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일러스트 1 오늘의 일러스트 1
김윤경 지음 / 북노마드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평소 그림에 관심이 많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무작정 좋아할 뿐이다. 가끔은 그림도 그려보고 싶다. 예술가적 기질을 타고나지 못해 글씨도 제대로 못 그려(!) 악필이지만 그럼에도 오래 전엔 크로키도 나름 배우며 유연한 손목을 만들어보려고 노력도 했었다. 하지만 이젠 다 지나간 꿈. 그림이든 음악이든 다 때가 있는 법. 노력하면 다 되는 세상이긴 하지만 노력을 해도 안 되는 것, 그건 아마 예술쪽이 아닌가 싶다. 예술은 천성이라는 생각. 나이를 먹을수록 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좋아하는 그림, 일러스트, 스케치, 웹툰 등등 그리는 것이라면 뭐든지, 닥치는대로 읽어댄다.

 

얼마 전에 그런 나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책이 나왔다. 신선하고, 아름답고, 멋진,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고 제멋대로 살아가는 독창적인', 우리나라의 대표 일러스트 작가의 그림들! 바로 《오늘의 일러스트*1》이다.

 

이 책의 저자는 잡지 <보그>의 예술 담당 기자이자 칼럼니스트였단다. 그가 네이버에서 기획한 '한국의 일러스트 작가들'의 인터뷰와 기사를 쓰게 되어 이렇게 책으로 엮여 나온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43인(1권엔 가나다 순으로 23인이 소개된다)은 우리나라의 젊은 미술가들이다. 젋다는 것은 독창적이고 개성이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저자는 그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그림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림에 관한 생각들을 들어 우리에게 알려준다. 장래 일러스트를 하고 싶거나, 일러스트를 위해 어떤 학교를 가야 하는지 혹은 일러스트를 하기 위해서는 뭐 부터 해야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아주 유용할 책, 되겠다. 그럼 23인의 일러스트 작가를 다 소개할 순 없고 내가 궁금한 몇 명의 작가를 소개해보련다.

 

아무래도 그림보다는 책이 먼저이니 책과 관련한 작가들이 눈에 띄겠지. 그 첫 번째 작가는 아이완 이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겐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와 《일곱번째 파도》의 표지를 떠올리면 된다. 표지를 보면 몽환적이면서 사차원적인 느낌을 받는다. 왠지 우울해보이는 소녀, 스산함이랄까, 쓸쓸해보인다. 알고 보니 아이완은 스웨덴의 음악들을 좋아한다. 켄트를 즐겨 듣고 영화 [렛미인]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 앉기도 했단다.

 

 

남들보다 늦은 고 3에 그림이 '미친 듯이' 그려보고 싶어 미대갈 꿈을 꾸었지만 당연히 너무 늦었다는 말만 들을 뿐. 허나 그 열망을 잠재우지 못해 돌고 돌아 스물네 살에 한예종에 들어갔고 자신에게만 보여주고 싶은 작은 세계를 그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건 엄마가 되고나서부터 더 절박해졌단다.

 

"가족이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거라 생각했어요. 부모라는 이유로, 자식이라는 이유로 가드고 억압하니까요. 그래서 아이 갖기를 두려워했죠. 그런데 저는 좀 다르게 살아보려고요. 자식이 훌쩍 어딘가 가려고 하면 '그래 잘 다녀와'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 말이에요."

 

아이완에게도 그렇지만 가끔 보면 '아이'라는 존재는 엄마에게 말할 수 없는 꽤나 큰 힘을 주는 존재다.

 

 

두 번째 일러스트 작가는 박형동이다. 오래 전에 《바이바이 베스파》라는 만화로 그를 알게 되었다. 그 당시엔 만화에 그다지 관심이 없을 때였다. 우연히 보게 된 만화였는데 그 깊이에 놀라 이후로 만화를 즐겨 읽게 되었다. 그의 그림은 색감이 좋다. 짙은 파스텔 톤의 그림들. 박형동은 책표지 디자이너이자 만화가이면서 다양한 잡지의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그림을 보다시피 그가 그린 책표지 그림은 꽤 된다. 《리버 보이》, 《플라이 대디 플라이》, 《바보 픽터》, 《우리들의 스캔들》등등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는 우연히 영화 [베티 블루]를 봤고, 이 영화와 같은 작업을 해야겠구나, 맘 먹었더란다. 한데 그렇게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 다른 일을 찾아본 게 만화였다. 그림을 잘 그렸지만 미대는 안 된다는 집안의 반대에 불문과를 갔고, 그랬지만 여기저기 기웃대며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다. 만화 잡지에 만화를 연재하기도 했으나 자신이 그린 그림으로 돈을 못 벌거라는 생각을 했다. 이후 안정적인 수입을 위해 애니메이션 업계에 들어갔다. 한국 애니메이션은 하는 족족 망하던 때라 잘 될 리가 없었고 결국 다시 만화를 그리게 되었단다. 그는 지금 대학을 다니면서 초등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기도 한다. 기성 작가이지만 학교에서 꾸지람도 듣고 깨지기도 하는 그는 하지만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라고 말한다.

 

"나이가 들면서 알아가는 것 중 하나는 가신을 끌어내주는 주변의 매개자가 참 중요하다는 거예요. 나자신이 주변사람들에게 매개자가 되어야 하기도 하고요. 전 요즘 좋은 학생들을 만나고, 좋은 선생님들과 함께합니다. 그래서 혼자 작업하면서 쌓았던 외로움이 많이 사라졌어요. 몸은 바쁘고 피곤한데 머리는 행복한 기분이 들고요. 이렇게 계속 자라다가 10년 후 성장 도서관을 하나 짓는게 꿈이랍니다."

 

《바이바이 베스파》도 그렇고 그가 표지를 그린 책 《리버 보이》나 《우리들의 스캔들》등등 모두 성장과 관련한 책들이다. 그가 지금 행복하다는 이유가 설명되는 것 같다.

 

 

세 번째 일러스트 작가는 소윤경이다. 그녀의 그림은 좀 소름끼친다. 뭐랄까, 섬뜩한 그림들이 맘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판타스틱하다. 원래 그런 것에 관심이 많단다. 그로테스크한 오브제들.

 

"저는 인간 내면의 잔혹한 심리에 관심이 많아요. 자기 파괴 본능, 가락과 피학의 구도, 육식을 위한 동물공장 등 인간의 일상이라는 표면 밑에 감춰진 잔혹한 세계를 표현하고 싶어요. 그것은 기묘한 판타지로 표현되지요."

 

 한데 의외로 그녀는 그림책 작업을 정말 많이 했다. 그러니 잔혹이라기보다는 판타지 같은 그림이라고 해야겠다. 《거짓말 학교》, 《선글라스를 쓴 개》, 《건방진 도도군》과 최근에 나온 《캡슐 마녀의 수리수리 약국》까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녀는 졸업 후에 파리로 건너가 유학 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뼈저리게 현대미술의 미궁만 접하게 되었단다. 그러고선 텅 빈 퐁피두 센터 지하에서 열린 <존 케이지 100주년 기념 공연>을 보며 그곳을 떠나야겠다고 맘 먹었다. 그녀는 지금처럼 일러스트 붐이 일기 전에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출판사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워낙 초기라 그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데서 비롯된 의도치 않은 무례함도 무수히 겪었다고 하니 어쩌면 그런 그녀가 있어 우리나라 일러스트가 점점 발전되어 가는 것은 아닐까.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그녀의 그림은 디스토피아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쁘고 착한 그림을 선호한다. 그런 까닭에 작업을 하면서 많은 고충을 겪었다. 비슷한 경험을 할 후배들에게 그녀는 말한다.

 

"파인 아트를 하다가 이쪽으로 넘어온 경우, 자기 스타일대로만 주장하면 힘들어요. 시스템 속에 섞여 겸손하게 일하면서 트러블 메이커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해요. 소통의 장조차 열리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이 외에도 《오늘의 일러스트*1>에는 노석미, 밥장, 아메바피쉬, 오기사 등과 같은, 이름만 들어도 아하! 하는 작가들이 많다. 이들 모두 그림을 그리지만 그 다양함은 그들이 그려내는 그림들만큼이나 넓다. 잡지, 책표지, 애니메이션, 가방, 건축 등등 일러스트라는 직업(!)이 이토록 다양한 줄은 잘 몰랐다.

 

책을 덮고나니 더욱 후회가 된다. 천성적인 예술가가 안 되더라도 좀 노력을 해서 시늉이라도 내볼 것을. 이미 이루어지기 힘든 꿈을 가지고 헛된 상상을 했다. 해서, 이 책은 일러스트를 꿈꾸는 조카에게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아마 꽤 유용할 것이다. 어쩌면 그들처럼 되려고 더 많은 노력을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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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라 2012-04-12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보고 나니, 이후에 일러스트들이 다 새롭게 보여요.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이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지고, 나도 이런 재능이 있다면 참 좋았을텐데 ㅋ 그런 생각도 하고!!

readersu 2012-04-12 17:51   좋아요 0 | URL
저두요. 재능이 있었다면 정말 해보고 싶은 일이 일러스트.
그림을 그리고 싶어도 그림을 못 그리는 심정..아흐~~부러워요. 그들이.
이 책은 일러스트를 하고 싶어하는 소년, 소녀들에게 꽤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