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야말로 사치스럽게 사는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같은 것을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사치가 아닐까._《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는 이 책에서 이렇게 끝을 맺는다. 《단순한 열정》을 읽으면서 내내 이 여자의 폭풍과도 같은 열정적인 사랑, 일상을 사로잡아버린 사랑에 내가 다 미칠 지경이었다. 누구나 사랑을 시작하면 어느 정도 상대에게 몰입할 수 있다. 이해는 하면서도 그래도 그렇지, 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올 정도라면 어느 정도인지 내 스무살 때 친구들이 보면 '너보다 더 하단 말야?'라며 경악할 것이다.


물론 《단순한 열정》에서의 남녀 관계는 일반적인 남녀의 관계가 아니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불륜'이다. 아내가 있는 남자를 사랑하는 아니 에르노. 그것도 속물 근성을 가진 소련 외교관에 13살이나 어린 남자다. 왔다가 돌아갈 때는 꼭 아니 에르노의 말보로 담배를 몽땅 다 챙겨가며, 큰 차를 좋아하고, 브랜드의 옷을 말끔히 입는 것으로 자신의 지위를 나타내는 전형적인 사회주의(!) 촌부 같은 그런 남자에게 아니 에르노는 빠져서 속을 끓인다. 이유가 뭘까? A는 그녀가 좋아하는 외모도 아니고, 지적으로 통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속궁합인가? 글쎄,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길어야 서너 시간 만나고 헤어져야 하는 관계인데다 그녀의 글 속에 담긴 욕망이 그러하므로. 그것 외엔 없는 것 같기도 하지만《단순한 열정》의 상세판(!)이라고 할 수 있는 《탐닉》에 나오는 A였다가 S가 된 그에 관한 아니 에르노의 인상은 이렇다.


그는 나의 가장 '유치한' 부분, 그리고 가장 사춘기적인 부분을 대변한다. 별로 지적이지 않고, 큰 자동차를 좋아하고, 운전하면서 음악을 틀어놓고, '과시하기'를 좋아하는 그는 '내 젊은 시절의 남자'이며, 금발이고 약간 촌스럽다(손과 네모난 손톱들). 그러나 나의 쾌락을 한층 증폭시켜주기 때문에 이런 지성의 부재에 대해 더이상 불평하고 싶지 않다._《탐닉》


그렇다면, 어쩌면, 어릴 때 그녀가 생각했던 '유치한' 부분이 아니 에르노를 사로잡았는지도 모르겠다. 《단순한 열정》을 읽고 그녀와 사귀었다가 헤어진 후《포옹》이라는, 《단순한 열정》을 꼭 닮은 소설을 펴낸 필립 빌랭의 글에 보면 이런 글이 나온다.


나는 그녀가 A를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그 남자가 상징하는 혁명적 이상이 그녀의 유년기 첫사랑의 추억에 접목되었을 뿐이라고 생각하며 애써 자위했다. 아, 그러나 그것은 매번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은 내게 비수로 돌아와 A에게 신화적 힘만을 부여했고 그의 영웅적 위상을 깎아내리기는커녕 오히려 강화시켜주는 꼴이 되었다. A는 A.E를 그녀의 어린 시절로, 출신세계로 이어주는 사람이었다._《포옹》


 

그러니까 필립 빌랭의 말을 빌리면 그녀가 A의 촌스러움과 지적 부재에 따위보다는 '그녀의 유년기 첫사랑의 추억'으로 이어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일 거라고 추측한다(이 글을 읽으니 아니 에르노의 이전 작품들이 더 궁금해지고 말았다) 아무튼 그녀가 그 남자 A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내가 있는 남자의 집으로 전화를 할 수도 없으며, 소비에트라는 나라에 소속되어 있던 때라 그가 근무하는 곳에도 함부로 전화를 못한다. 그저 A가 전화를(그것도 가끔은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공중전화로) 해서 언제, 몇 시에 갈게. 라고 해야만 만날 수 있는 존재다. 그러니, 아니 에르노의 집착과도 같은 그 사랑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A를 향한 온갖 상상, 연락이 없으면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것 같다가 전화라도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변하고 마는 감정. 읽는 이가 질리도록 천국과 지옥을 오고가는 그 감정들!


때로, 그사람이 내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게 아닐까 자문해보기도 했다. 나는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듯이 태연히 잠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하고 웃는 그 사람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한시도 그 사람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와의 차이 때문에 너무나 불안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아니다. 그 사람도 분명히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 생각만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깜짝 놀랄 것이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내 태도가 옳은 건지 그 사람이 옳은 건지 굳이 가려낼 필요는 없다. 그저 그 사람보다 내가 더 운이 좋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_《단순한 열정》


물론 이 정도의 생각은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이 문장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 가장 정상적인(!)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깊이 빠진 듯 하~아, 한숨이 나오는 문장들이 많지만 그래도 《탐닉》에 비하면 《단순한 열정》의 글들은 정말 '단순'하다. 그 책을 출간하고 십 여 년이나 지나 펴낸 《탐닉》에선 그 감정의 변화가 말도 못한다. 매일이다시피 써 놓은 그녀의 일기를 읽으면 감정의 변화가 어찌나 변화무쌍한지 읽으면서 내내 이 여자를 어쩌면 좋아! 와 같은, 측은함이라면 좀 웃기고, 누군가를 사랑하면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그 마음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암튼 책을 다 읽고 덮으면서 난 앞으로 누군가를 그보다 내가 더 사랑하게 되면 절대로 '일기' 따위는 쓰지 않으리라, 맘 먹을 정도였다.

 

아니 에르노는 《단순한 열정》에서 한 남자와의 사랑의 경험을 열정적이면서도 아름답게 미친듯이 써내려 갔지만 《탐닉》에서는 그 남자를 벌거벗기고 만다. A가 아니 에르노에게 했던 모든 행동들, 그녀가 A에게 느낀 수많은 감정들이 정제되지 않은 채 날 것 그대로 묘사된다. 아니 에르노는 일기야말로 '삶을, 혹은 가장 가까운 무엇을 허무에서 구해내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십 여년이 지나 《탐닉》을 발표한 이유가 '허무'때문이었을까? …어쩌면, 그럴 수도ㅡ

 


A와 필립과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에서 아니 에르노는 이렇게 말했다.


A는 지금도 이 세상 어디엔가 살고 있다. 나는 그 사람의 신분을 드러낼 수도 있는 예민한 정보에 대해서는 자세히 이야기할 수 없다. 그 사람은 이제 '그의 삶'을 살고 있다. 다시 말해 지금의 그에게 자신의 삶을 값지고 성공적인 것으로 이끄는 일보다 더 소중한 일은 없는 것이다. 그 사람의 입장이 나와 다르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그 사람의 신분을 밝힐 수 없게 만든다. 나는 그 사람을 내 존재를 위해 선택한 것이지 책의 등장인물로 만들기 위해 선택한 것은 아니다._《단순한 열정》


이때만해도 아니 에르노의 마음엔 A가 남아 있었다. 비록 그에 관한 글을 쓰면서도 그를 보호해주려고 하는 그런 마음. 하지만 십여 년이 지나 그녀는 A를 만나면서부터 거의 매일 쓰다시피한 일기를 공개한다. 그 일기가 바로 《탐닉》이다. 물론 그녀는 '체험적 글쓰기'를 하는 작가였다. 마치 미래의 출판을 위해 일기를 쓰듯 어쩌면 출판을 목적으로 일기를 썼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A에 관한 소설(!)을 펴내고서 다시, 그보다 더 자세한 이야기, 아니 A와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라고밖에 할 수 없는 소설(!)을 펴낸 의도는 뭘까. 출간 연도 순으로 따지고 보면 《탐닉》은 필립 빌랭이 아니 에르노와 헤어지고 난 후 발표한《포옹》이라는 소설이후에 나온 작품이다. 《포옹》에서 필립 빌랭은 아니 에르노와 사귈 때, 절대로 A의 이야기를 담은 '일기'를 펴내지 말라고 졸랐다(필립은 아니 에르노가 A를 못 잊는다고 생각했다. 그 대부분의 오해(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는 《단순한 열정》때문이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요구에 따라 '그녀는 A와 관련된 부분의 일기를 나중에라도 출간하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한데 그녀는 결국 출간했다. 왜?


그 시절엔 줄곧 나 자신이 둘로 분열되어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다른 두 사람ㅡ죄수이자 간수ㅡ이라고 느껴졌다.

집에 신문기자나 사진기자가 오면 그녀는 나더러 아래층 방에 있으라고 요구했다. 인터뷰가 길어지면 나는 전봇대에 오줌을 싸서 자기 영역을 표시하는 개처럼 변기 물을 내리고 문을 소리나게 여닫으며 내 존재를 상기시켰다.(또한 미래의 그녀 애인들을 생각하며 나는 내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이 책을 쓰고 있다. 그들은 그녀가 내 것이었으며, 내가 이렇게 쓴 책 속에 감금당했음을 알게 될 터이다. 또한 그녀가 자기들과 하는 것은 나와 했던 일의 반복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을 것이다. 내 글은 출판된 뒤에도 여전히 힘을 행사 할 것이다.)_《포옹》


필립 빌랭은《포옹》에 이런 문장을 넣었다. 그가 아니 에르노를 만나면서 A의 존재에 대해 얼마나 질투를 하고 있었으며 결국 5년 동안의 만남이 끝나버린 것은(물론 5년이란 기간동안 필립 빌랭이 본인에겐 소설 속 인물이나 마찬가지인 A에 대해 아니 에르노가 잊었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단순한 열정》의 장면장면을 떠올리며 굉장히 질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쉬웠을지도) 아니 에르노의 지갑 속에 들어 있던 A의 사진때문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 같다 그리하여 '출판된 뒤에도 여전히 힘을 행사 할' 글을 쓴 것이겠지.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감수하면서(사랑일까? 집착일까? 주목받고 싶었을까? 제2의 A가 되고 싶었을까?) 말이다,


A.E와 멀리 떨어져 루앙에 있으면 나 자신이 쓸모없어서 버림받은 존재로 느껴졌다. 그녀는 "우리 커플을 유지하기 위해서 오직 좋은 시간"만을 갖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이를 "사치스럽게 사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정상적인 삶'의 규칙성으로부터 도망친 우리는 역시 단조롭고 보다 음흉하고 어떤 놀라움도 없는 또다른 규칙성을 만들고 말았다._《포옹》


A와 아니 에르노가 헤어진 후 한 번 만나고 두 번 다시 못 본 것처럼(십여 년이 지나 펴낸 《탐닉》에도 더이상 A에 관한 글이 나오지 않으니 아마도 만나지 못한 것 같다) 필립 빌랭과 아니 에르노도 만나지 못했을까? 러시아에 살고 있는 A와는 다르게 필립 빌랭은 같은 나라에서 같은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말이다. 추리 소설도 아닌데 자꾸만 추리를 하게 만드는 이 세 권의 책, 아니 에르노가 십여 년이 흐른 후 《탐닉》을 내보낸 진짜 이유는 어쩌면 A보다는 필립 빌랭을 향한 것은 아닐까. 그의 요구에 따라 'A와 관련된 부분의 일기'는 출간하지 않기로 했다는 약속을 깨기 위해(날 엿먹였으니 너도 엿먹어봐라. 내 진짜 사랑은 역시 A였다. 뭐 이런-.-;;->아, 소설(!)을 넘 마이 읽었다;) 아니 에르노는 《탐닉》을 출간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000년 1월인가 2월, 나는 5년 전부터 들춰보지 않았던, S에 대한 나의 열정의 시간에 해당되는 일기장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여기 굳이 밝힐 필요가 없는 이유로 일기장은 내 손이 닿지 않는 장소에 보관되어 있었다). 나는 이 페이지들 속에 《단순한 열정》에 들어 있지 않은 다른 '진실'이 내포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정제되지 않고 암울한, 구원의 가능성이 없는 어떤 제물 같은 무엇이 있었다. 나는 이것도 언젠가는 출판하리라고 마음먹었다.

(...)

이 글에서 외부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도 내게는 언제든 사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시사적인 사건들보다는 그날그날의 생각이나 몸짓, 그리고 열정 그 자체인 삶에 관한 이 글에 담긴 세세한 부분ㅡ자동차 안에서 욕정을 주체할 수 없어 섹스를 했을 때 그가 신고 있었던 양말 같은 것ㅡ들이 더 중요해 보인다.

나는 일종의 내적 필요에 의해 이 일기장을 공개한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 S가 느낄 감정에 개의치 않고 당연히 그는 문학적 권력의 남용이라거나, 더 나아가서 배신이라고까지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성욕 해소용으로 그녀를 만났을 뿐이야"라고 웃어넘기면서 자신을 변호하는 것도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는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그 몇 달 동안 그가 자신도 모르게 나의 경이롭고도 무서운 욕망과 죽음, 그리고 글쓰기의 근원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바랄 뿐이다._《탐닉》


'5년 전부터 들춰보지 않았던', '여기 굳이 밝힐 필요가 없는 이유'. 세 권의 소설을 차례로 읽으면서 나는 사랑의 강자와 약자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단순한 열정》에서 '약자'였던 아니 에르노는《탐닉》에서는 그 반대로 '강자'가 되어 있었다. 아니 에르노가 겪었던 모든 감정의 변화를 필립 빌랭이 겪고 있었음을 몰랐을리 없겠지만 A의 만남과 비교해볼 때 필립 빌랭과의 5년은 결코 짧은 기간도 아닌데 그에 관한 글은 하나도 없으니(어쩌면 그것 또한 그녀의 손에 닿지 않는 어느 곳에 보관이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 혹은 그녀에게 필립 빌랭은 '성욕 해소용'일지도. 《포옹》이 츨간 되었을 때 아니 에르노의 마음이 어땠을지 상상도 안 되지만 결코 좋은 감정은 아니었을 거다. 필립 빌랭의 글은 아니 에르노와 는 차원이 다른, 질투에 눈먼 한 남자의 멍청한 짓으로밖에 안 보이니 ). 나의 상상은 끝없이 펼쳐진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도 넉 달이 지났다. 소설 형식이긴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를 공개하면서 무엇인가를 파괴하고 있는 셈이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랐다. 언젠가 이 글이 책으로 출간된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녀가 나를 증오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우리의 결정적 종말을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글쓰기는 그녀와 나 자신을 향한 위험이다. 이별 장면을 쓰면서 나는 우리 두 사람을 다시 되살려, 필경 한 사람은 죽여야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죽어야만 하는 원형 경기장 속에 두 인물을 내던진 것이다.

나는 그녀를 좀더 내 곁에 간직하고 우리가 함께 했던 모든 것, 우리가 가보았던 모든 장소, 우리가 사랑을 나누었던 모든 호텔 방을 회상하고자 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면 이 책과는 전혀 다른 책을 썼을 것이다.

 

그녀를 통해, 그리고 내 질투심을 통해, 나는 너무 늦게서야 행복이었음을 깨달은 사라진 세계에 대한 분명한 신호를 정말적으로 찾아 헤매고 있다._《포옹》

 

짧은 기간의 열정적인 사랑, 그 사랑의 책이 인연이 된 또 다른 사랑. 사랑에 있어 승자와 패자가 어디있겠으며 세월이 흐른 후엔 그 모든 것이 오로지 추억으로 남을 뿐인 허무한(!) 사랑인데(그들의 책을 보고 느낀 점이랄까. 진짜 허무했다. 죽을만큼 서로 사랑했지만 그 기간이 지나고 나면 너무나 일상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열정이 사라지고 만다. 글을 쓸 때까지도 그들은 서로에 대한 감정이 남아 있는 듯 보였지만 결국엔 과거에 있었던 빛바랜 사랑의 추억일 뿐으로 보인다. 사랑은 그런 것 같다. 순수하든 열정적이든 순간의 행복이 지나면 그저 똑같은 일상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사랑에 관련한 소설은 이별을 던져주는 마지막 보다는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을 갖게 해주는 게 좋은 것 같다. 체험적 글쓰기인지라 끝이 분명한 소설들이었지만 시작과 과정과 끝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조금은 불편했던. 하지만 그 불편함 때문에 더 마음에 오래 남는) 왜 그토록 집착하고 잊지 못하는 걸까. '한 사람은 죽여야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죽어야만 하는'게 사랑이라면 어느 누가 사랑따위를 할 것인가.


우연히 읽게 된 세 권의 책으로 인해 며칠 동안 나는 즐거웠다. 사랑이 무엇이고 집착과 욕망이 무엇인지 이 세 권의 책에 너무나도 잘 나와 있다. 이 이야기들이 모두 허구가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이 더 놀라웠고 이런 글을 두려움없이 펴내는 아니 에르노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그녀의 이전 책들이 궁금해졌다. 도대체 그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소설이라는 허구의 구성을 무시하고 체험적 글쓰기를 하게 만들었는지. 왜 지극히 사적인 부분을 드러내면서까지 글을 써야만 했는지에 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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