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소설의 영화화가 많아졌다. 베스트셀러가 아니어도 영상으로 옮겨 문제가 없어 보이는 소설들은 제법 빠른 시간에 영화화된다. 번역서의 경우는 영화 개봉에 맞춰 소설이 출간되기도 한다. 소설로 접한 이야기를 영상으로 맛보는 기분은 텍스트로 접할 때와 또 다른 감동을 준다. 그게 이미지와 텍스트의 차이점일 것이다.

예전엔 그랬다. 소설이 원작인 영화는 늘 영화보다 못한 느낌이었다. 영상미는 좋았으나 스토리의 감동은 소설의 절반이었다. 그건 아마도 두 시간 남짓 주어진 시간 안에 소설 속의 감정과 스토리를 다 보여줘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시간이 갈수록 원작이 있는 영화는 점점 더 많아지고, 많아지는 만큼 그 감동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감동적인 영화가 소설로 재탄생되는 경우는 없을까? 있다! 소설이 영화가 되기도 하는데 영화라고 소설로 다시 만들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을 테니까.

 

소개할 책은 빌리 엘리어트이다.

2000년에 개봉된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소설판이다.

이 책은 리 홀이라는 작가의 각본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84~85년 잉글랜드 북동부 더램 주의 아싱턴(작품 중 에버링턴)이다. 이곳은 이 일대에서 가장 큰 탄광지대였다. 그 시대는 2기 집권에 성공한 보수당의 마가렛 대처 수상이 산업 합리화를 구실로 20곳의 탄광 폐쇄와 2만 명의 인력 감축을 골자로 한 구조조정을 강행하고 이에 맞서 19843월 탄광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때였다.

하지만 강성 노조 지도자 아서 스카길의 주도로 20만 명의 노동자가 1년이 넘게 끌어온 장기간의 파업은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눈 하나 깜박하지 않은 대처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그 과정을 지켜본 한 청년의 가슴에 분노가 생기면서 [빌리 엘리어트]는 싹을 키우게 되고 영화의 배경이 된 것이다. 각본을 쓴 리 홀의 말,

 

당시 파업의 실패에 있어 결정적 역할을 한 광부 공동체 내의 다양한 알력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당시 상황을 쓰고자 했습니다. 이것은 소수의 민중들에게 국가가 공권력을 동원한 계급 전쟁이었죠. 이는 어린 시절 나에게 지우기 힘든 분노심을 남겼고, 이후 나의 많은 작품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하게 된 [빌리 엘리어트]는 그 탄광촌을 배경으로 한 소년이 주위의 편견을 이겨내고 발레리노라는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았다.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전해주었고 전 세계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그해 영국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그 후 몇 년 뒤 뮤지컬로도 탄생한 [빌리 엘리어트]는 영국의 청소년 문단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카네기 메달을 수상한 경력을 가진 멜빈 버지스에 의해 소설로 재탄생한다. 본격 문학의 관록을 쌓아온 그는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서 드러내길 꺼리는 금기시된 소재를 문학적 테마로 삼는 탓에 격찬과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문제 작가로 알려져 있단다. 이 정도의 문학 경력자라면 소설로 탄생한 빌리 엘리어트를 읽어볼 만하지 않을까?

 

소설 빌리 엘리어트의 전반적인 내용은 영화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스크린에 공백으로 남아 있던 부분을 섬세한 필치로 채우고 카메라 앵글이 놓친 부분을 날카로운 감각으로 포착했단다. 또 장마다 서로 다른 를 내세워 다중 일인칭 소설로 재구성했다. 인칭이 모두 인 만큼 객관적인 사건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는 한편 화자들이 여럿이므로 한 사건에 대한 여러 시각들을 제공했단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소설로 재탄생 시켰음에도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영화보다 책을 먼저 접한 나로서는 정말, 영화가 먼저란 말이야?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아직도 영화를 접하지 않았다면 책을 먼저 보길 권한다. 그런 후에 영화를 보면 그 감동을 두 배로 받을 것 같다. 영화와 책에서 동시에 만족하기란 사실 쉽지 않은데 이 책 빌리 엘리어트는 달랐다.

 

빌리 엘리어트를 읽은 후에 영화가 소설로 재탄생한 작품이 뭐가 있을까, 살펴봤다. 우리나라 영화나 드라마는 책으로 나온 것이 많았다. 최근작으로 [레테의 연가]이후 24년 만에 영화에 출연해 화제가 되었던 윤석화의 [, ]이라는 영화가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 이라는 같은 제목으로 책으로 출간되었다. 또 김형경 작가의 외출은 허진호 감독의 [외출]과 닮은 스토리로 서로 다른 매체로 동시에 진행을 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 외에 드라마 소설이라고 해서 인기를 얻은 드라마가 소설로 재탄생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찾아보니 무라카미 류의 래플스 호텔이 나온다. 이 작품은 영화를 거의 완성한 단계에서 소설화 작업을 했다고 한다. 무라카미 류, 정도의 작가라면 소설로도 꽤 인기를 누리지 않았을까, 싶다. 읽어보진 않았는데 궁금해진다.

 

하지만 역시 영화 [빌리 엘리어트] 만큼 감동적인 영화가 소설로 된 책을 말하자면 [죽은 시인의 사회]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의 감동은 말로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동안 카르페 디엠이라는 단어를 유행시킬 정도로 유명했으니까. 책으로 출간된 죽은 시인의 사회를 읽어보질 못했으니 영화만큼 감동적이다, 단언할 순 없지만 올라온 리뷰를 보니 책으로도 괜찮은 것 같다. 기회가 되면 영화의 감동을 책에서도 느껴보고 싶다.

 

책과 영화에 대해 친구랑 대화를 나누다가 친구가 말했다.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보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책을 많이 안 읽어. 근데 그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감동받은 작품을 책으로 만난다면 분명 읽어보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렇게라도 책을 읽게 되니 다행이지 않겠어?“ 듣고 보니 맞는 소리 같다. 영화의 감동을 책에서도!!

 

어찌 되었든, 좋은 영화가 다시 좋은 소설로 재탄생하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빌리 엘리어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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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망 2012-07-24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빌리 엘리엇
영화본 후 책으로 본 몇 안되는 경험..
대부분 책의 감동이 영화에선 안사는데..
이 두개는 영화의 감동이 책까지 이어진 경우였거든요.
새로 개정되어 나오나보군요..
다시 읽어 봐야겠다...

readersu 2012-07-25 13:37   좋아요 0 | URL
읽어보신 적이 있군요! 역시..
이번 개정판도 읽어보셔요. 여전히 감동은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