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5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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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리.타.

아침에 양말 한 짝만 신고 서 있을 때 키가 4피트 10인치인 그녀는 로, 그냥 로였다. 슬랙스 차림일 때는 롤라였다. 학교에서는 돌리. 서류상의 이름은 돌로레스. 그러나 내 품에 안길 때는 언제나 롤리타였다. 

 

첫 문장부터 확, 끌어당기는 소설. 따라하게 만드는 롤.리.타!!

 

오래 전에 민음사 판본의 <롤리타>를 읽었다. 책을 읽기 전에 제레미 아이언스가 나오던 영화를 먼저 봤더랬다. 그 영화를 보게 된 동기는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비슷한 류의 책을 읽고선 그 책과 함께 엮인 <롤리타> 라는 책에 대해 들었다. 고전은 책보다 영화로 먼저 보는 게, 책 읽기에 편하다는 생각이 들던 때라 아마도 영화가 있다는 걸 알고 영화를 먼저 봤을 것이다. 기억이 나는 것은, 영화를 보고 난 후였다. 분명 험버트가 이상한 놈 같은데, 영화를 다 보고나니 불쌍해 죽겠는거다. 그게 제레미 아이언스여서 인지, 아님 영화에만 그런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필코 책을 읽어야만 했다. 원작은 어떤지. 

 

책을 읽었다. 읽고 나서의 느낌은, 그때 쓴 리뷰를 보니 영화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 변태(!)스러운(그땐 그런 생각 밖에 안 들었다. 나보코프의 언어유희나 번역의 문제 같은 것은 몰랐다. 그저 스토리만 읽었으니까)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나보코프의 언어유희 같은 것을 모르면서도 왜, 이 책이 세계명작전집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는가를 알게 된 것이다. 그 깨달음에는 이전에 읽은 <롤리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스페인 작가의 소설 때문이었다. 문체부터 달랐다. 문장은 비교도 안 되었다. 명작과 삼류(!) 소설의 차이를 알았다고나 할까.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새로운 번역의 <롤리타>를 읽게 되었다.

 

우연히 <롤리타>가 문학동네로 넘어간 것을 알게 되었다. 첫 문장에서부터 오역을 잡아냈다는 얘길 들었다, 그동안 번역의 잘못에 대해선 관심이 별로 없었다. 오역이 주는 문장의 어색함을 모르진 않았지만 그냥 넘어가는 편이었다. 한데 우연히 번역본 비교를 본 후에 오역이 원작을 얼마나 훼손하는지를 알았다. 그제야, 번역의 중요성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롤리타>는 곧 나올 거라 했다. 이미 읽은 책이었지만 궁금해졌다. 어떻게 달라졌을지, 과연 그 많은 오역을, 더구나 '언어유희' 한다는 나보코프, 번역이 그렇게 어렵다는 나보코프의 글을 어떻게 번역해냈을지 기대가 되었다. 나온다, 나온다, 하면서도 계속 미루다가 드디어 예판에 들어갔다는데, 그때는 다시 표지 이미지 때문에 독자들의 원성(!)이 있었다. 그리고 예판 들어가서 공모전까지 열더니 마침내 새 번역으로 새 옷을 입고 나왔다. 롤.리.타.


첫 문장부터 달랐다. 그리고 자신있게 내보이는 문장들과 번역한 김진준 선생님의 말도 감동적이었다. 다시 읽은 <롤리타>는 예전에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몰입의 강도가 장난 아니었다. 주말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읽게 만들었다. 이 역시 매끄러운 번역 덕분이겠지. 더구나 예전엔 몰랐던 나보코프의 '언어유희'들. 단어로 만들어내는 나보코프만의 장난스런 문장들이 너무 재미있었다. 


뒷부분 작가의 말에도 나보코프가 얘기했지만 최초의 독자들은 관능적인 장면이 이어지기를 기대하면서 페이지를 넘기다가 예상이 빗나가자 실망하고 따분해하다가 결국 독서를 중단하고 말았단다. 한데 세월이 흘렀다고 달라졌을까?(표지가 맘에 안 들어서 책을 안 읽겠다는 사람도 봤다. 헉;) 물론 <롤리타>를 기다렸던 많은 사람들은 험버트의 병적인 집착(!)보다는 나보코프의 언어에 대한 호기심과 번역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리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보코프의 우려처럼, 읽다가 지루하다고, 덮어버리고선 <롤리타>에 대해 되지도 않은 오해를 하면 손해라는 사실.


트위터를 보다가 이런 글을 읽었다.

"세대마다 문학의 고전은 새로 번역되어야 한다. 엊그제의 괴테 번역이나 도스토예프스키 번역은 오늘의 감수성을 전율시키지도 감동시키지도 못한다. 오늘에는 오늘의 젊은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오늘의 번역이 필요하다."_편집위원: 김우창, 유종호, 정명환, 안삼환


우리가 나보코프를, 롤리타를 다시 만나봐야 한다는 이유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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