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렸던 책이다. 내가 이 책을 기다린 이유는 '자궁경부암'이라는 단어 때문이다.

 

"20년 전, 자궁경부암으로 사망해 땅에 묻은 어머니 헨리에타 랙스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

더욱 충격적인 것은 어머니 몸의 일부가 무한 증식하여 몸무게 5천만 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100채만큼 불어났으며, 그 세포가 지구 세 바귀를 덮고도 남을 정도로

퍼져나가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상업적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오래 전에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았던 내 엄마가 생각났기 때문.

암에 걸려 살아날 확률 5년을 훨씬 넘기고서도 여태 잘 살고 계시는 엄마.

어쩌면 헨리에타의 세포 덕분이 아니었을까, "인류를 구한 불멸의 세포주 '헬라(HeLa)세포"

그녀의 세포 덕분에 '의학혁명'이 일어나고 '인간 수명연장의 꿈을 실현'한 셈이니까.

그래, 어쩌면, 그렇게, 막연히, 저 단어때문에 꼭 읽어봐야겠다고 기다렸는데,

책을 펼치고 보니 그 이면에 드러난 놀라운 사실들!

 

이 책은 논픽션이다. 책머리에 저자는 이런 글을 썼다.

 

 

"등장인물은 모두 실명이며, 창조된 인물이나 꾸며낸 사건은 하나도 없다. 이 책을 쓰기 위해 나는

헨리에타 랙스의 가족과 친구들은 물론이고, 변호사, 윤리학자, 과학자, 랙스 가족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는 언론인 들과 천 시간도 넘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또한 광범위한 기록사진과 문서, 과학적·역사적 연구 출판물, 그리고 헨리에타의 딸인 데버러 랙스의 일기 등에 크게 의존했다. 나는 사람들이 대화하거나 글을 쓸 때 사용한 언어를 그대로 전달하고자 최선을 다했다. 대화에서는 사투리를 그대로 살렸으며, 일기나 다른 개인 기록에서 발췌한 내용은 원본 그대로 큰따옴표를 붙여서 인용했다. 헨리에타의 친척 한 분이 내게 "사람들의 말투를 꾸미거나 말한 내용을 바꾼다면 그건 거짓말이 되고 맙니다. 그러면 그들의 삶, 그들의 경험, 그리고 그들의 실제 모습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인터뷰했던 분들이 자신들의 세계와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단어들을 이 책 곳곳에 그대로 옮겼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흑인 전용colored' 같은 단어처럼 등장인물이 살았던 시대와 환경에서 실제로 쓰였던 말을 사용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단순히 '헬라세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생물학 교과서, 참고서, 인터넷과 잡지 등을 샅샅이 뒤져도

헬라세포의 원 주인과 그 가족들의 삶에 대해 알 수 없었던 작가 레베카 스클루트가

헨리에타의 직계가족과 친척, 지인은 물론 헬라세포 연구에 연루된 모든 인물들을

추적하고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10년에 걸쳐 쓴 글이다.

그 추적에서 밝혀지는 놀라운 진실은,

'인종 차별과 빈부 격차, 의학 발전을 명분으로 한 인권 침해와 자본주의 산업체제 아래서,

정작 그 세포의 주인과 가족은 이 모든 기념비적인 사건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이용당하고

희생당했다는 사실'이다.

 

 

 

미국 남부의 한 담배공장에서 노예 조상들처럼 담배농사를 짓던 헨리에타는 1951년

이상출혈과 체중감소로 존스홉킨스 병원을 찾는다. 그곳은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극심한 시절,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흑인들이 최소한의 의료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었던 유일한 병원이었단다.

그곳에서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은 그녀는 방사선 치료를 받았지만,

그녀의 암은 담당의사도 경악할 정도로 빠르게 전이되고 암 진단 받은 후 4개월 만에 사망한다.

 

 

그런데

 

 

1973년 어느 날, 미국 볼티모어에 살고 있던 랙스 가족은

사망한 그녀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연락을 받는다.

의사가 환자 본인이나 가족의 동의 없이 헨리에타의 난소에서 세포를 채취했고

그 세포는 몇 주가 지나도록 성장을 멈추지 않고 증식하여 그동안 햄스터나 원숭이를 대상으로

의학 실험과 신약 개발을 해왔던 의학계에 신기원을 열었던 것.

 

이 사실은 영원히 죽지 않는 그녀의 세포들이 수천억 달러 규모의 의학혁명을 이루고

인간 수명연장의 꿈을 실현하는 견인차가 되어 의사와 과학자들 사이에서

매매되고 배양되는 동안, 놀랍게도 그녀의 가족들은 이 사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채 빈곤층으로, 노숙자로, 범죄자로 전락하며 비참하게 살아왔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경악할 일은,

인류를 구할 만큼 놀라운 세포는 둘째치고, 어떻게 본인과 가족도 모르게,

한 여인의 몸이 실험대상이 되고 상업적으로 거래될 수 있느냐는 거였다.

 

 

 

이 사실에서 작가는 랙스 가족의 과거와 현재 이야기를 오가며 헨리에타 랙스의 일생을 복원하고

미국 흑인들에게 가해진 각종 의료 차별과

비윤리적인 실험-연구로 인한 인권 침해 사실을 낱낱이 폭로하고 있다.

 

취재를 하는 동안 작가는 헨리에타 유족들로부터 거부당하고,

돈을 노리고 접근하는 사기꾼으로 매도당하기도 했단다.

그럼에도 끝까지 그들에게 어머니에 관한 진실을 찾아주고자 분투했다고 하니

1000시간의 인터뷰와 10년간의 취재로 "저널리즘이란, 행동하는 정의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레베카 스클루트의 끈질긴 노력은 본받을 만하다.

 

 

 

책 뒷쪽에 있는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에 쏟아진 찬사들만 봐도 그 감동을 알 것 같다.

매우 드라마틱하고 치밀한 구성과 강한 호소력과 흡인력을 가졌으며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고 했는데

<뉴욕타임즈> 99주 동안 베스트셀러 였고 오프라 윈프리에 의해 영화 제작이 되고 있는 중이란다.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은 필립 K. 딕과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연상케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실화다. 레베카 스클루트는 수많은 생명을 구했지만 동시에 한 가족의 삶을 거의 파괴해버린 과학에서의 인종차별주의와 탐욕, 이상주의와 신앙의 문제를 파헤친다. 결코 잊을 수 없는, 더없이 아름답고 특별한 작품이다. _에릭 슐로서(저널리스트)

 

 

*이 책은 소설가의 예술성과 생물학자의 전문성, 취재기자의 열정이 한데 집약된 결정체다. 스클루트는 인종차별과 가난, 과학과 양심, 영성과 가족에 관한 실로 놀라운 이야기를 전하며, 육체의 존엄성과 생명력의 본성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_북리스트

 

 

*놀랍도록 균형 잡힌 관점. 편파적이지 않은 태도…… 이 책은 독자들에게 간결하고도 명쾌한 깨달음과 감동을 선사한다. 이 책에서는 그 어떤 장르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힘과 반향을 느낄 수 있다.

헨리에타가 남긴 선물의 혜택을 알았든 몰랐든 간에, 우리 모두는 엄청난 감동에 휩싸일 것이다._오리거니언

 

 

 

이 책은 미국 워싱턴 주의 시애틀 프레드허치슨 암연구소에서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의 저자 레베카 스클루트의 강연을 듣던

당시 허치슨 연구소에서 연수를 받던 김정한 교수가 옮겼다.

의대 재학 시절 강의실에서 처음 헬라세포에 대해 간략히 배운 이후,

수많은 의학논문에서 헬라세포를 만났지만 그 주인공의 이면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강연은 큰 충격과 감동으로 다가왔단다.

그리고 '의학사의 어두운 이면'을 다룬 이 책을 읽고 번역해야할 '사명감'에 빠져

미시시피 주의 한 주립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동생 김정부 교수와 함께 번역했단다.

 

 

정책학자인 김정부 교수는 '본의아니게 생명공학의 발전에 얽혀든 한 흑인 여성과 그 가족의 처절한 이야기를 통해, 알렉시 드 토크빌이 1835년 『미국의 민주주의』의 첫머리에서 당시 미국 사회를 떠받치고 있다고 갈파한 바 있는 평등(과 인권)을 향한 인간의 지난한 투쟁기 21세기 미국에서도 여전히 현재진향형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나아가 한국 사회에서 생명과학과 인권의 경계에 걸치는 정책토론에 이 책이 의미 있는 시사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작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흑인 특유의 생생한 사투리체 대화가 많은 점.

원서의 서문에 밝히듯 흑인들의 정서를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이들의 표현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살려놓은 점을 감안하여 원서 느낌 그대로 생동감 있게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편집부와 상의하여

전라남도 사투리로 번역하기로 결정하고 한창훈 작가의 감수를 받았단다.

 

 

내 방의 벽에는 찢어진 왼쪽 귀퉁이를 테이프로 붙여놓은,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어떤 여인의 사진이 붙어 있다. 헨리에타 랙스. 언젠가는 헬라세포와 그 세포의 주인, 누군가의 딸이자 아내이고 엄마였을 그 여인에 대한 전기를 쓰리라……

과학 실험실, 병원, 정신병원을 망하하는 이 모험에는 노벨상 수상자들과 식료품점 주인, 죄수, 전문 사기꾼 등이 각자 배역을 맡아 등장한다. 이 책은 헬라세포와 헨리에타 랙스에 대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특히 데버러를 포함한 랙스 가족과 그들이 헬라세포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되기까지의 평생에 걸친 지난한 싸움, 그리고 그 세포를 가능하게 했던 과학에 대한 이야기이다.

_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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