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만큼 아프진 않아 - 제16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황현진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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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제 무속인의 집에 짝퉁 가방을 숨겨 놓고 팔았다는 뉴스를 들었다. 때마침 나는 짝퉁, 이태원, 삐끼... 와 같은, 그 뉴스와 딱 맞는 책을 읽었다. 일단 뉴스를 옮겨보자면, 

"이들이 지난해 4월부터 올 7월까지 만든 가방은 2만점, 시가로 환산하면 420억원 어치다. 특히 이 짝퉁 가방은 진품과 구별이 어려운 특A급 제품으로 개당 20만원동대문과 이태원 등지에서 거래됐다." _서울경제 

특A급, 진품과 구별이 거의 없단다. 그 이야기가 등장하는 소설, 바로 2011년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은 황현진 작가의 《죽을 만큼 아프진 않아》이다.  

성장소설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성장소설이라기보다는 미성년도 성년도 아닌 그 기로에 서 있는 '태만생'이라는 용화공고 삼학년 소년의 일주일 남짓 간의 일상이다. 

고3인 아들을 홀로 두고 갑자기 아메리카로 이민을 가겠다는 부모, 이해할 수 없었지만 대학을 핑계로 홀로 남은 태만생은 부모가 떠나자 부모가 마련해주고 간 옥탑방으로 이사를 온다. 그리고 공고생의 잇점을 활용하여 친구 태화 아버지의 공장에 위장 취업을 하고 태화가 삐끼로 일하는 이태원 짝퉁 가방 가게에서 알바를 시작한다. 이태원은 어떤 곳이던가? 온갖 짝퉁이 판을 치는 곳. 유명 브랜드의 짝퉁이 즐비하고, 진정한(!) 여자가 되고 싶어하는 짝퉁 여자가 돌아다니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일을 하는 며칠 동안 태만생이 보고 경험한 것들은 과연 진짜였을까? 어쩌면 "진품일 리 없는 삶?!"일지도.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여느 책답게 태만생 역시 씩씩하다. 크지 않은 키에 잘난 것은 하나도 없지만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선 개성 강한 캐릭터이다. 황현진 작가는 그걸 제대로 간파하고 공고생의 자격으로 위장 취업을 하고 짝퉁 알바를 하는 고 3학년의 삶을 흥미롭게 그려냈다.  

톡톡 튀는 문체, 삶의 이면에서 보여지는 소년다운 재치와 위트. 과장도 거짓도 없이 어른들의 틈바구니에서 어른인 척, 살아가는 소년. 하지만 그는 아직 어른이기엔 서투른 존재이다. 그럼에도 경험하지 않았던 혼란스러웠던 일주일 남짓의 생활은 태만생을 미성년인 소년에서 성년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다만 그 짧은 삶이 과연, 진짜일지, 가짜일지 알 수 없을 뿐. 

다소 급작스런 결말이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독자에게 던진 열린 결말이 많은 상상을 일으키게 해준다. 재치 있는 문체가 읽는 내내 유쾌했고 날것에 가까운 단어가 허걱, 괜스리 참한(!) 독자 얼굴 빨개지게 만들기도 했지만 즐거웠다(!).  

책을 덮고 생각해보니 우리 인생이 다 진품처럼 살고자 하지만 결국은 짝퉁처럼 살아가고 있는 삶이 아닌가 싶었다. '나'라는 개성을 가진 인물로서의 성장보다는 나보다 나은 누군가를 닮으려고 하는 삶, 그 누군가를 따라잡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죽어라 일을 하며 사는, 비슷하지만 다른 삶. 진품이 되고자 악을 쓰며 살아가는, 잘하면 A급 짝퉁, 모자라면 겨우 B급 짝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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