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다 - 매물도, 섬놀이
최화성 지음 / 북노마드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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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큰 파도가 올 때가 있거든.

반씩 물러났던 파도가 모이고 모여서.

여덟, 아홉 번 정도 작은 파도가 온 뒤에는 반드시 큰 거 한 방이 와.

우리 인생처럼……"

 

독특한 여행에세이를 읽었다. 이런 책이 나온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지만

여행에세이가 다 그기서 그기지, 뭐 별다르겠어, 했더랬다.

어제 책을 받고 몇 쪽을 읽다가 일이고 뭐고 냅두고

그들과 매물도, 섬놀이에 동참하고 싶었더랬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니 참을 수밖에.

집으로 가는 만원 버스 안에서 자리도 못 잡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와중에 책을 꺼냈다.

그러고선 읽다가 낄낄거리기를 몇 번.

순간, 이 책, 이거 뭐야? 여행에세이라며? 근데 왜 이케 웃기는 거지??

 

할아버지의 고함 소리에 머쓱한 할머니가 우리를 달래듯 말했다. 당연히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물건을 살 수 있는 구판장에도 담배는 팔지 않았다.

"요즘은 담배 피면 죄인이여. 국가에서 담배를 팔면서 이러는 게 너무 웃기지 않아?"

미스터 한이 심드렁하게 한마디 하자,

"담배로 잃은 건강, 홍삼으로 대처하자! 전매청 슬로건이야."

훤규 형이 한마디 하고 오랜만에 남준씨가 끼어들었다.

"담배는 2천 여 가지를 첨가해서 중독성을 갖게 만들어봐. 한 번 배우면 못 끊고 피지 않으면 안 되게. 대마초는 중독이 없으니까 못 피게 해. 자본주의 세계의 사악함이지."

"모든 식물은 특성이 있잖아. 독초도 그 독이 약으로 쓰이기도 하고, 왜 담배초가 혼자 모든 죄를 뒤집어 쓴 풀이어야 돼? 얘는 얘대로 하나의 풀인데, 그렇게 만들어놓은 거지."(미스터 한)

"따로 나라를 하나 만들든지 해야지."(원규 형)

"섬을 하나 사라니까."(남준씨)

"내 돈으로 살 수 있는 섬은 들물에 사라지는 섬 정도밖에 없어. 하하."(미스터 한)

"별을 찾아 옮겨가는 것도 좋아."(원규 형)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주인 할아버지는 마침내 기가 막힌 듯 웃음을 터트리셨다.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그러면서도 장난스럽게, 그 경계를 넘어들며 이야기를 하는 그들을 어찌 미워할 수 있겠는가, 이때를 놓칠 새라 원규 형은 구판장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를 어떻게 만나게 됐냐고 물었다.

 

그랬다. 여행에세이라고 하면 늘 감성적이거나

여행을 떠나 치유된 자신의 마음을 되돌아보는 글들만 읽다가

던지는 말마다 웃음을 유발하고 들려주는 이야기마다 낄낄거리게 만드는 이 책은

그동안 보았던 여행에세이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세 남자(시인 둘과 소설가)의 대화가 심상찮더니 갈수록 태산이다.

그래서 다시 앞으로 와서(저자의 말을 대충 슬쩍 넘기고 왔더니 이렇게 다시 돌아간다)

유심히 봤다. 너 여행에세이 맞아? 물으니 저자는 이렇게 답을 한다.

 

"우리는 매물도 여행에사 몇 가지 약속을 했다. 우선 육지와 바다를 전부 품고 있는 매물도의 특성을 활용해 여행 기간동안 먹을거리를 직접 해결하기로 했다. 봄을 맞은 섬의 자연에서 우리가 손수 캐거나 낚은 먹을거리들은 세 남자의 이야기가 담긴 소박한 요리로 변모했다. 그렇다고 우리의 섬 여행이 '원시야생수렵채취'로만 끝난 것은 아니다. 낮에는 200년의 시간이 흐르는 매물도의 자연을 탐닉하며 먹잇감과 놀이감을 찾아내며 주민들과 사귀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매물도의 인문학과 만났던 귀한 시간이었다. 여기에 시인의 반짝이는 시심, 소설가의 위트, 그들의 범상치 않은 삶의 이야기들이 골고루 비벼졌다. 밤이면 탄력 받은 이야기들이 술 한 잔을 연료삼아 지리산, 거문도, 몽골, 바이칼, 네델란드까지 내달렸다."

 

그러니까, 이 책은 표지의 제목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다》 위에

작은 글씨로 쓰여진 것처럼 '매물도, 섬놀이'였다.

놀이, 한마디로 '땡기는 대로 놀아보자'는 그들의 결의(!)가 담긴 책이다.

 

매물도라는 섬을 배경으로 이들이 들려주는 많은 이야기들은

'위트'와 '웃음' 이라는 에너지를 싣고

독자에세 배달된다. 그들은 여행 가서 어떻게 노는 것이

진짜, 완벽하게 노는 건지를 아주 제대로 보여주었다.

그래서 책을 잡으면 놓을 수가 없다.

마치 그들과 같이 떠난 듯한 느낌이 드는 건 몰입을 해서이기도 하지만

툭툭 내던지는 대화에 연신 낄낄거리며 웃다 보면

그들과 같이 걸으며 혹은 그들 앞에 앉아 같이 수다를 나누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럼 그들은 누구?

 

거문도에 사는 소설가, 바다 사나이라 불리고 시종일관 위트가 샘솟고,

바라만 봐도 남성다움이 느껴지며 숨겨진 다정함은 치명적이라고 하는 한창훈 소설가,

 

지리산에 살고 있는 시인이며 새의 지저귐만 듣고도 새의 이름과 현재 심경을 알아맞히며

춤을 아이처럼 즐겁게, 그러나 멋스럽지 않게 추지만 가수처럼 노래를 잘 부른다는 시인 박남준,

 

역시 지리산에 살며 '낙장불입 시인'으로 알려진 벼룩 서 말보다 모으기 힘들다는 작가 세 놈을 모은 위대한 인맥이 재산이며 동네 주민들과 염소만 아는 좁다란 '토끼길' 찾기 선수이며 혼자 텐트리고 야영하기 좋은 장소 찾는데 귀신이라는 시인 이원규,

 

그리고 이들과 함께 3박 4일 동안 행복한 여행을 한 저자,

세 남자에 비해 여행자로서의 특기가 전혀 없는 '도시녀'라는 최화성이다.

 

"뭔 짓을 하러 가라는 겨?"

출발 직전까지도 무엇을 하러 가는지 알지 못했던 즉흥여행이었지만, 바위 절벽에 형성된 마을은

오직 마음을 다해 두 발로 걸어야만 만날 수 있었다. 우리의 매물도 이야기는 한 권의 특별한

'섬마을여행인문서'로 남기에 충분했다."

 

이들은 3박 4일 동안, 진짜 발 가는 대로, 마음 가는대로 논다(!).

산놀이 하러 산에 가서 나물을 캐어 비빔밥을 만들어 먹고

바다 갯놀이 가서는 고기를 낚고 갯것을 잡아 안주를 만든다.

데코 박의 비빔밥과 미스터 한의 회 뜨는 교실,

회 맛있게 먹는 법은 고스란히 레시피로 기록되기도 한다.

산에 갈 때면 들판에 늘린 꽃과 나무들에 대해 박남준 시인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바다에서는 눈빛부터 달라지는 한창훈 작가가 섬과 바다의 사연들을 들려준다.

그리고 매물도 깊은 밤, 추억을 꺼내어 이 밤의 끝이 어디메뇨, 달리며 나누는 수다는 정겹다.

 

기존의 여행에세이와는 전혀 다른 맛이 난다.

'위트'와 '웃음'으로 무장한 세 남자의 추억이 가득 들어 있기 때문이다.

올 여름 휴가에는 섬에 가든 안 가든

반드시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다》를 필독서를 하고 갈 일이다.

모름지기 여행은 즐거워야 하니까. 다녀와서도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야 하니까.

그러려면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이 책이 확실하게 가르쳐주니까^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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