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부터 김두식 교수의 욕망해도 괜찮아를 읽기 시작했다. 마침 읽고 있던 알랭 드 보통의 사랑의 기초_한 남자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었고 원래 문어발 독서를 좋아하는지라 그 책은 출퇴근용이니 잠자리에선 다른 책을 읽어야 한다는 나름의 규칙으로 인해서였다. 책을 곁에 둔지는 며칠 되었다. 읽어본 친구들이 다들, 넘 재밌다고(!) 평을 남겨 빨리 읽어야지, 하고 있었음에도 미루고 있던 책이었으므로 졸음을 참으며 3장까지 읽었다. 재미있는 것은 3장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문득 떠오르던 책이 있었으니 그 책이 바로 알랭 드 보통의 사랑의 기초_한 남자였다. 한데 그 책을 떠올리자 몇 주 전부터 읽은 책들이 우수수 기다렸다는 듯이 머릿속으로 떨어졌는데 하! 이런 우연이 있나?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러고선 빨리 아침이 되길 기다렸다. 글쓰기가 본업이 아닌지라 매번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으로 나름의 글쓰기 욕망을 표출하고 있던 바였으므로 어쩌다 발견한 이 '우연의 연속'에 대해 신이 나서 혼자라도 떠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에 공감의 반응을 보여준다면 일이 아닌, 나 좋아서 하는 일에 더 할 수 없이 고마움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시작은 이렇다. 몇 년을 도서관 근처에 살면서도 대출증을 만들 생각도 안 하다가 필요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대출증을 만들고 책을 빌리게 되었다. 도서관을 이용해본 분이시라면 다 읽은 책을 갖다 주고 그냥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설령 읽지 않은 책이 집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해도, 읽지도 못하고 다시 반납할지언정 한 권이라도 챙겨서 나와야 한다는 사실. 그날도 그랬다. 대출증을 만든 일은 끝났고 굳이 책을 빌릴 이유가 없었음에도 뭔가를 들고 나가야 한다는 괜한 의무감이 들었다. 뭘 빌리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읽었으나 기억이 안 나는 궁금한 책을 빌리기로 했다. 마침 트윗으로 아니 에르노의 책에 관해 조잘대는 친구들의 멘션을 본 터라, 맞아, 아니 에르노의 책은 얇았지. 구입을 하기엔 좀 아까우니 빌려보자, 라는 단순한 생각에(물론 얇아서 빌린 것. 도서관에서 두꺼운 책은 필요와 궁금에 의하지 않으면 도저히 빌리기가 힘들다. 나는;;) 아니 에르노의 책을 빌렸더랬다. 단순한 열정탐닉, 한데 뭣도 모르고 빌린 두 권의 책이 우연하게도 서로 연관이 있던 책이라 너무 재밌게 읽었고 그 책들을 읽다 보니 다시 궁금해진 필립 빌랭의 포옹까지 읽게 되었다. 세 권의 책을 읽은 느낌은 한마디로 그랬다. “아아, 인간의 참을 수 없는 욕망이라니!!”

 

아니 에르노의 책을 다 읽을 무렵 알랭 드 보통의 사랑의 기초_한 남자를 읽기 시작했다. 남자 입장에서 결혼의 상태를 분석했다. 알랭 드 보통의 분석적인 문체가 너무 마음에 들어 아주 책속으로 들어가면서 읽고 있던 중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에 관해 대부분의 남자들이 인식하는 내용을 죽 설명한 뒤 이어지는 주인공 벤의 외도였다. 출장길에 있었던 안면 있는 젊은 여자와의 하룻밤. 그날의 상황에 대해 알랭 드 보통은 이렇게 말한다. (이건 뒤에 말하겠지만, 김두식 교수가 말하는 중년 남성의 내면에 남아 있는 소년의 탄생(!)하고도 비슷하다)

 

자정 무렵, 그들은 손님이라곤 두 사람뿐인 바에서 와인을 마셨다. 추파를 던지는 그의 방식은 정확하고 간결했다. 웃고 칭찬해주고 희롱했다. 결혼한 중년 남자가 젊고 아름다운 여자를 유혹할 때 보이는 대범함을 자신감과 혼동해선 안 된다. 그것은 다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생이 끝없이 넓게 펼쳐져 있을 것만 같았던 때에는 자의식을 느끼며 수줍어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이제껏 감히 시도해본적 없는 과감함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 벤은 이제껏 감히 시도해본적 없는 과감함을 드러낸 걸까. 물론 결론은 단 하나이다. 단지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의 섹스를 위해서. 그땐 그동안 숨어 있던 소년의 모습으로 자신감이 솟아난 것?!(움 내가 중년 남성은 아니니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정황상 그런 것 같다)

 

아무튼 그러다 지난 주 여행을 가면서 어떤 책을 들고 갈까 고민하다가 단지 얇다는 이유로 모니카 마론의 슬픈 짐승을 들고 갔다. 돌아오는 길에 읽기 시작하고 연휴 마지막에 책을 덮었다. 제목처럼 슬픈이야기가 내 맘을 울렸더랬다. 읽으면서 내내 아니 에르노가 생각났음은 물론이다(도대체 무슨 얘길 하려고 이러는 걸까,^^;;). 그리고 어젯밤 김두식 교수의 욕망해도 괜찮아를 읽었다. 이쯤에서 언급한 책들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이 책들의 공통점을 알 것이다(알랭 드 보통이나 김두식 교수의 책에선 일부분이지만). 하고자 하는 이야긴 이 부분이다. 미약하나마 대체로 공감을 하며 아, 명쾌하다! 라는 생각을 들게 한 김두식 교수의 말,

 

중년 남성의 내면에 남아 있는 소년은 지랄총량의 법칙으로 알려진 지랄이기도 하고, ‘에너지이기도 하며, ‘청춘이기도 하고, 프로이트(S. Freud)가 말하는 이드’(id)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 즉 욕망의 영역에 속한 힘이죠.”

 

그렇다. 어쩌다 그동안 읽은 책들에 죄다 중년 남성이 나온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유부남이며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그들, 중년 남성들은 지랄인지 에너지인지 혹은 청춘인지 모를 에 빠져든다. 아마 소년의 마음이 강하겠지. 사랑의 기초_한 남자에서는 출장에서의 한번 가진 외도일 뿐이지만 욕망해도 괜찮아사랑에 빠진 아저씨들을 보면 죄다 진심처럼 보인다. 정신적인 것보다는 육체적인 욕망에 관한 한. 아니 에르노의 남자는 거의 일치하고 모니카 마론의 작품 속 남자는 조금은 예외일 수도 있겠다. 그러니 욕망해도 괜찮아의 부분을 읽으면서 혼자 그동안 읽은 책들을 떠올리며 신기해하고 우연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혼자 낄낄거린 것이다(, 뭐야,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김두식 교수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워낙 소설이나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이름은 익히 들었음에도 읽으려 하지 않았던 분야였기에 이번 독서는 제목 때문에라도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게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 나도 욕망이 궁금한 인간이므로. 하여 읽기 시작한 욕망해도 괜찮아는 들어가는 부분부터 굉장히 공감을 했다. 특히 이번 글을 통해 멘토가 아니라 여전히 자라는 과정에 있는 40대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우리 안에서 정리되지 않은 채 불타고 있는 소년 소녀의 열정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그 열정과 욕망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싶습니다.“라는 말. 내 나이는 서른을 넘기면서부터 먹지 않고 있지만 그런 나를 보며 아직도 소녀라는 둥, 철이 없다는 둥 하여도 그건 당연한 말이라고 넘기는 나로서는 정리되지 않은 채 불타고 있는 소녀의 열정을 나눠보고 싶다고 하시니 하, 이런! 교수님, 정말 반갑습니다. 라고나 할까.

 

그가 말하는 우리나라에서 남자로 태어나 남자어른으로 살아가는 일에 대해 읽으면서 대체로 공감을 했다. 그건 알랭 드 보통의 책에서 그가 말하는 벤의 아빠, 남편, 아들, 한 남자로서의 상황과 거의 비슷했으므로. 어쩌면 그들의 말에 슬쩍 세뇌(!)라면 세뇌당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아래는 김두식 교수의 글, 아아, 글쿠나! 중년 남성들의 욕망을 이해하겠어. 그래그래^^; 

 

“10대 중반부터 20대 후반까지 소년은 남성의 내면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춥니다. 조물주의 설계에 따르자면 바로 그 즈음에 가장 자연스럽게 분출되어야 하는 에너지입니다. 이몽룡과 성춘향이 그랬던 것처럼 주로는 섹스를 통해서 말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습니다. 욕망을 찍어누른 사람만이 성공이란 달콤한 열매를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섹스를 통해 분출되어야 할 에너지는 엉뚱하게도 도서관, 고시원, 영어학원에서 대부분 소비됩니다. 그런 에너지 소비가 건강한것으로 권장되기도 합니다.

남녀 불문하고 다들 비슷한 형편이라 어차피 연애할 상대방도 시간도 공간도 찾기 어렵습니다. 취직, 고시, 유학 준비에 몰두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과정에서 젊은이들은 더욱 에 속한 인간으로 변해갑니다. 그런 극심한 경쟁을 거쳐서 겨우 결혼할 여유를 갖게 되었을 때, 상대방을 고르는 기준도 보다는 에 속한 것들입니다. 어떤 집안 출신인지,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 직장은 어디인지, 얼마나 장래성이 있는지, 건강한지, 품성이 안정적인지 등등을 빼놓은 배우자 선택이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에 속한 청년들은 이 모든 것에 외모를 더하여, ‘다른 사람들이 볼 때 괜찮은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합니다. 한눈에 반했다거나, 불꽃같은 연애를 했다는 사람들도 이런 기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강한 끌림, 성적 매력 같은 것을 배우자 선택의 기준으로 삼으면 덜떨어진 사람으로 취급받기 십상입니다. 연애와 결혼은 구분된다는 가치관도 결국은 에 대한 의 영원한 승리를 의미할 뿐입니다.()

그런 소년이 어느날 소녀를 만납니다. 일 때문에 우연히 만난 여성이 덥석 소년의 손을 잡는 순간, 평생 의 세계에서 살아온 이 규범남은 거짓말처럼 우르르 무너집니다. 그리고 일순간 의 세계로 몸을 던집니다. 좋게 보면 순수하고, 나쁘게 보면 한없이 유치한 사랑놀이가 시작됩니다. 상대방과 나 사이의 자아경계가 무너지는 상태를 뒤늦게 경험합니다. 10대 소년들이 느끼는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퇴행도 경험합니다. 그녀 앞에 서면 어린 아이가 됩니다. 남이 유치해서 쓰러질 편지를 쓰고, 낯 뜨거운 애칭을 부르며 서로를 갈망합니다. 상대방을 위해서는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 사랑의 결과 많은 것을 잃기도 합니다.

대체로 이들이 갈구하는 것은 육체적인 사랑입니다. 문자 그대로 입니다.“ _욕망해도 괜찮아

 

첫 장부터 거의 200%(특히 난 솔로이고 나이를 먹었고 지분거림을 당했던 신정아의 심정도 이해가 가고, 한겨레 김선주 선생이 쓰셨다는 칼럼 중 다부지고 단호하게 자르면 혹은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면 어떤 사회지도층 인사도 더 이상 지분거리지 않는다.”라는 말에도 지극히) 공감하면서(물론 그럼에도 말기(!) 못 알아듣는 중년 남자들 많지만) 더불어 사랑의 기초_한 남자의 벤이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중년 남성의 인생, 사랑, 욕망까지도 그래그래, 얼마나 힘드냐. 남자로서 아버지로서 아들로서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자신의 욕망을 감추고 살아간다는 것이, 라며 넓은 마음으로 끄덕끄덕(물론 이 모든 공감과 이해는 평범한(!) 중년 남성들에 대한 것일 뿐. 아니 어쩌면 알랭 드 보통과 김두식 교수의 이야기에 괜히 솔깃한 것일지도-.-;;;). 했다. 

 

《욕망해도 괜찮아》와 사랑의 기초_한 남자》는 남자의 입장에서 풀어놓은 남자들의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공감을 하는 이유는 내 동생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결혼을 하고 아내의 입장이었다면 이해가 좀 덜 되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맨 처음 떠오르는 인물은 바로 동생이었던 것. 동생도 매한가지이지 않을까, 싶은. 살짝 동정심이 가고 또 안쓰럽기도 하면서. 김두식 교수의 글보다는 아래 알랭 드 보통의 글을 읽으면서 말이다.

   

지하철 안에서 그는 남은 저녁시간을 근사하게 보내는 공상에 잠겼다. 커다란 백조 등에 올라타면 새는 날개를 퍼덕여 하늘을 날아 새하얀 솜털로 채워진 방에 사뿐히 그를 내려놓는다. 그는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않아도 되고, 혼자 가만히 있을 수 있다. 그러면 낮 동안 제쳐두었거나 제대로 정리할 수 없었던 생각들이 스스로 꼴을 갖춰나갈 것이다. 재스민이나 라벤더향이 풍겨도 좋겠다. 모든 것이 더없이 부드럽고 순결하다. 종이 한 묶음을 옆에 놓고 고민거리들을 끼적일 수도 있다. 느긋하게 곱씹어보면 해결책은 저절로 떠오를 것이다. 알프스산맥의 맑은 물과 연결된 기다란 빨대, 백포도주 한 잔 또는 우유 한 자, 거기에 수프와 회 몇 점이 담긴 쟁반이 천장에서 내려오면 금상첨화겠다. 따뜻한 물이 찰랑이는 수영장에 발을 담그면, 형체는 없지만 모든 걸 다 받아줄 것만 같은 너그러운 두 팔이 그를 감싸안으며 안쓰러움이 담뿍 담긴 목소리로 감미롭게 속삭일 것이다. ‘이해해…….’

 

 

 

하지만 현실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다음과 같았다.

두 아이, 조금 지친 아내, 그리고 모종의 위기. _사랑의 기초_한 남자

 

 

어쨌든 세상의 중년 남성들, 힘내라! 다만, 그 '색'에 관한 욕망은 집안에서만 발산하시길, 쓸데 없이 남의 '츠자'에게 보이지 말고. 아무리 소년의 감정이 되살아난다고 해도 말이다.

 

 

 

사족,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쓰고 보니 뭔소리인지 모르겠다. 길다고 좋은 것도 아닌데 요즘은 어째 글만 쓰면 쓸데없이 길어진다. 암튼 책을 읽다가 이렇게 묶어보는 일은 늘 즐겁다. 왠지 뿌듯하고. 자기만족.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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