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관련한 책엔 늘 관심이 많다.
어렵지 않으면, 내가 이해할 정도만 되면 무조건 읽어보고 싶다.
그건 아마도 그림에 대해 잘 모르니까,
어떻게든 많이 읽어야만 한다는 강박감 때문인지 모른다.
그림을 보고 감상을 말해주는,
혹은 좀더 전문적으로 그림과 화가에 대해 말해주는 책들이 많지만
찾아 읽다보면 항상 우리나라 작가들의 책이었는데
이번엔 독일의 미술사가이자 사진작가의 책이다.
그가 화가들이 그림에 담았던 실제 장소를 여행하며 그 화가와 그림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여행과 그림, 그리고 화가. 뭔가 독특한 느낌.
문학 작가의 책을 들고 작품 속 장소로 여행을 가는 것과 비슷.
글이 아닌 눈에 보이는 그림 속 장소를 직접 가는 일은 꽤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다.
19세기 독일의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어 다피트 프리드리히가 그린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본문 166쪽)를 보자. 그림 속 풍경은 언뜻 보기에는 매우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 그림이 그려진 장소에 가보면 실제 풍경과 그림 속 풍경이 무척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리드리히는 자신만의 눈으로 자연을 관찰한 후 새로운 풍경을 창조해낸 것이다. 프리드리히는 자신이 살았던 작센과 뵈멘 지방을 자주 산책하면서 스케치를 한 후 여러 장소를 합성해서 그림을 완성했다. 그는 “화가는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보이는 것도 그려야 한다. 만일 자기 안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면, 눈앞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그 당시의 주요 흐름이었던 고전주의 미술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매우 급진적인 생각이었다.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는 이 같은 프리드리히의 생각이 잘 반영된, 그의 내면 풍경을 보여주는 풍경화다.
카스파어 다피트 프리드리히, 이름도 길어라. 아무튼 이 화가의 그림, 좋아한다.
뒷모습, 확 펼쳐진 풍경. 근데 그 풍경들이 합성한 그림이라니! 어쩐지 좀 환상적이긴 했어.
그래서 더 좋아하게 된 걸까? 암튼 기대되는 책.
이 책 한번 읽어볼래? 하는데 작가 이름을 보는 순간, 헉.. 망설이고 말았다.
그동안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안 읽진 않았다. 증언을 담은 책도 읽었고
소설로 나온 책들 읽은 기억이 난다. 근데 이 책은 과연, 읽을 수 있을까, 싶었다.
왜? 작가의 전작이 워낙 쎄서(!), 솔직히 그의 문체를 대면하기가 두렵기 때문이다.
한데 읽어보기로 했다. 읽다가 덮어버리더라도 일단은 읽어보기로.
그건 얼마 전 티비로 본 위안부 할머니들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기 때문이고
일본대사관 앞에 서 있는 평화비 소녀상이 머릿속에서 자꾸만 반짝거렸기에.
이상도하지, 이 책을 읽으려고 그랬나..
며칠 전부터 유난히 할머니들 소식이 눈에 띄더라니...
《다시 오는 봄》은 한국 문단이 거의 외면해왔던 이야기를 철저한 자료 조사에 기초해 사실적으로 재구성한다. 2010년 방한한 양석일은 자신의 소설세계와 더불어 이 소설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밝힌다. “일본에선 시바 료타로처럼 권력을 대변하는 영웅 이야기를 주로 쓴 소설가가 인기를 얻고 있지만, 작가라면 모름지기 약한 자, 억압받는 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 …… 한?일 간의 바른 관계를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 역사를 제대로 보고 그것이 현대에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가를 살펴 양쪽이 가진 편견을 조금이라도 바로잡고 싶다.”
양석일의 소설은 어둡다. 독자는 너무나 쓰라리고 고통스런 이야기를 들이미는 작가의 작품 앞에서 당혹감을 느낀다. 소설을 읽는 것도 쉽지 않지만 끔찍한 실상을 대면하고 글로 쓰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이다. 그러나 양석일은 “써야 한다는 사명감보다는, 쓸 수밖에 없다는 자연스러운 감정이 내면에서 일어났다”고 말한다. 《다시 오는 봄》 역시 그 필연적 의지에 따라, 우리 곁에 놓인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싶지 않은 독자들에게 피 묻은 손을 내민다.
옮긴이의 이 글만 봐도 솔직히 걱정이다. 작가의 소설이 어둡다고, 당혹감을 느낄거라고
그도 말하고 있지 않는가. 하지만 작가의 '필연적 의지'가 부디 통하길 바라며..
그리고
제목과 표지의 산뜻함처럼 돌아오는 봄,
이 봄엔 할머니들에게 부디 행복한 소식이 전해졌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