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남들은 『데미안』이니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고 감동 받았다고 하는데 어이없지만 제게 헤르만 헤세는 '시'로 먼저 다가왔습니다. 어린 나이에 '시'에 대해 뭘 그리 잘 알았을까마는 어쨌든 헤세의 시를 읽은 순간, 제 마음 한구석에서 찌릿! 전기가 통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헤세는 제게 시인이지 소설가는 아니었어요. 한데 다들 헤세를 얘기할 때는 『데미안』이나 『수레바퀴 아래서』 혹은 『크눌프』를 말하니 안 읽을 수 없었죠.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인생의 변화는커녕 제대로 기억 나는 문장도 없고(물론 그 유명한 '새'와 '알'과 '신'과 '아프락사스'는 차치하고라도-.-) 언제 다시 읽고 아는 척을 할 수 있을까, 했는데 이렇게 딱! 만나게 된 두 권의 책입니다(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짱, 이에요^^).

 

『데미안』, 김연수 작가는 이 책을 두고 '지진과도 같은 책'이었으며 이 책으로 인해 '오늘의 나'에 이르렀다고 하더군요. 『데미안』을 읽고 김연수 작가처럼 자신의 존재를 흔들만큼 감동을 받은 독자들이 많을 거예요. 저는 비록 그런 경험을 못해 아쉬웠지만 지금이라도 경험을...하면 안 되..려나요?^^;; 이 나이에 새가 알에서 깨어나는지,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 투쟁을 하는지, 그건 알아서 뭐 하겠습니까마는 "누구나 한번쯤 '데미안'을 만나고 누구나 한번쯤 '데미안'이 된다" 라고 하는데 제가 못 하면 조카에게라도 선물하여 '한번쯤 데미안'이 되어 보라고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얼른 읽고 십대의 조카들에게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책을 펼치니 바로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있었어요. "나는 오로지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에 따라 살아가려 했을 뿐. 그것이 어째서 그리도 어려웠을까?" 아, 어째서 어릴 때는 이런 문장에 혹, 하지 못했을까요? 그리고 이 문장 바로 밑에 나오는 본문 첫 문장에서부터 저는 『데미안』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내 이야기를 하려면 훨씬 앞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훨씬 더 멀리로 되돌아가야 한다. 내 어린 시절의 맨 처음 몇 해, 아니 그보다 더 멀리 나의 조상들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첫 문장이 주는 감동은 그 책을 읽게 하는 가장 큰 요소가 됩니다. 이런 식의 첫 문장이라면 안 읽고 넘어갈 수 없게 만드는 거죠. 한데 어릴 때의 저는 그걸 몰랐습니다. 책이 내 맘에 들어올 때가 있는 법이라면, 그래서 우리의 인연이 어쩌고저쩌고 따진다면  『데미안』은 이제서야 저와 만날 운명이었던 거죠. 다음 페이지를 넘기니 온통 밑줄 그을 문장입니다. 그 중에서 제 맘을 흔든 문장은 아래와 같습니다.

 

모든 사람의 삶은 제작기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길의 시도이며 좁은 오솔길을 가리켜 보여주는 일이다. 그 누구도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이 없건만,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애쓴다.(…) 우리는 모두 같은 심연에서 나왔다. 하지만 깊은 심연에서 밖으로 내던져진 하나의 시도인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누구나 오직 자기 자신만을 해설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어서 데미안과 에밀 싱클레어의 청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헤세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합니다. 헤세는 이 소설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죠. "이 책에는 내가 실제로 경험하고 괴로워했던 삶의 한 조각이 담겨 있다." 부끄럽지만 이 책은 읽어보질 못했어요. 헤세를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말이죠(그렇게 치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 중에 읽지 않은 책이 얼마나 많은지 말도 못 꺼내겠지만). 내용은 이렇답니다. '총명하고 기품있는 한 소년이 어른들의 비뚤어진 기대, 권위적이고 위선적인 기성사회와 규격화된 인물을 길러내는 교육제도에 희생되어 결국 순수한 본성을 잃어버리고 삶의 수레바퀴 아래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는 이야기' 

 

『데미안』이 김연수 작가의 삶을 흔든 작품이라면 로쟈 이현우 님에게는 『수레바퀴 아래서』가 그런 작품이었답니다. 한스 기벤라트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 역시 수레바퀴 아래 깔려 있다는 걸 알고 한스 기벤라트와 함께 신음했다고 하니까, 말이죠.

 

책을 펼쳐 넘기니 이런 문장이 제 눈에 들어옵니다.

 

이상한 일이었다. 모든 것이 아름답고 가슴 설레게 변했다. 과일 찌꺼기를 먹고 통통해진 참새들이 시끄럽게 재잘거리면서 하늘을 날아다녔다. 하늘이 그토록 높고 아름다우며 그리움에 사무치도록 파란 적이 없었다. 강의 수면이 그토록 깨끗하고 청록색으로 밝게 빛났던 적도 없었으며, 방죽에서 물이 그토록 눈부시게 하얀 거품을 내면서 쏴쏴 흐른 적도 없었다. 모든 것이 멋진 그림처럼 새로 채색되어, 맑고 산뜻한 유리창 뒤에 있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큰 축제가 시작되길 기다리는 것 같았다.

 

오늘 내일은 아마도 헤세의 데미안과 싱클레어, 기벤라트와 하일너에게 빠져 지낼 것 같습니다. 이 소년들이 들려주는 성장 이야기에 푹 빠져 내 어린 시절, 내가 겪은 십대의 기억들을 끄집어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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