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 창비시선 343
문태준 지음 / 창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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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읽기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도 못 읽어본 시가 너무 많다.

소설이나 인문 책 같은 것은 그냥 마구 사대지만

시집만큼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유는 잘못 사면 영~ 내 취향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워낙 쉽고 감성적인 시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쓸데없이 까다로운;;

그리고 하나 더 핑계를 대자면,

시집만큼은 한 권을 사서 그 시집의 시를 다 읽고 음미한 후에 다른 시집을 사자고.

시집마저 사재기 하여 책꽂이에 모셔두면 안 된다고.

 

 

 

 

장석남 시인의 시집을 사고 난 바로 다음날 문태준 시인의 시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직 내 블로그엔 문태준 시인의 시를 소개한 것이 없는데

그동안 자세히 들여다볼 생각을 안 했었다.

워낙 토속적이고 내 감성과는 좀 다르다고 생각해서인지.

근데!!

와, 나도 그동안 시집을 많이 읽었나보다. 이젠 시가 점점 이해(설마?)가 되고 있다.

아직도 좋은 시보다는 내 맘에 들어오는 시를 '좋은' 시라고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문태준 시인의 이번 시집을 읽으면서

와ㅡ와ㅡ와ㅡ 내가 왜 그동안 문태준 시집을 제대로 안 읽었지? 했다나.

 

 

요며칠 머릿속이 뒤숭숭했더랬다.

특별한 이유는 없는데 왠지 뭔가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스스로 후벼파고 있었다.

한데 오늘 아침에 문태준 시인의 시집을 펼쳐 첫 시를 읽는 순간,

아- 하고 마음을 내려놓았다. 이 시구때문에.

 

 

누군가 들고 가는 양동이 물처럼

한번 또 한번 출렁했다

서 있던 나도 네 모서리가 한번 출렁했다.

출렁출렁하는 한 양동이의 물

아직은 이 좋은 징조를 갖고 있다

 

 

출렁출렁, 마치 곧 쏟아버릴 것 같은 위태한 모습에서

내 뒤숭숭한 마음을 보았다고나 할까,

한데 다행스럽게 쏟지 않았다. '서 있던 나도' '한번 출렁했'지만

그래서 혼자 위안 삼았다. 그래, '아직은' '좋은 징조'

 

 

이어 읽는 시들마다 어찌나 맘에 와 닿는지 시도 읽는 '때'에 따라

다가오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시집을 처음 받아 읽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어느 것 하나 지나치지 못했다. 이런 시,

 

 

주인도/내객(來客)도 없다/겨울 아침/오늘의 첫 햇살이/흘러오는/

찬 마루/쪽창 낸 듯/볕 드는 한쪽/몸을 둥글게 말아/웅크린/들고양이/

여객(旅客)처럼/지나가고/지나가는/집 _빈집

 

 

그리고 이런 시구들

 

 

눈초리/시린/모색(暮色)_산 그림자와 나비

흰 종이에 떨구고 간 눈물자국 같은 흐릿한 빛이 사그라진다_망인(亡人)

모두가 이별을 말할 때/먼 곳은 생겨난다/헤아려 내다볼 수 없는 곳_먼 곳

여러 번의 오후는 여름 위에/여러 번의 여름은 일생(一生)위에/

이처럼 쏟아진다 할밖에/얼마나 울었는지 두 눈이 질펀하네_언제 또 여러번

쌓인 것을 오후에 허물었지요/슬픔에 붙들렸으나 숭고한 일일이었어요_일일2:숭고한 일

'꽃들'이라는 말의 둘레라면/세상의 어떤 꽃인들 피지 못하겠는가_꽃들

이제 겨우 이별을 알아서/그때 내 앉았던 그곳이 당신과의 갈림길이었음을 알게 되었지요_나는 이제 이별을 알아서

 

 

이렇게 모든 시를 채 읽기도 전에 쿵쿵거리며 시가 내 맘에 들어올 줄이야.

문태준 시인의 시가 이렇게 감성적이었어? 혼자 되내이다가 집에 있던 시집들을

다시 펼쳐봐야겠구나, 내가 읽어내지 못한 시를 찾아야겠구나, 싶었다.

어쩌면 잘난 척, 내가 그동안 시를 쫌, 읽었거든 하고 싶기도 하지만

이 좋은 시를 이제서야 좋다며, 좋다며.

그러다가 이 시에서 멈칫, 한참을 읽고 바라보며 멍 때리다가 그만 시집을 덮어버렸다.

더 읽었다간 왠지 눈물 날 것 같아서.

 

 

이제는 아주 작은 바람만을 남겨둘 것/흐르는 물에 징검들을 놓고 건너올 사람을 기다릴 것/

여름 자두를 따서 돌아오다 늦게 돌아오는 새를 기다릴 것/꽉 끼고 있던 깍지를 풀 것/

너의 가는 팔목에 꽃팔찌의 시간을 채워줄 것/구름수레에 실려가듯 계절을 갈 것/

저 풀밭의 여치에게도 눈물을 보태는 일이 없을 것/누구를 앞서겠다는 생각을 반절 접어둘 것

_오랫동안 깊이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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