했다. 하지만 그런 나를 잡은 것은 권희철 평론가의 글이었다. 그 긴 평론은 모르겠고(읽으면 머리만 더 복잡해진다. 난 그냥 내 식대로 생각하련다), 마지막 문장이 내게 재독을 권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난 이번에도 김영하 읽기에 실패했을 것이다. 다시는 안 읽으려고 했을 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하니 좀 미안한 마음까지 든다. 그래서『살인자의 기억법』은 내게, 취향에 맞지 않는 작가의 책이라고 무조건 배제하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줬다. 어느 순간, 아니었던 취향이 내게 맞는 취향으로 돌아오기도 하다는 걸. 지금 그런 책을 한 권 더 읽고 있는 중이다. 선입견을 버리고. 선입견을 버리니 다른 책도 읽고 싶게 만든다. 움.. 역시! 이게 다 『살인자의 기억법』덕분이다. 그럼, 권희철 평론가의 마지막 문장,

 

"우리 가운데 누구도 이겨낼 수 없는, 인생이 던진 악마적 농담. 두 겹의 악몽 혹은 두 겹의 감옥으로 이루어진, 웃을 수 없는 농담의 공포. 그것이 『살인자의 기억법』이 우리에게 건네는 악의적인 선물이다."

 

이게 뭐? 정말? 이라고 되묻고 싶다면, 받아들이기 나름, 아니겠냐고 말하겠다.

역시 책은, 읽을 때, 그 순간의 취향 문제! 어쨌거나 작가 한 명 더 건졌으니(!) 나로선 승!

『빛의 제국』펼쳐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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